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모든 일은 남편에게 일임한 지 한 달이 되었다. 근 3년 정도 나의 이직 준비 및 임신 육아의 기간이 의도치 않게 길었기에 자연스레 남편은 바깥일, 나는 집안일의 주무관이 되어 각자 최선을 다해왔다. 물론 일과 시간이 끝난 저녁 이후의 가정 활동은 공동의 활동이기에 나는 늘 남편의 빠른 귀가를 촉구하는 참 힘든(?) 아내였다.
가족들을 더 빨리 보고싶어 마음이 조급해지는 밤
오늘은 늦냐, 어떤 이유냐, 지금 그것을 꼭 해야 하느냐, 오늘 아이들이 너무 보챈다 와서 얼른 도와줘라. 등등 육아 동반자 남편만 애타게 기다리던 나는 저녁 시간만 되면 1분이 1시간 같고, 30분이 하루 같았다. 얼른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나만 바라보는 이 꼬맹이들이 관심을 좀만 가져가길 바랐다. 예민하고 화가 나는 날에는 괜히 남편의 퇴근길의 1분 1초를 원망하고 화를 내기도 일쑤였다. 스스로 남편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화가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매번 반성했지만 참아지지 않는 걸 어떻게 하나요.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집을 떠나 산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남편의 AI 같던 미안해..라는 말이 얼마나 미안해서 했던 말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에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던 목요일 저녁에 불가피한 일정이 생기며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나 또한 집에 참 돌아가고 싶어서 속상했으나 그것보다 나만 기다리고 있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사실 남편의 갑작스러운 회식이나 야근으로 인하여 귀가가 늦어지는 전화가 올 때면 남편의 그 미안해..라는 소리가 너무 형식적이고 의례적이고 면피용으로 하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미안한 거 거짓말이지! 그렇게 일부러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지 마!라고 이야기 했던 나의 모습을 알기에 남편에게 나 하루 더 늦게 가야 할 것 같아 미안해.라는 통화가 더 겸연쩍고 미안했다.
아들와 손잡고 나들이하는 행복한 시간
반대로 남편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각종 육아의 고통을 호소하는 중이다. 큰 아이를 너무 오래 안고 걸어 다녀서 허리가 아프고, 팔 어디가 불편하다는 소리는 입에 달고 있다. 작은 아이가 밤중에 몇 번이나 보채서 잠을 몇 번이나 깼었다 너무 피곤하다 아침 등원 시간에 얼마나 전쟁인지 아느냐 등등 그간 서로 불평불만으로만 듣던 고충의 당사자가 되어 서로를 깊이 공감하는 중이다.
아이들의 안정적인 성장에 가장 큰 방점을 두고 각자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 하에 남편의 육아휴직과 나의 학교 생활을 결단하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 기간을 통하여 그간 아이를 키우며 많이도 싸우고 다퉜던 남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사의 마음이 생겨나 남편에게 앞으로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가장 가깝고, 잘 알고 있다는 자신하는 부부의 마음조차도 그 자리에 서지 못하면 온전히 알 수 없었는데 세상에서 만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던 많은 사람들은 또 어떠했을까 싶다. 내가 가장 힘들고, 나만 노력하고, 나만 옳고 등 겸손하지 못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사실 돌아보면 성실하고 지혜로우면서도 묵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편에게도 잘하고, 마주하는 이웃들,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