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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에 오를때면

by 약산진달래


만리장성을 오를 때마다 나는 묵상한다.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을 기억하며, 그 벽돌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되새긴다. 만리장성의 장대한 모습 앞에서 나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는 한 사람으로서 서 있다.


이 웅장한 성벽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을 나르고, 높은 산등성이까지 벽돌을 들어 올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성벽을 쌓아 올렸을까.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을까. 그들의 노동과 희생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이 성벽 앞에서 나는 묵묵히 발걸음을 내디딘다.


저 끝없이 이어진 벽돌들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저 높은 산꼭대기까지 돌을 들어 나른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 돌들을 쌓아 이 장대한 성벽을 완성한 이들은 또 누구일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벽돌을 올리고 있었을까? 혹시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아니면 단순히 명령을 받아 그 일을 했을까? 어쩌면 누군가는 이 성벽이 완성된 후에도 자신의 존재조차 기록되지 못한 채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이름 없는 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성벽 위를 따라 걸으며 그들이 남긴 흔적을 더듬어본다.


여름이면 만리장성에 두세 번은 오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중국 땅을 밟은 이들과 함께하는 일정 때문이었다.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의 마음으로 이곳을 올랐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그 말씀 한마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9-20).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간 제자들은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든지 복음을 전파했고, 그 복음은 한국 땅까지 전해졌다.


이제, 다시 우리는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예수를 믿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이들이 또다시 복음을 들고 걸어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이곳, 중국 땅에도 머물렀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이 땅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빛이 임하도록, 내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전하며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도록. 우리는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누군가는 들리지 않는 언어로 복음을 전했고, 누군가는 그들의 언어로 찬양을 불렀으며, 누군가는 손을 모아 기도로 땅을 적셨다.


복음을 품고 만리장성을 올랐던 단기 선교팀들은 그 위엄에 압도당하곤 했다. 중국의 고궁과 자금성을 둘러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찬란한 제국의 영광을 보았지만, 우리는 그 뒤에 감춰진 이름 없는 자들의 고통을 보았다. 만리장성의 벽돌 하나에는 사람 목숨 하나의 값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성벽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그들의 삶은 착취당했고, 죽음조차 기록되지 않은 채 흙 속에 묻혔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후대 사람들은 이곳에서 나라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희생은 어느새 잊혀졌고, 성벽만이 남아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나는 만리장성에 갈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발 한 걸음을 내디딜 때도 가볍게 걸을 수 없고, 말 한마디도 허투루 내뱉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단순한 성벽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스며든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다. 복음을 들고 이 땅을 밟은 나는 어떠한가? 나는 이 벽돌 하나를 쌓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가? 나는 복음을 위해 내 삶을 헌신할 수 있는가? 헌신짝처럼 버려지더라도, 나는 끝까지 충성할 수 있는가? 나를 통해 복음은 계속해서 전해질 수 있을까?


성벽을 쌓기 위해 희생된 이들의 땀과 피를 누군가는 기억하듯이, 내가 복음이라는 벽돌을 쌓아 올리며 끝까지 걸어가는 길이 헛되지 않기를. 성벽이 높고 길어도 끝이 있듯이, 이 길의 끝에서 반드시 주님의 손을 마주할 수 있기를. 그날까지 나도 나의 사명의 길을 묵묵히 나아갈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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