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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들이

by 약산진달래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배고파 죽겄다.”

그말을 들은 나의 입가에는 웃음이 살짝 번졌다.

보통 때라면 이 시간에 엄마의 배꼽시계가 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가을 나들이는 힘이 들었고, 그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셨다.


일요일 정오,시골집에 다녀온 오라버니는 가을에 열린 오이를 따서 집에 방문했다.

오빠의 바구니에는 청계들이 낳은 계란과 함께 무화과, 이제 익기 시작한 다래가 담겨 있었다.

다음 주에 내려가면 장두감을 딸 시기라고 알려주었다.

지난주에 내가 시골에 내려갔을 때는 단감과 배를 땄다.

시골의 가을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열매들을 내어주고 있다.

오빠 부부는 시골에 다녀올때면 아무 연락없이 엄마를 보러 집에 들리곤 한다.

오늘은 새로 산 그릇을 주겠다는 말을 했는데 올케언니가 그 그릇을 가지러 가자고 했다고 한다.


나는 기회다 싶어 그릇과 환절기에 마실 삼색차를 건네며 내일부터 추워질 테니 오늘 장성 황룡강 꽃잔치에 다녀오자고 했다. 엄마를 모시고 나들이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긴 강을 따라 꽃들이 피어 있고, 휠체어를 밀고 다니기에도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오빠는 불평을 해댔지만 엄마가 가신다고 하니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올케언니는 자신이 가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예고 없이 장성으로 향했다.

축제 기간이어서인지 행사장에는 음식과 놀이기구 등 잔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꽃밭을 걷다 보니, 예전보다 꽃의 가지 수가 줄어든 듯했다.

“해마다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네.”

“잡초가 이긴 걸까, 아니면 손길이 줄어서일까.”

올캐언니와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누었고 천천히 엄마의 휠체어를밀며 걸었다.

그래도 코스모스만은 여전히 소녀 같은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빠는 배가 고프다며 핫도그를 사 먹었고, 나는 어묵과 쥐포를 먹었다.

그러나 엄마가 드실 음식은 딱히 없었다.

강바람은 약간 싸늘했지만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감싸주어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긴 강을 따라 맹꽁이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관광객들도 있었고,

놀이동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초대가수를 불렀는지 무대가 있는 행사장 에서는 노래 소리가 이어졌으며,

조금 더 걷다 보니 식당가도 조성되어 있었다. 괜히 간식으로 배를 채웠다며 후회막심이었다.


핑크뮬리를 보러 가는 길에 먹구름이 하늘에 짙게 내려앉은 것을 보았다.

비라도 내리면 안 될 것 같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차에 탔을 때는 두 시 반이 다 되어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엄마가 드시고 싶다는 갈비탕이 생각났다.

흑백여리사에 출연했던 나주갈비탕집을 가볼까 했지만,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아무것도 못드시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배고파 죽겄다"

모처럼 배고다는 엄마의 말이 나는 배고픔이 반가웠다.

마가린을 후라이팬에 두르고 냉장고에 보관한 밥을 펐다.

호박나물과 계란프라이를 넣고 함께 주걱으로 저으며,

마가린이 녹을 때까지 밥이 어느 정도 걸쭉하게 익을 때까지 비벼주면

엄마의 밥은 뚝딱 완성이다.

"맛있게 잘 묵었다. 인제야 살겄다."

말씀과 함께 엄마는 오랜만에 식사를 하는 것처럼 그릇을 모두 비워내셨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양치질을 하신 후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다녀오길 잘했다. 가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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