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 엔지니어

그때 내가 그렸던 미래

by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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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07년이니 거의 20년에 나온 책이다(원서인 The Civilized Engineer는 1998년 출간이니 20년이 훌쩍 넘음). 저자인 사뮤엘 플러먼은 이력이 독특한데, 학사는 건축공학, 석사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그 이력만큼이나 자신의 책을 통해 엔지니어가 왜 인문학에 밝아야 하는지를 설파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때다. 당시 나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아마 그때쯤부터 이었던 것 같다. 다시 닥치는 대로 여러 책을 읽기 시작했던 때가.




불행하게도, 젊고 총명한 공학도들의 '열정'과 '패기' 그리고 '사명감'만으로는 이 사회가 혹은 나라가 꿈꾸는 것처럼 아름답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미래는 너무 불투명하고 기술적 변화는 변화무쌍하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엔지니어가 10년 정도 경력을 쌓고 나면, 비즈니스와 경제학에 대해 좀 더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다시 10년이 흐른 뒤에, 그들은 리더십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면서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태생적으로 창조적인 작업을 요구받는 엔지니어에게, 인문주의적 또는 예술적 사고를 통해 기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교양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엔지니어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고, 또한 그 가치를 더 의미 있게 한다. 산, 학, 연에서 펼쳐지는 공학의 모습에는 구조적으로 괴리가 있게 마련인데, 그 간극을 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유연한 사고와 폭넓은 시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말하기와 쓰기(혹은 그리기), 비즈니스 감각 등, 인더스트리에서 필요한 이 모두가 인문학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전통, 역사, 생각, 세상에 대한 이해 등 우리를 사회로 함께 묶어주는 공통의 지식과 가치를 전수하는 것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내 '갈증'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이제 조금씩 '해갈'을 맛보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그 깊이가 일천하여 여전히 목마르지만, 그렇게 쌓인 이종 간의 지식과 경험들이, 어느 순간 빅뱅을 일으키는 '메디치효과'로 이끌 것을 믿는다. 이러한 발걸음이 원천이 되어, 통찰이 섬광처럼 스치게 될 것이고, 영감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것이다. 그렇다. 내가 꿈꾸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은 '교양 있는 엔지니어'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 책을 읽고 남겨둔 독후감이다. 16년 전 쓴 이 글을 다시 읽다가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쥐뿔도 모르면서 선언문적 문장, 미래를 향한 강한 의지를 남발하고, 되지도 않는 메타포를 가져다 쓴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현재 나의 모습이, 당시 생각했던 내 미래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이후 그만큼 더 읽고, 쓰고, 생각하던 습관을 가졌던 것이 공학이라는 업을 그만큼 더 오래 할 수 있게 한 것 같다. 인문학이 나를 더 뛰어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이 업계에서 더 오래 버티게 한 것이다.


16년 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바로 이 시대야 말로 엔지니어가 문명화(civilize)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I가 엄습할수록 가장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엔지니어만이 그 가치를 발할 것이라 믿는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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