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브랜드 이야기>
요즘 당근 한 번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고나라와는 또 다른 감성이 있다. 당근은 무언가 신뢰의 이미지가 있다. 물론 내 생각이다. 당근 온도 55도의 나름 중견 당근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근본적으로 중고 예찬론자다. 자원은 유한한데 한국 사회는 너무나 자주 바꾸는 걸 좋아한다. 재건축이 그렇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도 재산 가치라는 현실 앞에 다시 올라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재건축으로 얻는 개개인의 경제적 이익보다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먼저 떠올랐다. 당장 폐기물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정서적으로도 쇼핑하듯 건축물들이 바꿔지는 모습에 몹시도 불편했다.
모든 업사이클링이나 리모델링은 존경받아야 한다. 의식주, 다 그렇다.
당근은 이런 업사이클의 총본산이다.(찬양이 너무 심해지고 있다.)
당근을 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본다. 백인백색이다. 2만 원짜리 거래를 하면서 새하얀 봉투에 빳빳한 지폐를 넣어 주는 사람이 있냐 하면 100만 원 짜리 물건을 하나도 살피지 않고 흥정도 하지 않은 채 시원하게 입금시키는 이도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서 그들의 본질이 읽히니까. 그게 재밌다. 나에게 안 좋은 피드백을 주었던 사람이 2명이 있다.(물론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되돌아 보게 된다.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고 가끔은 무례했을 수도 있었을 테고 구매자가 기대했던 수준의 물건을 판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당근 역사상 최소액의 거래를 했다. 나이키 드라이핏 티셔츠였다. 무채색의 쓰리톤으로 구성된 피켓 셔츠가 꽤 마음에 들었다. 바로 말을 걸었고 골프 연습 때나 등산할 때 편하게 입으려고 구매했다. 금액은 무려 5천 원이었다. 워낙 저렴했지만 사이즈를 안 물어볼 수 없었다. 내가 평소 잆는 사이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성스럽게 비닐 포장하고 택배 발송하기 전에 사진까지 친절하게 보내줬다. 배송비만 5천원 가까이 들었다. 배송비를 판매자가 부담한 것이라서 거의 공짜로 받은 셈이다.
더군다나 가벼운 스낵류의 과자까지 같이 보내줬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그 정성스런 태도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으로 아예 나눔으로 주시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단 돈 5천 원을 받고 투여한 것이다.
물건이 도착했다. 편의점 택배도 아니었고 산뜻한 포장의 우체국 택배였다. 빳빳한 비닐에 각이 잡힌 채 잘 포장돼 있다. 감동은 계속 이어졌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옷을 입었다. 일단 팔부터 안 들어 갔다. 평소 100 사이즈 입는데 사이즈가 90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게 뭐지. 아닐 거야. 무언가 착오가 있었겠지.
그래도 당근 하다 보면 씁쓸한 기억은 거의 없고 이렇게 재밌고 독특한 경험이 더 많다.
앞으로 당근 사랑은 계속 될 것이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