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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VIDIA 이직 단상 #4

마지막 식을 완성케 해준 은혜

by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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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만렙 레이드 보스'같던 인터뷰어는 그렇게 다음 문제를 던졌다. 남은 시간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것은 내가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었다.


"XXX라는 제한된 상황아래에서 YYY를 위해, 최적의 ZZZ를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이 뭐죠?"


문제를 듣자마자 그 '고려사항' 하나가 즉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AAA입니다"


"좋습니다. 또요.."


연속 질문. 면접 시 제일 듣기 싫은, 내 지식의 하한이 어딘지를 보고자 하는 질문이다. 첫 대답만으로 얄팍한 내 지식의 깊이를 감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동안 내가 만난 그 어떤 면접관도 '불완전한 답'만으로는 문제를 끝내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후보자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면접관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질문할 수밖에 없다. 하긴 나도 그랬으니.


머리를 쥐어짰다.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릅니다...'라는 대답을 하자니, 천신만고 끝에 끌어올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 같아 너무나 주저되었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답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과거 면접자/면접관으로서의 경험상, '어설픈 대답'은 차라리 아니한 것보다 못했다. 어설픈 대답으로,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서면, 연속 질문에서 정체가 드러나 신뢰도만 바닥을 친다. 게다가 내가 인터뷰를 보고 있는 회사는 '기술적 정직성(technical earnest)'를 가장 중요시하는 NVIDIA.


"그 경우 KKK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KKK를 하기 위해 QQQ를 고려해서 이렇게 저렇게 설계해 볼 수 있고... "


가불기에 걸린 상황에,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답을 냈다. 문제와 최대한 유사한 다른 상황을 제시해 이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었다. 답을 하면서도 면접관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가 요구하는 답이 아니란 걸.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맞는 말이긴 한데. KKK는 XXX의 한 예일뿐이죠. 그건 특수한 경우고, 이 문제가 원하는 건 일반화된 대답입니다."


역시 마지막 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핵심에 다다르지 못하면 내가 내놓은 답은 그에게 '동문서답'과 다름없을 뿐이었다.


면접관과 아이컨택이 끊어지는 위험을 감수하며 다시 펜과 종이를 꺼냈다. 몇몇 키워드를 써내려 갔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그리고 정적이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면접관에게 문제에 관한 몇몇 질문을 던졌다. 그럼에도 그가 원하는 정답을 끝내 생각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나 보다...' 결국 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그렇게 하기 싫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려던 순간, 불현듯 몇 달 전 RTL 엔지니어 D와 협업하던 일이 떠올랐다. D는 내가 아키텍처로 설계했던 A블록을 구현 중이었다. 최적의 구조로 구현하기 원했던 D는 내게 A의 특정한 한 파라미터 값을 요청했다. 그리고 난 그 최적값을 구하기 위해, 다양한 입력을 조합하여 재실험을 했다. 그리고 그 실험을 할 때 적용한 지표가 바로... 내가 지금 답해야 할 그 대답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평균 MMM율(率)입니다. MMM은 LLL와 OOO를 이용해서 구할 수 있죠."


"맞습니다. 그럼 MMM와 앞에서 대답하신 AAA를 이용해 수식을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난 잠시의 고민을 한 뒤 최종 수식을 완성했다. 인터뷰어가 원했던 바로 그 답이었다. 연신 굳은 표정이었던 그는 환하게 웃었다.


"맞아요! 그게 이 문제의 정답입니다!"


그렇게 난 어렵사리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생각해 보면 그 마지막 답은 이미 내 안에, 내 과거 경험치의 범주 내에 있었다. 도중에 냈던 동문서답 같던 대답, 그리고 종이와 연필로 했던 사고(思考)의 시간, 그리고 정적을 피하려 면접관에게 던졌던 역질문... 그 모든 과정이 내 기억 어딘가에 묻혀있던 그 진주를 꺼낼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지막에 극적으로.


"면접 시간 2분 남았네요. 마지막으로 질문 있나요?"


마지막 코멘트를 하던 인터뷰의 얼굴엔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가식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은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준비한 질문들이 많이 있었지만 남은 시간은 거의 없었기에, 질문을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다행이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서.


"질문보다는 감사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20년 전 대학원에 처음 진학하며 그래픽스 하드웨어 분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자였습니다.


