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다 Aug 09. 2020

삼전 사기, 좌충우돌 아이슬란드 한 바퀴 - 제 3장

불완전한 여행의 미학, 10박 11일 네 번째 아이슬란드 여행기

새로 오신 독자님을 위한 앞 이야기


1부

https://brunch.co.kr/@airspace2010/1


2부

https://brunch.co.kr/@airspace2010/2




삐빅-경고등입니다.


간단히 조식을 챙겨 먹고 아이슬란드의 첫 아침을 맞이한다. 현재 기온은 영상 6도, 상쾌하다.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8년이지만 맛보기 힘든 상쾌한 공기가 폐를 감싼다. 누가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공기도 돈 주고 사 마시는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집집마다 공기청정기를 구비해 그 말이 실현될 줄 예상이나 했을까. 


오늘의 첫 목적지는 싱벨리어 국립공원이다. 두 개의 판이 만난다는, 문과인 나로서는 뭔가 신기한데 그렇구나… 싶은 그런 곳이다. 레니게이드를 받았다는 기쁜 마음을 부여안고 ―그렇게라도 생각하기로 했다― 시동을 걸었는데, 웬 경고등이 뜬다. 차알못이라 잘은 모르지만, 경고등의 색이 노란색이면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고, 붉은색이면 바로 대응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음? 어제는 분명 타이어 공기압 체크밖에 없었는데, 이거 뭐야? 게다가 유추도 안되게 그냥 느낌표 하나니까. 영상 6도의 차가운 아침에 스팀이 머리 위에 아지랑이를 꽃피운다. 일단 렌터카 업체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여행지에서 받은 차량에 좌우로 경고등이 떠 있을 때의 감정이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20분가량 대기하니, 한 명이 나와 경고등을 보더니 말한다. ‘아, 이거 별거 아니야. 달리다 보면 꺼질 거임 ㅋ’ 상상으로는 몇 번이고 내질렀지만, 번역에 실패한 뇌와 턱 막힌 말문을 뒤로하고 조용히 차 문을 열어 운전석에 탑승한다. 별 일 없을 거라 자위하며 대망의 첫날의 일정을 시작한다. 


첫날의 일정인 골든 서클로 이동하는 막간의 시간을 빌려 레니게이드에 대한 소회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신 탈 일이 없었으면 한다. 차량용 햇빛 가리개는 너무 짧아 남은 틈 사이로 구경하기도 힘든 아이슬란드의 자외선을 직통으로 선사해주었고, 좌우 색과 모양이 다른 후방등은 날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난 처음에 이게 렌터카 업체에서 대충 땜빵으로 수리해놓고, 나중에 모양이 다르다며 나한테 뒤집어 씌우는 건 줄 알았다. 운전하는 내내 자갈 밟는 소리와 엔진 소리, 떨리는 의자의 삼중창 역시 또한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었다. 지프에 대한 로망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바이킹이 폭포 뒤에 숨겨놓은 보물찾기


수도인 레이캬비크를 지나 골든 서클을 둘러보고, 남부의 스코가포스, Skogafoss―‘foss’란 아이슬란드어로 ‘폭포’를 뜻한다―로 향하는 길이다. 슬쩍 하늘을 쳐다보니 잔뜩 먹구름이 껴있다. 쩝. 내게 아이슬란드는 항상 회색이란 말이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아지겠지 하는 순간, 하늘에 구멍이 뚫리더니 한 치 앞도 안 보일 만큼 비가 쏟아진다. 하지만 기다리면 된다. 이걸 뚫고 나가보겠다고 우산을 쓰는 순간, 당신의 우산은 90도로 꺾여버릴 것이다. 혹시나 아이슬란드에 챙겨갈 우산을 캐리어에 넣었다면, 슬그머니 다시 빼도록 하자. 


스코가포스의 전경, 방수가 되는 옷은 필수다.

그렇게 5분 정도 흘렀을까, 예상한 대로 맑은 먹구름이 우리를 반긴다. 그렇지. 이게 아이슬란드다. 날씨가 맑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구름이 몰려오고, 폭우가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이 걷힌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은 10분이면 충분하다. 온몸이 젖을 각오로 차로 뛰어가면, 차 문을 여는 순간 비는 그친다. 스코가포스의 공터에 주차를 하고 상부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가쁜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오른다. 


