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새로운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새로 살 집을 구하고, 차를 마련하고, 거리를 익히고, 복잡한 서류 절차를 처리하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그 모든 일들에는 참으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미국으로 이직하면서 일련의 정착과정을 홀로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가 가족을 데리고 왔다. 순조롭게 새로운 삶을 시작한 우리 가족에게, 통과해야 할 또 다른 관문이 다가왔다. 이주시 아내는 이미 임신 중이었고 미국에서 둘째를 출산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국과 다른 생소한 병원 시스템, 가격 대비 저품질(?)의 산후조리 등을 힘겹게 겪고, 드디어 네 번째 가족을 맞게 되었다. 아내의 조리 기간 동안 미국에 와주신 장모님과 미국에서 만난 지인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미국에서 아내의 몸조리가 끝난 후, 회사가 제공하는 8주의 육아 휴식을 이용해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다. 첫 육아휴직 한 달 동안 처갓댁에서 보낸 시간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였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과의 순간순간이기에 가능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육아휴직을 마친 한 달 뒤 홀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다. 비행기에 타자 마자 들었던 마음은 한국에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안도감이었다. 한국으로 잠시 돌아온 것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쉼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정작 그 쉼은 아빠를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동안의 이별이 한편으로는 나에게는 휴식을 의미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육아로부터의 휴직"에서 오는 육체적인 자유를 만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리 친지들이 도와준다지만, 아이 둘을 혼자 보고 있을 아이 엄마에게 미안해졌고, 말문을 트기 시작했던 첫째 딸과 석 달밖에 되지 않은 둘째 아들의 모습이 마음속에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이중섭은 이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던 화가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평안도의 부유한 대지주 집안의 막내아들이었지만, 가문의 부유함도 전쟁의 포화를 막아주지는 못했다. 환란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그리고 제주도로 휩쓸리듯 떠내려 왔다. 그와중에 겪은 것은 처음 접해보는 가난. 죄어오는 생활고로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아내 남덕과 두 아들, 태현, 태성을 처가댁이 있던 일본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가족들을 생각하며 그는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판잣집 골방에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면서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 그렸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 종이, 담뱃갑, 은종이에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어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다 [1]. 잠시라고 생각했던 이별은 한해 두 해가 되었고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그가 보낸 편지들로 새겨졌다.
그렇게 하루가 멀게 현해탄을 건넜던 것은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종종 편지를 통해 아들에게 그림을 그려 보내주곤 했다. 아들 태현에게 그려준 그림 한 장과 편지의 짧은 글이 아련하게 마음을 울린다.
태현에게,
나의 태현아 건강하겠지, 너의 친구들도 모두 건강하니? 아빠도 건강하다. 아빠는 전람회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아빠가 엄마, 태성이, 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듯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만 몸 성해라.
아빠
남쪽나라는 이중섭의 마음속 보금자리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던 작은 행복이 담긴. 하지만 그는 끝내 그곳에 다다르지 못했고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전거를 사 가지고 가겠다던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가족과 함께하길.
육아휴직 두 번째 달을 맞아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석 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애들은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첫째는 말이 늘어 애교와 재롱이 만개했고 둘째는 벌써 배밀이를 시작했다. 잠시 동안의 이별이었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버렸다.
시차로 가족들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곤 한다. 그때마다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아빠의 마음. 오늘도 감사할뿐이다. 나는 이제 곧 아내와 두 아이를 달구지에 태워 남쪽나라에 갈 수 있을테니까.
- 예나빠
이중섭 미술관과 거주지, 제주도 서귀포. 2015 예나빠 촬영.
참고문헌
[1] 1916-1956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지음, 박재상 옮김, 다빈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