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버스터미널에서 오후 2시 광주행 표가 매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는 5시 표를 예약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언니가 오면 엄마에게 며칠 외출한다고 말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언니가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먼저 집을 나서야 했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갑자기 호출한 오빠부부가 집으로 왔다. 그제야 엄마에게 "이틀만 자고 온다"며 외출 계획을 밝혔다. 엄마는 갑자기 아이가 된 것처럼 “안 된다”며 울기 시작했고, 움직이기조차 힘든 몸을 이끌고 나를 붙잡으려 했다. 마치 세 살 아이가 엄마와 잠시 이별하는 것이 영원한 이별인 양 서럽게 울었다.
“엄마, 울면 안 돼. 아랫집에서 뭐라 그래.”
나는 아랫집 핑계를 대며 엄마를 달래 보려 했지만, 엄마는 나를 붙잡아두려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계속 울었다. 그런 엄마를 뒤로 하고 나는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언니는 내가 떠난 후 약 두 시간 만에 도착했고, 엄마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고 전해줬다. 다행히 언니가 곁에 있어서인지 엄마는 밤에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잠을 잘 잤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 엄마는 더 약해졌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훨씬 서툴러졌다. 나는 언니에게 엄마를 움직일 때마다 "힘을 쓰셔야 한다"라고 반복해서 알려주라고 당부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엄마의 고관절 소독이었다. 그러나 지난봄에도 잘 해냈으니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엄마와 관련된 일들은 여행기간 동안 나의 머릿속에서 비워내기로 했다. 다행히 언니는 나에게 전화를 자주 하지 않았다. 대신 “빨리 돌아와”라는 말을 몇 번 했을 뿐이다. 다음날 저녁에야 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 전화를 해왔을 뿐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지금 어디냐"며 빨리 오라고 했다. 나는 “지금 내려가는 버스 안”이라고 말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은 여행 내내 폭설로 인해 비행기가 연착되었지만, 청주로 향하는 비행기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청주를 기준으로 북쪽 지방은 눈이 소복이 쌓여 교통이 마비되었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언니의 몸이 불편해 보이는 것을 눈치챘다. 언니는 허리가 시원치 않다고 했다. 찜질 매트를 깔아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엄마를 침대로 옮기다 놓쳤다는 것이다. 내가 올 때까지 바닥에 두려다 안 되겠다 싶어 간신히 침대로 올렸다고 했다. 그 소동에 엄마도 놀랐고, 언니는 무리하게 힘을 쓰다 허리를 삐끗한 것 같았다. 엄마는 몸이 아프다며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며칠 떠나 있던 나를 보며 좋다고 했지만, 표정은 그다지 반가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건강하던 언니는 지난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이상 무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60이 넘으면 총명하던 뇌도 기억이 쇠퇴하고, 건강하던 몸도 점점 삐걱거리게 되는가 보다. 내년에도 여행을 계획하는 나를 보며 언니는 "엄마를 돌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언니는 나에게 안쓰러운 마음만 남기고 5박 6일의 효도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의 뇌와 몸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무거운 삶의 짐으로 느껴진다. 내년에 나는 엄마를 언니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