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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Aug 21. 2020

미국 이직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경력자 미국 이직시 준비해야 할 것

제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력자의 해외 IT업계 이직을 위한 아주 겸손한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물론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인터뷰 자체인데, 당연하게도 이는 순수하게 그동안 쌓아온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관문을 통과하는 스킬보다는 그 곳까지 순조롭게 다가갈 수 있는 전략에 가깝다. 내 이력서가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주게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두고 평소에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다양한 IT업계를 경험해본 프로 이직러도 아니어 아래 내용을 모든 경우에 일반화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한국, 미국의 대표적 반도체 회사를 경험해본 한 경력자의 의견 정도로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다. It's my two cents.


일관성있는 경력.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있는 경력 관리다. 개발자/연구원으로 다년간의 경력을 쌓다 보면 필히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 결과가 내 이력서의 한 줄, 한 줄이 되고 그간의 경험들을 통해 자연스레 다양한 스킬셋을 쌓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10년의 경력이라도 A, B, C 분야 등 연관 없는 다른 분야를 몇 년에 걸쳐서 한 것보다는, A 분야를 꾸준히 해 온 이력이 미국에서는 더 선호된다. 내가 쌓아온 경험이 큰 틀에서라도 한 분야로 묶일 수 있어야 비로소 '전문가'로 비치기 때문이다.


흔히들 한국 기업에서는 연차가 높아지면 깊이와 넓이를 아우르는 T자형 인재가 되길 강조한다. 그런데, 이는 한 조직에서 경력을 키워가며 자신의 역할을 성장시키는 모델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경력자가 한 번의 기회를 통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접 이직을 시도하는 경우에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의 모든 경력을 조금이라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언컨대 깊이를 더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자고로 한 분야에서 10년은 파야 전문가. 사진출처 "방망이 깎던 노인"


이는 한국과 미국의 기업문화나 채용과정의 다음에서 기인한다. 한국 대기업은 일단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한 후 사내 재교육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한다. 따라서, 개인의 전문성보다는 조직의 당면한 목표, 프로젝트 사정에 따라 개개인의 담당업무가 자주 변경되곤 한다. 


이에 비해 미국 기업들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아주 세분화시키고, 이 세분화된 업무에 필요한 인력들을 수시로 채용한다. 채용 공고도 단순 '소프트웨어 개발자', '하드웨어 개발자'가 아닌 'achitect', 'verification engineer', 'compiler engineer', 'device driver engineer' 등 구체화된 직군을 기준으로 뜨게 된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해본 경력으로는 특정 직군에 지원하기 어려워지고, 한 분야에서의 오랜 경력이 있는 specialist가 그만큼 유리한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이렇게 경력관리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수시로 일어나는 조직개편으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혀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는 경우 자신의 경력에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저 지금 맡은 업무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향후 10년 후 내가 '전문가'로 불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이력을 키워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력의 일반화, 객관화.


일관성 있는 경력을 가꾸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일반화,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 그대로 다른 회사에서도 활용될 수 있으려면, 가능한 일반화할 수 있는 업무를 맡아야 한다. 리더십, 조직관리, 소통, 대인관계 등과 같은 소위 '소프트 스킬'은 일면 타고나는 것도 있고 한번 갖추면 이직 후에도 십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개발자/연구원이 각고의 노력으로 쌓은 '기술력'은 경우에 따라서 이직 후에 꽃을 피울 수도 그대로 사장되어 버릴 수도 있다.


현재 업무가 현재 회사에서만 사용되는 플랫폼에서만 국한되고, 개발 툴도 사내용이라면 어떻게 될까? 해당 업무를 하면서 쌓은 스킬이 새로운 회사에서 인정받을 확률은 희박해진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제품에 대한 개발과제 업무를 몇 년간 진행했는데, 어떠한 이유로 해당 제품 출시가 엎어지면? 이 기간 동안의 경력을 내 이력서의 한 줄에 잘 포장해도 보는 이에게 주는 인상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 회사에만 국한되거나 실패한 프로젝트라도 배우는 것은 있고, 새롭게 접하는 스킬, 지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충분히 알려진, 게다가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이 자신의 이력서에 적혀있는 것과는 그 무게감이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가능한 범용적인, 업계에서 통용되는 스킬셋을 쌓아야 하고, 향후 대외적으로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과제를 맡는 것이 중요하다. 채용 측에서도 이력서를 보다가 누구나 알만한 제품, 기술군을 발견하면, "어, 이 친구 A사에서 B개발을 했었네? 경험을 들어보고 싶군. 인터뷰 부릅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고로 왼 손이 한 선행은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하지만, 왼 손이 쌓은 경력은 내 오른손뿐이 아니라 모든 이의 손이 알아야 한다.


만일 파일럿 과제를 주로 하는 리서치 직종이면 연구결과가 상용화로 이어질 확률은 더욱 어렵다. 연구 결과의 우수함과 별개로 실제 상용화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논문'을 쓴다.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연구 결과로써 충분히 가치가 있으면 연구 결과를 논리 정연하게 기술하여 대외에 발표를 하고, 이를 자신의 주요한 경력으로 삼는다. 