그때, 지도 교수가 이분야의 핵심 논문이라고 읽어보라 주셨던 논문이 있었죠. 바로 면접관님께서 쓰셨던 CCC논문이죠. 저는 그 논문을 어렵사리 읽어가며 조금씩 연구라는 것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처음으로 잡았던 연구주제가 DDD였고, 석사 때 읽었던 CCC가 제 논문의 핵심 인용 논문이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이 분야에 선구적인 연구를 하시고 길을 닦아주셨기에, 저 같은 후배 연구자가 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그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자신의 논문을 읽었던 업계의 후배로부터, 오마쥬에 가까운 상찬을 들으니 보람과 흐뭇한 감정이 밀려왔을 것이리라. 그는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라는 말을 했고, 우리는 좋은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가쁜 큰 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1시간이 영겁의 시간 같았던 그 인터뷰를 끝냈을 때, 나를 옥죄던 모든 긴장감은 사라졌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왔다. 잘한 것일까? 인터뷰를 무사히, 좋은 분위기에서 마쳤지만, 첫 문제를 놓고 저질렀던 치명적이었던 실수가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남은 것은 잠잠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NVIDIA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은 한 달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동안 나는 마음을 비운채 업무에 집중하려 했다. 쉽지는 않았다. 마지막 면접관의 첫 문제를 통과하지 못했던 내 실수가 발목을 잡았던 것이었을까. 1주, 2주, 3주째.. 걱정과 기대감에 연락을 기다렸으나, 대답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4주째가 넘어갔을 때 나는 단념했다. 그리고 깨끗이 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 달의 기간 동안 나는 참 절박했다. 이미 난 충분히 감사한 업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꿈꾸던, 하지만 감히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던, 그 회사의 턱밑까지 다가갔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간절하게 했다.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로부터 또 몇 주 뒤였다. 심정을 정리하고 일상에 몰입하던 어느 날, 인터뷰를 보았던 기억조차 희미해질 무렵, 그렇게 나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 단계로 진행하자는. 그 메일을 열었던 순간, 나는 기쁨에 앞서,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졌다. 오랜 기다림은 환희를 내지를 기력마저 앗아갔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 기회가 생긴 것에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예정되어 있던 출장을 다녀온 뒤, NVIDIA의 다음 인터뷰 절차를 밟았다. 팀의 디렉터를, 그리고 그 며칠 뒤 VP를 만났고, 이들과 또 한차례의 천상계와 연옥을 오가는 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는 오퍼에 사인을 하게 되었다.


우여곡절은 조금 있었지만 AMD에 퇴사를 통보하고, NVIDIA로 이직하는 절차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두 회사는 경쟁사였고 큰 틀에서는 같은 GPU 범주였다. 하지만 다른 블록을 책임지는 부서로 이직을 하는 것을 설득해, AMD 매니저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퇴사에 대한 반박 불가한 사유, 설득, 카운터 오퍼 제시, 정중한 고사. 그리고 난 퇴사까지 2주가 아닌 3주 유예기간을 두었고, 그 기간 동안 그간 해도던 업무를 최대한 자세하게 문서화했다. 그리고 성심껏 인수인계를 했다. 그 모든 과정이 판박이였다. AMD로 이직하며 인텔을 퇴사하던 그때처럼 난 최대한 프로페셔널하게 처신했다.



그리고 선망하던 NVIDIA에 입사했다. 생각해 보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미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회사의 회장은 외부에서 알려진 이미지보다 훨씬 유쾌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왜 직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사내에서 그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의 일정 일거수일투족을 대서특필하는 한국의 기사들을 읽으며 묘한 감정에 젖었다.


커리어 내내 그저 레퍼런스로만 바라보던 회사. 그 회사에 실제로 입사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가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 능력만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특히 인터뷰의 마지막 문제. 완전히 멈춰버린 머릿속에서, 거의 포기하려던 순간, 마치 오래 묵혀두었던 서랍이 스스로 열리듯 한 경험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 흐름을 나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분명 은혜였다.


가끔은 ‘내가 해냈다’는 마음이 스칠 때가 있다. 스스로를 조금 포장해보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러다 그날을 떠올리면 금세 조용해진다. 막다른 벽 앞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길이 열리던 그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마치 만렙 고수처럼 스스로를 포장해 자기 계발서를 내기도 했지만, 실제로 나는 어떤 조직에서도 큰 기술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꾸준히 일하던 엔지니어였을 뿐이다. 그런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실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분명히 내 앞을 비추어준 흐름이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순간까지 지켜진 발걸음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은혜’라는 단어 말고는 딱 맞는 표현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더 겸손해진다. 그리고 감사해진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선망했던 것은 ‘NVIDIA’라는 회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은혜를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의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 예나빠.


NVIDIA 이직 단상 -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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