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vs. 엄마

에두아르 마네 - 아르장퇴유 정원의 모네 가족

by 예나빠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드디어 나도 이 질문을 아이에게 하게 될 날이 왔다.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질문인지를. 아이 입장에서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질문인지를. 하지만, 아빠들은 이 질문을 아이에게 꼭 던지곤 한다. 그리고 확인받고 싶어 한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도 엄마보다 나를 먼저 좋아해 주기를. 참 유치하기 짝이없다.


18개월 된 딸아이와 조금씩 의사 소통이 가능해지고 있다. 말귀를 알아듣고 이에 반응하거나, 기본적인 예/아니오 질문에 “응!”, “으응~”등의 대답으로 명확히 호불호를 알려주거나 한다. 그렇게 난 아이와 대화가 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딸의 입을 통해 “아빠”와 “엄마” 그리고 몇 마디 단어가 들리고 있다. 가령 “일루와” 같은. 그중에 최근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는 단연 “아빠”다. 그것도 강세와 억양, 발음이 다 각기 다른 다양한 버전으로. 그런데, 아이가 “아빠”라고 말하는 목적과 시점도 좀 다르다. 예를 들면,


정말 아빠를 부를 때

아빠가 아닌 사람을 부를 때

기쁨과 슬픔, 환희와 격정 등 감정 표현을 위한 감탄사

대화의 흥을 돋우기 위한 추임새로 좋다, 얼씨구와 같은 의미

아무 의미 없는 말

등 여러 상황에 따른 용도가 있는것 같다.


아마도 아직 많은 단어를 구사할 수 없는 단계에서, 입에서 쉽고 명확히 발음이 되는 단어가 ‘아빠’다 보니, 이를 통해 본래 뜻 외에 다양한 상황에 쓰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영화 ‘가이언즈오브 갤럭시’의 나무인간 ‘그루트’가 ‘I am Groot’라는 문장만으로 모든 대화를 하는 것처럼.


"I am Groot" 로 모든 의사표현을 하는 그루트. 출처:영화 가이언즈 오브 갤럭시


나는 이런 아이의 입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끊이지 않는 틈을 타서, 절묘하게 바로 문제의 그 ‘아빠 좋아, 엄마 좋아’ 질문을 기습적으로 던진 것이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아빠!”라는 대답을 듣자, 마음속으로 환희의 송가를 불렀다. 살짝 유도 질문의 성격이 없지 않았지만, 나는 믿고 싶었습니다. 딸이 공식적으로 아빠에 대한 사랑을 공인해준 것임을.


저녁에 아이 엄마에게 녹화된 부녀의 대화 영상을 보여주자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엄마는 처음엔 살짝 서운 한척하더니 이내 평정심을 유지했다. 아빠의 약은 꾀를 이내 간파한 것이다. 아이는 엄마를 더 좋아한다는 믿음에 한치의 의심이 없었다. 가진 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주 양육자의 위엄이랄까?


이 에피소드에 대해 아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딸아이는 왜 ‘아빠’ 라고 대답했을까? 에 대한 고찰을 진행했고, 결국 두 가지 가설에 도달했다.


아직 질문 자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습관대로 ‘아빠’라고 대답했다.

질문의 의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빠와 엄마의 성향까지 파악해 가장 최선의 대답을 했다. 엄마는 자신의 애정을 일절 의심하지 않을 것이므로, 립서비스 차원에서 ‘아빠’라는 대답을 하여 아빠의 기를 살려주었다. 즉, 아빠에게는 명분을 엄마에게는 실리를 선물하여 궁극적으로 가정의 행복을 이끌었다.


두 번째 가설을 떠 올리며 아빠와 엄마는 딸아이가 그린 큰 그림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자식이 미 ‘영재’를 넘어 ‘천재’를 향해가고 있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 우리는 앞으로 이런 딸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막막했다. 벌써 부모를 뛰어넘었어… 라는 싱거운 상상과 함께 (웃음).




요즘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에게 조금씩 아빠가 각인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동안 엄마만이 절대적인 존재였다면, 이제는 아빠도 아이에게 나름대로 필요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 같다. 아직도 한참 모자라지만 아빠가 육아에 동참하며 조금식 딸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기쁨을 느끼곤 한다.


모네가 아내 까미유, 아들 쟝과 함께 보내던 행복한 나날을 담은, 이 눈부신 그림 한장이 생각나는 밤이다.



IMG_4364.JPG <아르장퇴유 정원의 모네 가족>, 에두아르 마네, 1874, 61 cm x 99.7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18 예나빠 촬영)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