좋은 학회에 발표된 논문만큼 연구원에게 자신의 이력을 '객관화'시키는 좋은 방법은 없다. 컨퍼런스에 논문이 발표된다는 것은, 학/업계를 주도하는 동료 연구자들의 리뷰를 통과했고 이 연구 경력은 충분히 검증되었다는 뜻이니까. 특히, 논문을 계속 발표하면 해당 업계에 자신의 인지도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직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사전에 인터뷰어에게 내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면 그만큼 인터뷰는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개발자들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가능한 자신의 경력과 스킬을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다. 사내에서 기회가 된다면 오픈소스, 표준화, 학회활동, 개발자 컨퍼런스 등 대외활동을 자원하여 업계에서의 기여도, 대외적인 노출도를 높이는 것이 미국 이직으로 가는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네트워킹.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맥은 미국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미국 IT기업에서 인재 채용 시 후보자에 대해 누군가의 추천이나 의견을 듣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원하는 회사에 지인이 있다면 인터뷰를 위한 레퍼럴을 해줄 수도 있고, 지인이 자신의 팀 인력 충원 시 나를 매니저에게 추천할 수도 있다. 따라서, 평소에 잘 관리된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면 이러한 기회를 얻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그런데, 한국 회사에서 열심히 일만하는 내가 어떻게 해외 인맥을 쌓을 수 있을까?


이는 경력의 '객관화'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외활동을 지속하다 보면 사내외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논문 발표, 학회 활동, 개발자 컨퍼런스 등을 참석하면서 업/학계 동향도 파악하고, 동종업계 엔지니어들과 만나 기술 교류도 하며 하나둘씩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 교류라는 것은 현 소속 회사의 업무 보안과도 상충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최대한 자사에서 수행하는 업무의 언급없이 기술 트렌드, 상대방의 논문/발표에 대한 의견 등의 주제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스킬이 필요하다). 


학회나 개발자 컨퍼런스에는 발표 세션 외에 참가자들의 네트워킹을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어있다. 쉬는 시간, 만찬회 등의 기회를 적극 활용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식 소셜 스킬을 익힐 기회가 별로 없었던 한국의 엔지니어들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자.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질문하고 칭찬하자. 해외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열린 마음으로 당신의 말에 경청해 준다. 


파티만 되면 샤이해지는 당신.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


또한, 본인의 업무가 회사 해외 연구소, 지사와 협력을 하는 경우라면, 이를 통해 해외 엔지니어들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해외 협력, 표준화 업무 출장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이렇게 네트워크를 잘 확보해 두면 이를 통해 차후에 분명히 이직의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스킬.


흔히들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과연 무엇일까? 좋은 대인 관계, 대화, 소통 능력, 설득, 협상력 등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미국 회사에서의 경험에 비춰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아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어라는 언어 장벽이 있기 때문에 한국 엔지니어에게 그 스킬의 난이도는 올라가겠지만, 영어 구사 능력에 앞서 모국어로도 자신의 지식을 말로써 잘 풀어내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하는 법.


팀원 간 협업이 중요한 미국 회사에서는 수시로 기술 회의를 하는데, 이는 단순 진행 상황을 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지식을 전달하는 성격이 강하다. 회의를 통해 상대방의 진행 사항을 듣고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더하면서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회의 시 발언을 많이 하고 다른 팀원들에게 좋은 의견을 더 많이 주는 엔지니어가 그만큼 기술적 리더십을 갖게 된다. 단순히 연차가 높고 상사이기 때문에 리더십을 갖는 것이 아니다. 좋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통해 팀원들, 나아가 유관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엔지니어가 그만큼 능력을 더 인정받는다.


한국에서는 중용이니 해서 말을 절제하는 것이 미덕일지 모르나, 미국에서는 그런 것 없다. 회의 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회의 시 본인 업무만 말하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한국에서처럼 결코 겸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컨텐츠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 


물론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사진출처: https://www.theedgesearch.com/


미국 회사에 이직하기 위해 영어를 잘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당장 인터뷰를 통과해야 하고 이직 후에도 처리해야 할 모든 업무가 영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 장벽을 뛰어넘기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다. 그것은 내 안의 것을 밖으로 잘 꺼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부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고 아직도 많이 부족할 뿐이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이야 말로 내가 미국 오기 전에 더 잘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미국 이직을 생각한다면 평소에 '생각하고 고민하고 말하는 능력'을 잘 키워두시기 바란다.




그동안 회사 내외에서 한국분들을 꽤 만나게 되었다. 유학, 한국 내 외국계 회사에서 전직, 주재원 등 다양한 경로로 미국으로 오게 되는데, 한국에서 쌓은 경력으로 바로 미국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는 사실 많지는 않았다. 그 경로가 쉽지는 않지만 결코 불가능하지도 않다. 미국에 온 뒤 3년간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느낀바로는, 한국 엔지니어들의 실력이 결코 실리콘밸리의 인력들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11년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함께했던 동료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이곳에 온다해도 분명히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당신의 그 실력을 실리콘밸리의 필요(Needs)에 맞게 가꾸는 전략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해외 이직을 위한 서류상의 절차들일 뿐. 미국 이직을 꿈꾸고 있는 당신에게 부디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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