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죽음이란 무엇일까? 자살이란 또 무엇이고.
삶에 대한 열정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에로스를 쫒으며 살았던 그 무수한 나날들을 뒤로하고 나는 몇 년째 자살하고 싶은 욕망에 타나토스를 쫒는다.
올해 2월에만 해도 나는 치사량이 넘는 약 200알을 먹고 12시간이나 지나서 병원에 갔다. 이미 위세척도 할 수 없는 단계. 의사에게 처음 들어봤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대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허벅지에 관을 박고 투석을 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목을 뚫으시려 하셨지만 그건 정말 승낙할 수 없었다. 치료를 다 마치고 (여전히 퇴원시켜 주세요. 를 삼천번 정도 한 뒤) 수치를 확인한 후 천천히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날 도와준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빵을 사 드렸다.
나가서 또 죽을 거냐는 질문에 그러지 않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그 뒤로 그들에게 감사해서라도 죽으면 안 되겠지 생각했는데, 역시나 잠시 뿐이었다. 다시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도구나 방법을 수집했다. 그럴 때마다 제발 그런 생각 말라는 지인들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뿌리내리진 못했다.
그래, 사실 거식증을 이만큼이나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는데 더 이상은 힘든 기분이다. 거식증이 힘든 게 아니라 삶 자체가 고돼서 그만, 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이 추궁해 보면 사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거나 그러지 못하기에 더 죽고 싶은 것이리라.
브런치에 희망의 글을 올리고 신이 나서 또 어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써볼까 하는 와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온몸이 심각하게 붓고 숨을 쉴 수 없어서 나는 또 119를 탔다.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들은 말은
중증 간경화입니다. 이미 80%가 진행됐고 20%의 간만이 남아있습니다.
머리가 아찔했다. 잘되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이제와?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일단 살려면 술을 끊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브런치도 생각이 났다. 빛나는 글을 희망을 읊조리고 있었는데 다시 간경화라니... 응급실에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나왔다.
지난날 금주를 시도했을 때는 많이 힘들었었다. 배가 고프면 맥주를 마시면 되는데 금주를 하니 밥도 술도 안 먹어 살이 많이 빠졌었다. 다시 술을 마시게 됐을 땐 주변인들이 나를 말리지 못했다. 술이 있어야 밥을 먹으니까. 그 후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천천히 자살하는 거지 뭐. 라며 거들먹거리고 술이라면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맥주 한 모금에 안주 한 젓가락을 뜨는 것이 아닌 맥주 한잔에 여러 번 음식을 먹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건 곳 술이 아닌 밥을 먹는 행위였다. 그렇게 밥을 먹고 싶었던 거란걸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술만 빠지면 되겠구나.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원래 방치우려했는데 방치우라 하면 기분 나빠지는 것처럼 순서가 바뀐 것 같은 이 기분이 싫었다. 어차피 끊을 거면 이런 게 다 소용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는 진단을 받고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죽고 싶은 생각이 더 강했고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아침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천천히 자살하자. 이런 마음으로 술을 마셔왔는데
어느 날 아침엔 조금은 억울하단 생각도 들었다. 신동엽도 있는데 왜 하필 나인가 싶어서.
아직 술과 건강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병원에선 입원만을 고집하고 나는 입원은 죽어도 싫고 술을 끊을 의지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 또한 이겨낼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