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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Jul 09. 2022

미국에 (오려면) 하루라도 빨리 와야 하는 이유 #1

커리어 편


나는 40대 중반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직했다. 이직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미국행 티켓을 끊을 수 있었던 내 인생 마지막 기회였다. 나이, 경력, 가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만일 그 시기를 놓쳤다면 이직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막차를 타고 온 셈인데, 좀 더 부지런을 떨어 더 빠른 차를 탔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차피 미국에 올 것이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 정착해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나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미국에 와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미국으로 이주를 결심했다는 전제하에, '미국 이주의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이유'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근무 중인 한인들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미국으로 진출한다. 


미국 유학 후 현지 취업

국내 미국계 지사 근무 중 본사로 트랜스퍼

한국에서 경력직으로 직접 이직


기타로 한국 대기업 주재원으로 왔다가 사적으로 영주권 받고 미국 회사로 이직하거나, 한국에서 미국에 투자형식으로 설립되는 법인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는데, 흔치 않은 경우라 논외로 한다. 내 경우는 세 번째 '한국에서 경력직으로 직접 이직'을 한 경우다. 이것은 사실 운(도 준비되어야 하기는 하지만)이 많이 따른 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나와 같은 경우를 그리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다. 사내에서 뵙는 한국분들은 '유학 후 현지 취업'의 경로로 미국으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Computer Science를 전공해 박사까지 받고, 대기업 연구소에서 11년간 근무한 뒤 미국으로 건너왔다. 박사도 5년 반이나 걸렸고, 학사 시절 군대를 다녀오느라 3년의 휴학 기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 후 도합 25년(학사 4, 군대 3, 석사 2, 박사 5, 회사 11)을 줄곳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온 셈이다 (와, 길다). 그 기간 동안 미국에, 출장을 제외하고, 한 번도 체류해 본 적은 없었다. 


늦은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와 어찌어찌 이곳에 정착해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내가 만일 과거로 돌아간다면 미국 이주를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시도했을 것이다. 내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이유를 7가지로 정리해 봤다. 내용이 길어 2개의 글로 나눠 작성하려 한다. 오늘은 첫 번째로 실제 미국 회사에 커리어를 이어가는 측면에서 그 이유를 다룰 것이며, 다음 글에서 미국 거주 측면에서의 이유를 다룰 예정이다.




1. 영어


영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인데, 우리는 이 하나의 '도구'를 내 몸에 장착하기 위해 엄청난 자원과 시간을 쏟아야 한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나라에 태어난 원죄로, 영어를 '공부'라는 방식으로 습득해야 하는 아주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지만, 사회, 학교, 회사가 요구하니 따를 수밖에 없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상 '공부'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새로운 언어를 빠르게 내 것으로 체화하려면 나를 그 언어를 쓰는 환경으로 모질게 내모는 수밖에 없다. 영어로 수업을 듣거나, 업무를 보거나, 심지어 놀 때까지,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영어를 쓰는 환경 말이다. 결국,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로 이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본래의 역할대로 영어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려면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어야 한다. 미국 보스턴대, MIT, 하버드대 공동연구팀이 2018년 인지과학 학술지 '코그니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기 위해서는 10세 전후로, 제2 언어로서 문법과 문장 구조를 쉽게 습득하려면 늦어도 20대 후반부터 영어를 접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무엇에 홀린 듯 1년간 바짝 준비해, 스피킹 실력을 OPIC 1등급(AL)까지 끌어올렸다. 인터뷰를 통과하고 그럭저럭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영어는 지금도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리스닝(listening)이 가장 큰 문제. 회의에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동료들의 영어는 내 뇌에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귓가에서 맴돌다가 사라지기 일쑤다. 이 모든 것이 늦은 나이에 미국에 온 탓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난 영어 때문이라도 미국에 더 일찍 왔을 것이다.


'알아듣는 척하기 신공'으로 어느 정도는 버틸수 있다. 출처: 아는형님


2. 인맥


미국은 학연, 지연으로 얽히고설킨 인맥 사회다.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진 않을 것이다. 인맥이라 하면 낙하산, 청탁, 불법채용 등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지만, '추천(referral) 문화'가 일반화되어있는 미국 사회에서는 인맥을 통한 채용은 상당히 보편적이고 또한 이를 그다지 문제 삼지도 않는다. 회사에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할 때, 기존 직원 누군가가 후보를 추천한다면, 피추천자를 겪은 추천자의 의견이 조직에서 존중되며, 채용에 반영될 확률이 높다 (물론 피추천자가 인터뷰를 잘 통과하는 것은 기본이다). 누군가에게 추천 자체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정량화할 수 없는 개인의 능력 중 하나로 '인맥'이 포함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입사 지원 시 직원의 추천을 받으면 인터뷰가 더 수월해지고, 이직할 때는 전 직장 매니저나 동료의 추천서도 받아야 한다. 또한, 미국에서 석사 학위라도 받았으면, 나를 다양한 곳에 추천해 줄 외국인 지도 교수와 업계에 포진해 있을 같은 학교 출신 선배들이 생긴다. 업계에 진출해 갖게 된 하나의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내고, 이 인연들 중 하나가 언젠가 본인에게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기에,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은 틈틈이 네크워킹에 정성을 쏟는다. 그들이 학회, 서밋,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이유다. 따라서, 미국 사회에서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맥을 쌓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경력 경로에서 새롭고 좋은 기회를 만날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내가 만난 한인 분들 중 미국 유학 후 현지 취업을 했던 경우가 다른 경우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유는 이 '인맥'과 무관하지 않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미국으로 이주를 하면, 그만큼 미국 업계 네트워크로 진입하는 시기가 빨라져 취업과 정착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하- 나같은 내성적 인간들은 인맥쌓는 것도 힘들다. 출처: cartoonstock


