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아저씨가 사라진 동네

문 앞의 정이 사라지는 방식

by 깊고푸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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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네이버)


집의 출입 방식이 달라졌고,
그 변화보다 더 큰 일은
그 문 앞을 지키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예전 아파트엔 동마다 경비실이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서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 동네를 지키던
나이 지긋한 경비원 아저씨들.
퇴직 후 다시 일을 시작한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모습은 동네의 안부 자체였다.


아침마다 들리던 인사의 목소리

등굣길 아침이면
경비원 아저씨들은
아이들에게 꼭 한 마디를 건넸다.


"다녀오너라."
"조심해서. 뛰지 말고"


부모가 없는 시간에도
누군가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설명보다 먼저 안심을 만들었다.


지금의 자동문은
“문이 열립니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인사가 아니다.


명절이면 오가던 작은 마음들

명절이 가까워지면
집집마다 떡 한 봉지, 귤 몇 개,
작은 양말 선물들이 오갔다.


아저씨는 "뭘 이런 걸" 하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 순간의 온도는,
"우리가 함께 사는 동네"라는 감각이었다.


아저씨들이 관리하던 작은 질서들

경비원 아저씨들은
앞 화단의 풀을 다듬고,

삐뚤어진 주차선을 바로잡고,
택배와 우편물도 대신 챙겨두었다.
밤새 순찰을 돌기도 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있기에
당연히 굴러가던 작은 질서였다.


작은 질서가 사라지자
동네의 결도 함께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경비원3.png

(이미지출처 : 네이버)


자동출입문 이후, 동네의 결이 바뀌었다

새로운 아파트들은
경비실 없는 구조를 전제로 설계된다.


지하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면
해당 세대 화면에 알림이 뜨고,
엘리베이터는 자동으로 호수를 인식해
문 앞까지 안내한다.


각 동마다 비밀번호를 찍으면
경비원 없이도
모든 출입을 통과할 수 있다.

출입 절차는 편해졌지만
출입에 담겨 있던
얼굴·목소리·안부가
점점 희미해졌다.


일은 편해졌고,
관계는 얇아졌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엔 기술만 남는다

기술은 문을 더 빠르게 열어주지만
문턱에서 건네던 그 한마디 인사를 대신하지 못한다.


경비원 아저씨가 사라지자
물리적 도난은 줄었을지 몰라도,
동네의 정서적 안전선은 더 약해지고

마음의 도난은 늘었다.
말 한마디가 만들어주던 공동체의 온도는
기계음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가끔 오래된 아파트에 가면
경비실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 아저씨를 보게 되고
그 순간 동네가 잠시 옛 온도로 돌아온다.


그저 누군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집의 감정선이 안정되던 시절이 있었다.



Epilogue

아저씨들의 목소리,
건네던 인사,

화단을 정리하던 손길.
그 풍경들은
문 앞의 저녁을 천천히 따뜻하게 만들던 장면들이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낡은 경비실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만들어지던
조용한 마음의 온도인지 모른다.


기억 속 집의 문은
지금보다 더 천천히,
더 따뜻하게,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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