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문 두드림, 그리고 아직 열리지 않은 문
NVIDIA는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가
꽤 오랫동안 브런치를 방치했다. 카툰 브런치북을 띄엄띄엄 올리긴 했지만, 연재일은 지키지 못했고, 새로 개설한 또 다른 브런치북은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브런치를 방치한 것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그간 내게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에서의 두 번째 이직이다.
첫 번째 이직을 할 때도 브런치를 잠시 쉬었다. 탑티어가 아닌 평범한 엔지니어로서 미국에서 이직을 시도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그 기간만큼은 '글쓰기'에 마음의 여유를 두지 못했다. HR 콜, 인터뷰, 협상 등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었겠지만, 감정의 파동이 너무 커서 글로 옮기기가 버거웠다. 어쩌면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건, 그 순간마다 분출되던 내 민낯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 이번 이직도 계획적이지 않았다. 언제나 기회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은 평소에, 어떻게 준비를 해두느냐에 달려있다... 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준비를 해 둔 것도 없었다. 다만 '언젠가 저 회사를 꼭 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는 오래 품고 있었다.
브런치에 'NVIDIA는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25년 동안 보아온 외부자의 의견'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동안 학계, 업계에서 경험했던 NVIDIA에 대한 간접 경험에, 개인 의견을 더했다. 낚시성 제목 탓인지 바이럴이 꽤 돼서 많은 이들이 읽어 주었던 것 같다.
* 더 이상 외부자가 아니라 내부자가 된 연유로 해당 글은 내렸다.
그 글을 쓰면서 느꼈다. 아, 나는 이 회사를 정말 가고 싶어 했구나. 거의 창립 시절부터 지켜봐 온 입장에서, 왜 그토록 특별한 회사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Green Team에는 어떤 DNA가 흐르기에 광속(Speed of Light)으로 혁신을 거듭하며, 업계 1위를 지속해 나가는 걸까. 외부자의 시선으로 분석해 본 이유들—사람, 기술, 연구-사업화 연계, 마케팅과 생태계, 리더십—그 모든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직접 보고 싶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이유 없이 오래도록 가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아키텍트가 되었는지에 대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학원, 삼성, 인텔, AMD를 거치는 동안, NVIDIA는 항상 '따라잡고 싶은 레퍼런스'였다. 그 막연한 동경은, GPU가 태어나기도 전, 미국 대학과 기업들이 발표한 그래픽 가속기 논문을 힘겹게 읽어내리던 석사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게 꿈이라면, 참 오래된 꿈이었다.
그 꿈을 백일몽으로 끝내기 싫었던 나는 실제로 커리어를 걸쳐 NVIDIA에 여러 번 노크를 했다. 고백하자면 이번 NVIDIA 입사는 단번에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네 번째 도전 끝에 얻은 결과였다.
1) 처음은 박사를 졸업하던 시점이었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지원했고 인터뷰 보자는 연락이 왔다. 20여 년 전이었고, NVIDIA도 지금만큼 큰 회사도 아니었기에, 신분도 없는 해외 인력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었다. 결과는 폰스크린에서 광탈. 영어도 짧았던 내게 '입'코딩이라는 전대미문의 관문은 너무 생소했고, 높기만 했다.
2) 삼성 재직 시절, NVIDIA Korea사에서 CUDA 엔지니어 지원 제안이 와서 응했다. 미국 본사의 VP/엔지니어와 전화 면접을 장시간 가졌는데, 기술 Q/A에서 여러 번 넘어졌고, 결과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다. 그간 GPU 아키텍처 연구를 했어도, CUDA 응용 개발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3) 미국으로 건너온 뒤 인텔에서 그래픽스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GPU 아키텍트 포지션으로 연락을 받았다. 이번엔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아키텍트들과도 협업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어링 매니저는 내 이력서의 논문과 특허 목록을 보며, "자네는 연구자이지 아키텍트 팀보다는 NVIDIA Research 쪽이 맞겠다"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쪽에서도 연락은 없었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노크를 하던 시점 이래로, NVIDIA는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질 만큼 눈부시게 성장했고, 입사 문턱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동기간 나도 업계에서 짬빱을 먹다 보니, 이직이 상대적으로 쉬운 직급은 진작 지나버렸다. 이미 터미널 레벨에 다다른 상태였고, 한 단계 위로 오르려면 개별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를 벗어나 영혼을 끓어모아 일을 해야 했다. 도약을 하려면 사내 승진이 아니라 이직 외에는 답이 없었다. 인텔에서 AMD로 직군으로 바꿔 이직하고, 공식적으로 아키텍트로서의 경력을 쌓으며, 어쩌면 내 엔지니어 커리어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기다렸다.
AMD에서 2년을 넘긴 시점, 아키텍트 직군이 시장에서 희소가치가 있었던지, G사, M사와 같은 빅테크에서 면접 제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만 GPU가 아닌 NPU 직군이었다. 역시 AI 가속기가 화두였다. 그중에 M사 그래픽스 아키텍트 직군도 있어서 시험 삼아 지원도 해보았지만 역시 광탈이었다.
준비가 부족했다. 아니 준비를 제대로 안 했다.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아서였다. GPU/그래픽스로 꾸려왔던 내 경력 경로에 M사가 포함되면 궁극적으로 가고자 했던 NVIDIA와는 멀어질 것만 같았다. M사는 광고, SNS로 큰 빅테크였고,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AI 및 그래픽스 실리콘을 직접 개발하고 있었다. 문제는 전통적인 반도체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개발 프로세스가 정착이 안되어 있을 것이고, 해당 회사의 경력은 향후 NVIDIA 진입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는 변명이고, 결과적으로 내가 부족했던 것이 맞다.
그러던 차, 유구한 역사를 가진 A사의 GPU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다리던 NVIDIA가 아니었지만, A사라면 내가 가꿔온 경력 경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A사의 HR과 소통하던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 시도하는 이직, 나도 한번 오퍼 여러 개 받아서 네고 빡세게 해 보자는 미친 생각.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NVIDIA를 내가 직접 두드리자. LinkedIn에 뜬 NVIDIA 구인 공고를 확인했고, 마침 핏과 직급이 잘 맞아 보이는 'Principal Graphics Hardware Architect' 포지션을 확인했다.
온라인으로 지원하면 우선순위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학회에서 만나 알고 있던 지인 J에게 레퍼럴을 부탁했다. J는 흔쾌히 화답했다. J는 지인이었기에 일단은 '강한 추천'이긴 했지만, 소속이 GPU 아키텍처팀이 아니라 하이어링 매니저에게 별도의 코멘트를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 지인에게 받는 '강한 추천'과 모르는 이에게 받는 '약한 추천'의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지인이 없는 경우에 강한 추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출간된 책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사람> 288p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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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럴을 통한 별도의 링크를 통해 온라인으로 지원했다. 그러던 와중에 진행하던 A사는 채용하려는 직군이 아키텍트가 아니라 모델링 엔지니어라며, 아키텍트 직군은 향후에 공고가 나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아키텍트 업무 중에 모델링도 있지만, 본업을 아키텍트로 지켜가고자 했던 나는 모델링 엔지니어 직군 인터뷰 제안을 정중히 고사했다.
결국 야심 차게 꿈꿨던 '멀티 오퍼 네고'는 물거품이 됐다. 그리고 NVIDIA? 한 달이 넘도록 아무 연락도 없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배추를 세기 시작했다. 한 포기, 두 포기, 세 포기… 네 번의 포기 끝에,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집중했다. 그때, 잊었다고 생각한 문이, 조용히 다시 열렸다.
두 달이 되어가던 시점 뜬금없이 연락이 온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