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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VIDIA 이직 단상 #2

by 예나빠


https://brunch.co.kr/@airtight/384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팀에서 당신의 이력에 흥미를 보인다. 인터뷰가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달라'


HR부터 첫 연락이 오기까지 거의 두 달이 걸렸다. 사실 연락이 없자, 2-3주 차 즈음부터는 싹 잊고 현생을 살았다. 'AMD도 충분히 좋은 회사잖아'라고 자위하며. 나는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면서 이직을 종종 시도하곤 했다. 이직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적은 많았지만, 서류 단계에서 탈락했다고 실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부분 인터뷰 단계까지는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부분의 경우가 '나의 지원'이 아니라 'HR의 제안'으로 시작된 인바운드 채용(inbound recruiting)이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 인바운드 채용과 아웃바운드 채용(outbound recruiting)의 차이와 장단점에 대해서 출간된 책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사람> 172p를 참고하기 바란다.


기쁨보다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 준비를 하려면 또다시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한다. 솔직히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미 마음을 접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기세 싸움이다. 이직을 시도하는 순간,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문을 향해 나설 때면 늘 초조해지고, 그 문을 열기 위해 매일 열심히 열쇠를 깎는다. 그 기간 일상도 긴장감으로 채워진다. 스스로와의 싸움이 무르익었을 때, 인터뷰는 그 흐름 속에서 치러져야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활시위는 언젠가 놔야 한다. 계속 당기기만 해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maxresdefault.jpg 이미지: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그런데 두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나는 이미 타고 있던 외줄에서 내려왔고, 그렇게 단념했다. 이젠 점심시간에도 면접 준비 대신, 브런치 카툰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고 있었다. 웃긴 건, 내려놓으니 오히려 편해졌다는 것이다. 'NVIDIA라니. 어차피 또 떨어질 텐데. 잘됐어. 인터뷰 준비로 마음고생 안 해도 되잖아?' 이런 자존감 낮은 자의 정신승리, 자기 합리화를 산산이 부서지게 한 것이 바로 '인터뷰 보자는 연락'이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인터뷰 본다고 잃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경험이 쌓이지요"


'미국 이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인데 인터뷰 봐도 될까요?'라는 커뮤니티 고민 글에 나는 마치 현자인양 이런 댓글을 달았다. 같은 상황이 도래한 나는 정작 초연하지 못했다. 내가 남에게 쉽게 말하던 조언이 내겐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어차피 안될 것'이라는 사전 체념은 생각보다 컸다. 인터뷰를 보고 떨어진다면, 잃는 것이 없을 리 없었다. 준비에 들인 시간, 그리고 그보다 더 깊게 패일 자존감이었다.


결국 다시 그 긴장감의 동굴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를 그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은 건 불안이 아니라, 오래도록 가슴속에 품어온 그 회사에 대한 동경이었다. 나는 HR 직원의 메일에, 최대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담았고, 2주의 여유기간을 둔 인터뷰 가능 일자들을 답변했다. 바로 다음날 세명의 면접관 이름과 함께 최종 인터뷰 일정을 통보받았다.


공교롭게도 3인의 면접관 A, B, C의 이름이 모두 익숙했다.


A는 내가 인텔에 재직하던 시절 유관 부서의 팀장이었다. 직접 함께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매니저를 통해 약간의 안면은 있었다. 반가운 이름이었지만, 인터뷰어로 통보받기 전까지 A가 NVIDIA로 이직을 한 사실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B는 대학원 시절, 일본 연구소에서 인턴을 할 때 나의 멘토와 함께 공동 연구를 하던 인사였다. 멘토가 썼던 논문에서 공동 저자로 등재되었던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가 졸업하고 NVIDIA로 입사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온라인상에서의 그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인터뷰어로 통보받게 되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C의 이름을 마주한 순간,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내가 20여 년 전 대학원에 처음 진학했을 때, 사수가 이 분야의 핵심이라며 읽으라 줬던 논문의 저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분야 연구자라면 누구나 아는 선구적인 논문이었다. 나는 이 논문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고, 석사, 박사 과정에서 논문을 쓸 때도 몇 번이고 C의 논문을 인용했다.


디스팅귀시드(distinguished) 엔지니어 셋의 이름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 박제되어 있던 대학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족했던 독해력, 배경 지식 탓에 힘겹게 논문을 읽어 내려가던 풋내기 연구자였던 나는 '언젠가 나도 미국'이라는 막연한 꿈을 꿨다. 그리고, 그 논문들을 써내던 저자들이 정착한 회사, NVIDIA에 대한 선망도 자라났다.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그 꿈의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 2주간은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매일 저녁 최선을 다해 면접 준비에 몰두했다. 지원한 아키텍트 직군이 내 이력, 현재 업무와도 적합도가 높았지만, 혹여나 모를 돌발질문에 대비해 다양하게 준비했다. 아키텍처에 관한 학부, 대학원 수준의 기초부터, 최신 표준화, 제품, 기업 트렌드까지 싹 다시 머리에 채워 넣었다. 업계에서 내가 해왔던 일들, 그 핵심 내용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다시 불러냈다.


또한 고직급 직군이기 때문에, 분명히 시장의 미래,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같이 추상적인 대화도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GPT를 활용해 예상 질문을 정리하고, 각 질문에 나만의 답변을 준비했다. 또한 A, B, C 면접관에 대해 GPT에게 프롬프트를 주고, 각자의 배경에 맞춘 최적의 질문들도 준비해 두었다.


01._미생1화_(2).png 난 낙하산 아니라고. 이미지=드라마 <미생>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인터뷰 전략을 세웠다. 면접관에 대한 내 익숙함을 자연스럽되 과하지 않게 노출하는 방법이었다. 이는 일종의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얻는 교훈이었다. 예전에 모 빅테크 인터뷰를 볼 때였다. 면접관과의 간접적인 인연을, 다짜고짜 면접 시작 시에 언급했다. '잘 봐달라'까지는 아니지만, 면접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하고자 했던 의도였다. 하지만 그 면접관은 표정변화 하나 없이 퉁명스럽게 '그러냐?'라고만 했고, 바로 질문으로 넘어갔다. 한 줌도 안 되는 'mutual friends'의 인연을, 그것도 인터뷰 시작에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나는 낙하산 아니라고!


그래서 이번엔 면접관이 내 이력서를 보고 '그럼 혹시 누구 아냐?'라고 묻기 전에 절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인연에 기대 인터뷰를 보고자 하는 인상은 철저히 배제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익숙함, 사적인 기억은 인터뷰 세션 마지막에 남기는 것으로 전략을 세웠다. 마지막에 언급하면 인터뷰의 객관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오마쥬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A-Z까지 준비에 만전을 기했고, 운명의 인터뷰 날을 맞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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