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M. W. Turner, "A Disaster at Sea"
두 돌이 안된 딸아이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엄마가 딸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듣게 이야기해도 딸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곤 한다. 말문도 터지지 않은 이 작은 어린아이가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는 것을 보니 초보 엄마 아빠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착한 아기 천사일 것만 같았던 우리 딸에게 이런 야누스의 모습이 있었다니 그야말로 충격. 일 년 넘게 육아를 하면서 지금까지는 느낀 피로는 육체에 국한되었지만, 이제는 슬슬 정신적인 스트레스 지수도 올라간다.
주 양육자로서 아이와 많은 교감을 나누고 있는 아내의 말로는 지금이 아이에게 '그럴 시기'라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 아이를 악동으로 만든다고. 그런가 보다. 유아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는 온다. 부모는 이를 받아들여야 하나보다. 자식이 뿜어내는 감정의 격랑속에서도엄마와 아빠는 끝까지 육아라는 배의 키를 잡고 버텨야 하니까.
저녁부터 폭풍 같은 한바탕 거사를 치르고 아이를 힘겹게 재우니, 왠지 이 그림이 생각난다.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가 그린 <바다에서의 재앙, A Disaster at Sea>을.
몇 년 전 런던에 있는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본 그림이었다. 2미터가 넘는 큰 캔버스에는 터너가 즐겨 쓰는 예의 그 노란색을 품은 폭풍과 파도 그리고 화염이 세차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림의 크기 만큼이나 격정적인 그림의 모습에 압도되어 난 한참을 그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배는 이미 두 동강이 나 좌초되고 있다. 어린아이와 여인들은 파편을 부여잡고 살아남으려 절박하게 애쓰고 있다. 폭풍과 파도는 집어삼키려는 듯 이들을 곧 덮칠 기세고, 잿빛 하늘은 이들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이 그림은 1833년 영국 앞바다에서 일어난 <앰피트라히티>호의 침몰 사고를 다루고 있다. 이 배는 108명의 여성 죄수와 12명의 어린아이를 싣고 있었는데, 사고 당시 이 배의 선장은 노약자들의 구조 요청을 거절하고 자기 살길만 찾았다고 한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단 세 명의 선원뿐. 터너는 이 사건의 소식을 전해 듣고 인간의 잔인함에 분노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오디오 가이드로 들으며 반사적으로 우리에게도 있었던 아픈 사건을 떠올렸다. 그 역사적 비극으로 얼마나 많은 어린 영혼이 희생되었던가. 그리고 자식을 마음에 묻은 많은 부모들의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터너의 이 그림은 결국 인간의 추악한 이기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다.
18개월 딸아이의 사춘기라는 우스갯소리로 시작한 글이지만, 부모된 입장으로써 딸의 질풍노도의 시기는 그저 감사하게 여겨야 할 일인 것 같다. 아이가 부모를 힘들게 해 애증의 존재로 전락할지라도 지금 내 품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저 사랑하는 딸이 사춘기를 건강하게 잘 벗어나길 바란다.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