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에서 가늘고 길게 사는 법
"테크 데모를 개발하는 것이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의 일입니까?"
결국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말을 하고 말았다. 내 질문에 매니저는 다소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자심만의 논리로 구구절절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헤드셋으로 전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이나마 미안한 감정도 담겨있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은 결국 "그렇다"였다. 한숨이 나왔다. 온라인 회의는 이럴 때 참 편하다.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내 보이지 않아도 되니까. 회의에 함께 참여 중이던 다른 팀원 G는 침묵했다.
미국에서 일하던 5년 동안 매니저와 갈등을 빚은 일은 없었다. 직종 자체가 상대적으로 일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연구직이고, 무엇보다도 매니저는 온건했다. 기본적으로 그는 팀원들을 믿고 기다리는 상사였다. 프로젝트 진행사항은 주기적으로 점검하지만 마이크로 매니징은 하지 않았다. 필요한 시점에 조언하고 팀원들을 위한 인적 물적 자원 수급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같으면 팀 막내가 할만한 허드렛일도 도맡아 하곤 했다. 그렇기에 팀원들 모두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매니저에게 매우 만족했다.
오랫동안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던 팀원 K가 작년에 회사를 떠났는데, 그는 사석에서 가끔씩 매니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이유는 그가 "나이스"하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배부른 소리 하네.'
나는 K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지금의 매니저는 한국에서라면 절대 못 만날 상사였기 때문이다. '네가 한국 회사를 다녀봐야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지.' 나는 그렇게 꼰대 같은 생각을 했다. 물론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해 내 생각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K가 한 말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 있다. 매니저의 탁월한 나이스함이 팀원들에게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은 평소에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업무가 다른 팀과 엮이게 될 때 비로소 드러난다.
나는 지난 3년간 몇 가지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고 결과는 훌륭했다. 논문으로 발표해 업계나 학계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향후 회사에 출시될 제품에 탑재되는 새로운 기능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주제 1, 주제 2를 연구해 결과를 맺었고, 주제 3에 대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당 제품의 출시가 임박하면서 매니저는 기술 홍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품을 사용할 잠재적 고객사들, 표준화를 주도하는 회사를 상대로 기술 시연을 하고자 한 것이다. 방향은 옳다. 차기 표준에 포함되고, 고객사들로 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는 것은 그만큼 업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로써는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연구결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서 간 업무 분장에 있었다. 연구와 사업화는 일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문제점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이 '연구'라면, 도출된 연구 결과를 제품에 탑재하기 위한 다양한 업무(기술 데모 개발, 성능 최적화, 매뉴얼/백서 작성 등)를 수행하는 것이 '사업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다른 성격의 일을 전담하는 인력이 연구원(리서치 사이언티스트)과 개발자(엔지니어)로 구분된다. 경쟁사들의 경우, 별개의 조직이 이 두 업무를 담당하도록 철저히 분업화가 되어 있다.
연구 결과를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업부 측에 기술의 중요성을 설득시키고, 필요하다면 더 윗선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관철시킬 추진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나이스'하기만 한 매니저는 이 과정에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바쁘다', '현재 우리 팀에 그 일을 할 여력이 없다'는 사업부의 대답만 듣고 무기력하게 돌아왔고, 결국 '그들을 잘 설득할 수 있도록 테스트 프로그램을 더 만들어 데이터를 달라', 심지어 '안되면 우리가 직접 데모를 만들자'라며 연구팀에 불필요한 일거리만 더 늘리기 시작했다. 결국 난 진행 중이던 주제 3에 대한 연구를 잠정 중단하고, 개발 데모와 성능 최적화에 관련한 일로 업무를 전환했다.
사실 이런 일은 어떤 회사,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만한 일이다. 미국 회사라고 톱니바퀴가 완벽히 맞아 돌아가지 않는다. 조직 간의 이해는 늘 충돌하고 서로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부르짖는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매니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법이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아낼 수 있는 능력. 바로 조정 능력이 바로 좋은 매니저의 덕목 중 하나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며 언쟁이 벌어질 수도 있고, 때로는 정치질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팀원들이 팀이나 회사에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기에, 매니저는 팀원의 심리나 인간 관리(People Management)에도 소홀할 수 없다. 어쩌면 상반된 욕구를 가진 조직과 팀원 모두를 만족시키며 성과를 내야 하기에, 미국 회사에서의 '매니저'란 참으로 어려운 직군임이 틀림없다.
내 매니저의 '온건함'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가장 최적화된 형태로 발전한 형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이해관계에 있는 조직 내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면, 최소한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말자는 생각에 '탁월한 나이스함'으로 모든 이를 대해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답답함을 느낀 팀원들은 팀을 떠났을 수도 있고, 상사에게는 무능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팀원은 새로 뽑으면 되고, 팀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느리더라도 어떻게든 성과는 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내 매니저는 무척이나 현명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리더십, 정치력, 카리스마는 없어도 대인 관계만큼은 원만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씩 고구마를 백개 먹은 듯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 악감정을 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유능한 악인'이 아니라 '무능(?)한 선인'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보아왔던 상사들처럼 꼰대 짓이나 알량한 권위로 직원을 찍어 누르기 보다, 어떻게든 대화로 소통하려 했다. 내가 매니저와 작은 논쟁을 벌였던 것 자체가 가능했던 것은 평소에 그가 보여준 열린 마음, 이런 불만을 표출한 내게 그 또한 악감정을 품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익을, 개인은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조직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이를 위한 희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는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특히 타국에서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팀원, 조직원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조직에서 성과를 내면서 관계를 해치는 것보다,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개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런 스타일이 이곳에서는 롱 런(long run)하기 마련이야"
K가 매니저가 '나이스'하기만 하다고 불만을 토로할 때, 옆자리에 있던 다른 팀원 G가 한 말이다. 참으로 신박하다. '가늘고 길게 사는 방법'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으니 말이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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