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inbow Landscape>, Peter P. Rubens
오늘 집 근처 공원에 피크닉을 다녀왔다. 아담한 호수를 바라보며 넓은 잔디밭에 몸을 뉘이며 오랜만에 가족들이 쉼을 청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언제나 화창해서 좋다.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파란 하늘이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한다. 집 근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해 답답했던 첫째도, 천장만 보며 구르기만 했던 둘째도 모처럼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쌓인 에너지를 발산하니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다음 주면 두 번째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출근을 하게된다. 아이들과 기분 좋은 주말을 보내고 나니 출근길이 한결 가벼울 것 같다. 오늘따라 아내의 기분도 좋아 보여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이곳의 회사는 8주의 육아휴직(유급)을 준다. 임직원들이 자녀 출산 후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캘리포니아 주법에 의해 일정기간 날짜가 보장되어 있기도 하고, 회사도 장려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화목해야 직원들이 일도 집중해서 잘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8주의 육아휴직을 4주 + 4주 두 번으로 나눠서 따로 썼다.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갔다가 다시 데려 오기 위한 기간을 따로 쓰기 위해서. 이번이 두 번째 육아휴직이었다. 휴직기간 동안 한국에서 3주를 같이 보내고 아내, 첫째, 둘째를 다시 미국으로 데려왔다. 경험상 아이들 시차 적응에 시간이 필요할 듯하여 일주일 먼저 미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황금같은) 일주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애초에는 모처럼의 시간이니 여행이나 놀이공원도 가면서 가족과 더 신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하였으나, 시차 적응이 안 되는 아이들 때문에 거의 집에만 있게 되었다. 어떤 날은 한국시간으로 어떤 날을 미국 시간으로, 또 어떤 날은 유럽시간으로 잠이 드는 아이들 때문에 어른들의 생체시계도 덩달아 왔다 갔다 했다. 새벽까지 부산스럽게 뛰어놀던 첫째가 잠이 들면, 방에서 새근 자고 있던 둘째가 슬슬 울기 시작했다. 밥 달라면서.
미국으로 이직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보장된 절대적인 가족과의 시간'이었다. 미국 이주를 결정하면서 불안해하던 아내를 열심히 설득하던 레퍼토리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물론, 아내는 "얼마나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고, 보장된 혼자만의 자유시간이겠지. 흥!"이라고 콧방귀를 뀌겠지만. 그렇다. 그 정도로 내가 가정적이지는 않다. 육아 천국인 미국에 왔음에도 선천적 이기적 인간이다 보니 어떨 때는 가족보다는 자신의 시간 소중할 때도 있고, 일을 핑계로 육아를 외면할 때도 있다 (반성한다).
헌데, 이 것이 '보장된 시간'이라기보다는, 타의반 자의반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함께 이어야 하는 시간에 가깝다. 주중엔 직장 + 집의 공간을 벗어날 일이 없고, 집에는 항상 저녁 6시면 돌아오기에 '저녁이 있는 삶'은 자연스레 가족과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의 과반수가 어린아이이면 그 시간은 육아로 채워지게 되고. 그래서 육아 출퇴근 시간이 한국보다 훨씬 잘 보장(?)되어 있다.
보장된 가족과의 시간이 솔직히 힘들 때도 있어 어떤 때는 한국에서의 '저녁 없는 삶'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때는 일과 야근이 좋은 핑계가 되어 주기도 하니까. 아빠가 육아에 좀 소홀해도 되는. 물론 이를 이용하면 문제겠지만.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일이다. 일이 있어 주말에 출근을 했더니, 옆자리의 동료가 책상에 엎어져서 자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피곤하면 집에 들어가지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애 보는 것이 힘들어서 출근했다고 했다.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그 말이 참 어처구니없게 들렸는데 지금은 그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보내는 삶이 그래도 소중하다. 늦게까지 노는 아이 보느라 지쳐도, 자다 일어나 울고 보채는 아이 때문에 잠을 설치더라도, 사소한 일에 짜증내고 보채는 아이 때문에 속이 뒤집어져도 그 모든 순간들이 그 '절대 시간'에 포함되어 아이와 공유될 수 있으니 말이다.
며칠 전 내 SNS 사진에 친구가 달아준 답글 하나가 기억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성경속 다윗이 자신의 반지에 새겨 넣은 문구다. 승리의 순간에도 겸손하고 좌절의 순간에는 스스로 격려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 친구의 말처럼 폭풍 같은 육아의 고통과 번뇌는 언젠가 지나갈터다. 물론 지나갈만하면 또 찾아오겠지만. 그리고 어느 날 그 모두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 그 자리에서 무지개를 볼 수 있듯이 말이다. 루벤스의 이 그림같은 무지개를.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