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네 알재"
엄마는 그 말 한마디를 하고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사는 게 고되어서인지, 자신의 모습이 서러워서인지 아니면 젊은 시절이 그리워서인지 알 수 없었다.
오후 산책을 나갔는데 엄마를 찾는 전화가 왔다. 오라버니 댁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골에서 엄마랑 친하게 지냈던 어르신을 만났다는 것이다. 어르신 댁에 방문을 하고 엄마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걸어왔다.
"느그 엄마랑 아부지가 나 혼자 산다고 많이 도와줬재. 느그 엄마랑 아부지 같은 사람 없어야. 느그 아부지는 법 없어도 살 사람이지."
오길네 엄마는 대뜸 나에게 아버지와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음 날 엄마를 모시고 그 동네로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어르신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오신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분은 만나자마자 한동안 터트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 알겄는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 인자 못겄냐. 얼굴은 좋다마는."
오길네 엄마는 백발의 할머니가 된 엄마를 보고 똑같은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엄마는 그저 울기만 했다.
"흐어 흐어 흐어"
갑자기 성사된 만남의 회포를 풀고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장성황룡강공원으로 꽃 구경을 나갔다.
오길네 엄마는 장성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장가 못 간 아들 이야기, 딸과의 여행 이야기, 교회 이야기를 중얼거리셨다. 그와 반대로 엄마는 말이 없다. 오길네 엄마가 자식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엄마에게 아냐고 물으면 안다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셨다.
화려한 꽃길을 상상했던 장성 옐로우시티에는 키가 큰 코스모스와 듬성듬성 남은 백일홍만 보였고, 모두 정리한 듯 보였다. 잠시 차에서 내려 꽃 구경만 한 후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오랜만에 담양 숯불갈비점인 쌍교숯불갈비에서 점심을 먹고, 남은 것은 싸서 집으로 왔다.
30년 전 고향을 떠난 오길네 엄마지만, 남편이 일찍 죽고 혼자 살던 때 도움을 주었던 나의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열심히 일하셨던 아버지로 인해 일하는 것이 힘들어도 따라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엄마의 이야기. 젊은 시절 함께 일할 때는 그렇게 재미있게 일했다고 알려주셨다.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던 엄마도 이제는 말을 잃어버렸다. 노인이 되면 말을 아껴야 한다며 처음 집에 오실 때만 해도 말을 많이 하시던 오길네 엄마는, 헤어질 때는 엄마도 엄마의 침묵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신 것 같았다.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아시고 돈을 챙겨오신 오길네 엄마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지 주섬주섬 지갑을 뒤적이다 엄마 손에 돈을 쥐어줬고, 엄마는 그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집으로 들어가다가 엄마는 잠시 고개를 돌려 오길네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길네 엄마도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지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라는 오라버니의 말에 차에 올라탔다.
고된 인생을 살아온 엄마의 젊은 시절 기억을 소환한 오길네와의 30년 만의 만남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