3. 신분(비자, 영주권)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신분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위 세 가지 경우에서, 유학 후 현지 취업 시 대부분 H1B(전문직) 비자를, 본사 트랜스퍼의 경우 L1(주재원) 비자를 통해 해결한다. 직접 이직의 경우는 경우에 따라 또 나뉘는데, 1) H1B 비자, 2) O1(특수 재능 소유자) 비자, 3) NIW(영주권)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올 수 있다. O1과 NIW의 경우 어느 정도 업계 경력이 있어야 자격이 주어지고 상대적으로 신청 자격을 충족하기도 까다롭다. 본사 트랜스퍼의 경우도,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 내 미국계 회사에서 본사로 이주를 할 수 있는 기회도 그리 흔하지는 않다. 


결국 한국 학사 후 보편적으로 노려볼 수 있는 방법은 H1B 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취업하는 것인데, 물론 쉬운 방법은 아니다. 비자 스폰서를 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아 인터뷰를 통과해 성공적으로 오퍼를 받더라도, 인터뷰 결과와 별개로, H1B 비자는 일차적으로 이민국의 추첨을 통과해야 심사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쟁률이 해마다 오르고 있다. 2021년 H1B 추첨 경쟁률은 3.45:1, 2022년은 3.79:1이었다. 


많은 이들이 석사 이상의 미국 유학을 거치는 이유는 이 확률을 조금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국은 모든 지원자를 통합해서 1차로 추첨해 당첨자를 선발하고, 1차 탈락자들 중 석/박사 신청자들을 모아 2차로 추첨해 당첨자를 추가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의 기회가 있는 석/박사 신청자가 학사 신청자들보다 통상 확률이 10% 이상 높다고 한다. 


사실, 신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 일찍 와야 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오려면 자격이 되는 H1B 비자를 신청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만일 결국 미국 정착을 염두하고 있다면 F1 학생 비자로 미국에서 석사 이상의 유학을 하고, 졸업 후 현지에서 구직활동(최대 1년간 OPT라 불리는 F1 비자 유예기간이 있다)을 통해 오퍼를 받고, 확률 높은 H1B 추첨을 통과해 업계에 안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업계 경력을 인정받아 회사 지원을 받는 O1 비자를 통해 미국으로 올 수 있었다. NIW 영주권과 마찬가지로 자격이 되면 이 O1 비자가 발급받기 훨씬 수월하긴 하다. 무엇보다도 추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만일 과거로 돌아간다면 미국 유학 -> H1B 비자 -> 취업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어차피 한국에서 석/박사를 했는데, 같은 기간 동안 미국에서 학위를 했다면 그만큼 더 좋은 기회를 잡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성장 동력이자 비밀 병기. 마성의 H1B. 출처: 분노의 미치오 가쿠 박사.


4. 기회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실리콘 밸리에는 총 4,000개가 넘는 테크 기업이 있고, 그중 2,000여 개의 스타트업 회사가 오늘도 흥망성쇠를 이루며 창업/폐업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엔지니어, 연구원, 기술자들이 도전해 볼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열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기업들은 기술 리더십을 갖고 있으며, 표준을 주도하고,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엄청난 파급력을 끼치는 서비스와 제품들을 발표한다. 따라서 기술직이라면 한국에서보다 실리콘 밸리를 포함한 미국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이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여러모로 유리하다.


양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테크 기업의 수가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다양한 기회가 더 많이 열려있다. 어떤 경로든 일단 실리콘 밸리에 진입하고 나면, 스타트업, 가파르게 성장세인 중견 기업, 대기업까지 한국보다 더 많은 이직의 기회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성공 시 큰 보상이 따르는 창업이나 성장세의 스타트업의 기회도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다만, 미국이 아무리 '기회의 땅'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기회는 미국에서 하루라도 먼저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에게 더 열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사람은 보수적이 된다. 늦은 나이에 경력직으로 이직하면,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낯선 땅에 정착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에, 리스크를 감당하기 무척이나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Nerd들의 천국. 출처: HBO 드라마 실리콘 밸리




두줄 요약. 


영어를 빨리 배우고, 더 많은 인맥을 쌓으며, 신분문제를 해결하면서, 더 많은 기회를 위해 미국에 하루라도 일찍 오는 것이 낫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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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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