친구 아이가 s대 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2023년 12월 15일, 친한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응원해 준 덕분에 우리 ㅇㅇ이, 서울대 xx학과 수시 합격했어"
나는 문자를 받자마자 감탄사만 몇 개를 썼는지.
"와~~! 너무 축하해. ㅇㅇ이 정말 대단하다. ㅇㅇ이도 엄마도 너무 수고했어!"
30년 우정의 친구고, 30대 초중반에 같은 동네에서 살며 서로의 사정을 더 깊이 알게 된 사이다.
엄마인 우리들 뿐 아니라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보아와서 각별하다.
친구는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며 팀장을 맡고 있고, 친정어머니도 많이 편찮으셔서 주말이면 어머니를 돌보느라 매우 힘든 상황인데, 아이가 도와주는가 싶어서 참 감사한 일이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런데 한편, 갑자기 다음 차례가 우리 아이 차례라는 생각에 현실감이 확 다가온다.
그동안 초연한 듯, 무심한 듯했던 내 마음이 초조해진다. 2024년 겨울에 나는 어떤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나는 지난 수년간 선배들이나 지인들의 자녀의 입시가 있을 때,어느 학교 갔는지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을 연습했고, 이제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렀다고생각했다.
산기하게 정말 궁금하지도 않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좋은 학교 간 사람들은 먼저 소식을 전해오게 마련이다 ㅋㅋ 그런 때에는 너무 호들갑 떨지 않으면서 담백하게축하하면 되었다.
노력해서 이룬 성과이니 당사자인 아이는 축하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부모가 오래 자랑할 일은 아니고,
거꾸로 혹시 안 좋은 결과가 나온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그것이 인생의 긴 과정을 결정짓지는 않으니 너무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랐다.
저출산 시대에도 과거보다 더 과열된 입시 경쟁을 이해할 수가 없고, 어른으로서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장 친한 친구, 내가 어려서부터 봐 왔던 아이의 소식에는 내가 왜 하루 이틀 마음이 전과 같지 않았을까. 나 스스로의 모순된 모습을 보면서, 밥을 사겠다는 친구의 초대에 점심 장소로 갔다.
나도 모르게 비결 같은 것을 묻고 있다. 원하는 진로도, 고등학교의 성격도, 성적도, 아이의 성향도 달라서 방법을 알아봤자 내 아이에겐 적용도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무엇을 알고 싶었던 것일까.
집에 돌아오니 큰 애는 낮잠을 자고 있다. ㅋㅋ
왠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이야기 않았다. 둘째 방에 갔다가 아직 중학생인 둘째에게만 엄마의 이런 마음을 괜히 얘기해 본다. 둘째도 형에게는 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둘째 말이, 누구보다 그런 소재에 자신들이 가장 민감하다고 한다.
둘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다시 번쩍 든다. 내가 친구 아들과 우리 아들을 비교하고 있었구나.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 1순위가 남과의 비교이거늘.
# 오늘의 교훈: 엄친아를 조심하자, 가 아니라 ㅋㅋ
엄친아 소식에 흔들거리는 엄마의 가벼운 마음을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