15년 9월의 스코가포스, 운이 좋다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이곳의 백미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을 올라가 가쁜 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는 바로 그 순간이다. 끝없는 지평선과 평야는 하늘이 만든 회색 커튼과 때때로 보여주는 푸른빛은 시시각각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운이 좋다면 하늘에 작은 구멍이 뚫리고 폭포에 무지개가 생기는 순간을 목도할 테고 다른 ‘나라’가 아닌, ‘이계’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코가포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지와 수평선


이곳 스코가포스에는 바이킹들이 폭포 뒤에 보물을 숨겨놓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세상 어떤 진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문득 그 보물을 찾아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먹구름이 이렇게 기대되는 여행이 또 있을까? 그러니 만약 당신의 아이슬란드 여행 일기예보가 회색빛일지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았으면 한다. 하늘을 덮은 먹구름과 그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이 뒤섞여 지금껏 보지 못한 푸른 회색을 보여줄 테니까.



‘ICE’LAND


스코가포스를 지나 Vik라는 작은 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동쪽으로 140km를 더 달리다 보면 링로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스카프타펠이 나온다. 

바트나요쿨의 '빙하 혀'를 바라볼 수 있는 스비나펠스요쿨


무언가 익숙한 분위기라고? 그렇다면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려보자. 영화 속 등장인물인 ‘만’ 박사가 홀로 억겁의 시간을 보냈던 바로 그곳이다. 


스비나펠스요쿨에서 조금만 더 달리면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내에 있는 바트나요쿨(브런치 맞춤법 검사 피셜로는 '바트나이외쿠틀'이라 한다.) 빙하를 하이킹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 관련 네이버 카페를 몇 년째 보고 있는데, 간혹 ‘아이젠 가지고 직접 가려고 하는데 괜찮은가요?’ ‘평소 산 많이 타는데, 혼자 갈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들이 올라오고는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질문자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 했다 할지라도 무조건 ‘No’. 곳곳에 위치한 크레바스와 안전상의 문제로 반드시,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가야 한다. 


출발 시간이 되어 인포 센터 근처 집결지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모여 설명을 듣고, 장비를 지급받는다. 체감 상 지금껏 다녀본 나라 중 동양인보다 서양인이 많던 나라가 몇 안되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슬란드다. 운이 좋다면(?) 45인승 단체 버스에서 형형색색의 아웃도어를 입은 서양인 단체관광객이 한꺼번에 하차하는 낯선 광경도 볼 수 있다. 


고프로로 촬영한 스카프타펠 초입 가는 길


30분 간 차를 달려 트래킹 초입에 진입하고, 차에서 내려 또 30분을 걸어가면 거대한 빙하 앞에 도착해 트래킹을 시작한다. 첫 빙하를 올라 앞을 바라보면 검은 화산재와 함께 긴 시간 잠들어 있던 푸른색 빙하는 온갖 형광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가이드들이 미리 설치한 밧줄과 사다리를 이용해 빙하를 오르다 보면, 어느새 투어 시간이 훌쩍 끝나 있다. 가이드가 처음에 약속한 빙하수 마시기는 날이 많이 추워 생각보다 물이 많이 고이지 않아 취소되었고, 3시간 투어에 이동 시간이 1시간이라니 좀 아쉽긴 하다. 다음번에 예약할 땐 5시간짜리를 해야겠다. 


스카프타펠 빙하 위를 걷다.


스카프타펠 외에도 ‘ICE’LAND라는 명성에 걸맞은 곳이 또 있는데, 호수에 빙하가 떠내려온 ‘요쿨살론’과 그 빙하가 떠내려가 바다로 이어지는 ‘다이아몬드 비치’이다. 분기점에 서서 왼쪽을 바라보면 요쿨살론에는 푸른 빙하가, 그 맞은편의 다이아몬드 비치에는 바다로 가려다가 다시 육지로 떠내려 온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해변에서 빛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장노출 사진을 찍을 최고의 장소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장소로,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자연의 놀이터로 다가온다. (실제로 다이아몬드 비치는 갑자기 몰려온 파도에 휩쓸리거나, 삼각대를 무너뜨리고 카메라에게 바닷물의 짠맛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니, 너무 멀리까지 이동하지는 말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경험을 주는, 참으로 ‘다이아몬드’ 비치라는 이름이 걸맞지 아니할 수 없다.


조디악 보트를 타고 호수를 볼 수 있는 호수 '요쿨살론', 전날 날이 너무 흐려 제대로 보지 못해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방문했다.


바다로 돌아가려는 얼음과 온몸으로 막아서는 파도의 만남


-4부에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D

작가의 이전글 삼전 사기, 좌충우돌 아이슬란드 한 바퀴 - 제 2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