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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 Oct 19. 2023

[보통의 카스미] 복잡한 것은 복잡한 채로 소중하니까

지방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주인공 카스미. 서른을 맞이한 그녀는 결혼을 종용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지겹다. 친구와의 식사 약속이 알고 보니 2:2 미팅이었다는 게 불편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혹은 이상형은 무엇인지 묻는 말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색하다. 사실 그녀는 연애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무성애자이기 때문에. 워낙 보통의 세상이 강력하기 때문일까. 카스미는 진짜 자기 모습을 이해시키길 포기한 채, 우려 섞인 주변의 눈총을 그저 받아낸다. 눈을 들어 주변을 보니 나만 복잡한 게 아닌 듯싶다. 각자의 사정을 담고 있는 동창들, 다양한 방법으로 기운 내기를 반복하는 아빠, 난생처음 겪는 삼각관계에서 속상해하는 유치원 꼬마들까지. 카즈미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주변의 몸부림을 경험하며 보통이 그어놓은 상식이란 선에 한 걸음 다가간다.




# 내가 ‘누구나’에 속하지 않을 때

Peer Pressure. 우리말로 ‘또래집단의 동조압력’ 정도로 해석되는 사회심리용어다. 비슷한 연령대끼리 정해진 평균의 행동을 유도하는 유·무언의 압박. 특히 청소년기에 많이 발생하며, 이때의 경험은 집단 속에 안전하게 머물기 위한 개인의 태도를 설정하기도 한다.


최근 전문가들은 Peer Pressure의 긍정적 사례를 짚기도 하지만, 대개는 다수가 지향하는 바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순히 따라가는 사회적 좌절에 가깝다. 물론 개인은 고유하고 인간은 다양하다며 취향 존중의 물결도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문화적 카테고리에 그칠 뿐이다. 의무교육을 마치면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교 졸업 후엔 취업, 그리고 때가 되면 응당 치러야 하는 결혼과 출산.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어째 취향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보통 이제껏 누구나 이렇게 살아왔다’는 말과 함께.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과거의 성공 사례들이 현재를 이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모호한 인생의 필승법은 시류를 거스르지 않는 거니까. 그렇게 다들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러다 보니 인간은 무리해서 특출나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 보따리에 송곳이 튀어나오려는 낌새가 보이면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그 끝을 숨긴다. 아마도 시대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어겼을 때, 속내를 드러내 해명하는 일이 더 따갑기 때문일까.


영화 <보통의 카스미>의 주인공 카스미 역시 표정이 굳어지며 입을 다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음악가를 꿈꿨지만 생활을 위해 취업으로 활로를 옮겼던 그녀. 좋아하는 영화 하나 정돈 가슴에 품으며 평범한 취미생활을 즐겼던 그녀. 세상에 발맞춰 살아왔음에도 카스미에겐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운 세상의 기준 하나가 있다. 바로 ‘연인적 끌림’을 갖는 것.


딸의 결혼에만 신경이 쏠려있는 엄마를 이해시킬 방법도 없고, 상대의 감정을 거절하기 위한 무성애자 커밍아웃도 그저 거짓 변명으로 치부된다. 심지어 초등학생 시절 고백 받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는 카스미의 에두른 회상에, “그 나이 때면 그럴 만하지”라던 성소수자 친구의 눈치 없는 다독임까지. 결국 그녀는 인류 최고의 보편가치 앞에서 숨을 죽이기로 한다. 아무리 마음을 전해도 믿어주지 않아 괴롭기 때문에. 누가 그었는지 모를 트랙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 거리를 좁히는 건 공통점이 아닌

내 살을 깎아내며 현대의 표본 모형에 몸을 억지로 맞출 순 있다. 게다가 그 자세로 오래 버티다 보면 변형된 형태가 원래 본 모습이었나 싶기도 하다. 예전엔 내가 덜 자라서 몰랐던 양.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살갗 아래 뒤틀린 뼛조각이 느껴지기 전까진 말이다. 사람마다 버티는 힘에 차이가 있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지만, 숨겨놨던 핵심 가치는 모두가 있을 터. 그 코어를 결국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아마 카스미도 이전까진 견딜 만큼의 압박만 느꼈으리라. 허나 서른이 시작되자 인생 매뉴얼의 경고음이 주변에서 폭격하니 턱 끝까지 옥죄는 기분이 들었을 수밖에. 공자는 서른을 지칭하며 분명 ‘이립(而立)’, 즉 ‘스스로 바로 서는 나이’라 했는데 자꾸 옆에서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이러 저러한 서른이 되어야만 한다고. 늘 조금씩 타협하고 다른 길을 내 길인양 걸었던 카스미. 돌아가는 길이 드디어 지친걸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진실을 내비친다.


유치원 행사를 위해 신데렐라 구연동화를 준비하는 카스미. 목소리 연기를 담당한 친구 요나가는 ‘당연히 신데렐라는 왕자를 사랑해야 하는’ 동화 속 낡은 가치관을 지적한다. 평소 같았으면 솟아오른 용기 버튼을 다시 파묻었을텐데, 이번에는 이놈의 전통적 대본을 수정하겠다 다짐하는 카스미.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분명 현장의 분위기에 위축돼 공개가 망설여질 것을 알았을 거야. 그럼에도 그녀는 어떻게 이처럼 속내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이 영화에서 카스미가 마음을 나눈 사람들은, 결국, 속성을 이용하지 않아도 연결되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보통의 카스미>의 주인공을 맡은 미우라 토오코는 인터뷰에서 카스미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짚어낸다.


여기서 언급된 ‘속성’은 다양성을 바탕으로 분류한 일종의 라벨링. 모두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더욱 쉬운 구별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물론 여러 카테고리를 파악하면, 관계의 물꼬를 빠르게 틀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속성’이 소수라면, 혹은 시대가 정해놓은 관점에서 벗어났다면 오히려 거리를 두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당사자가 어떤 가치를 품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연출한 타마다 신야 감독은 바로 그곳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위화감이 시작된다고 보고, 그 외로움은 서로에게 붙여놓은 라벨 없이 대화가 이루어질 때 극복 할 수 있다고 전한다. 실제로 무성애자를 뜻하는 ‘에이섹슈얼’이란 단어도 의도적으로 시나리오에서 제외했다는 감독. 이 역시 그녀에 붙은 딱지를 제거해 보통 인간으로서의 서사를 따라와 달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카스미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며 “네가 적는 신데렐라가 카스미 바로 너”라 말하는 요나가. 만만찮은 현실에 먼지가 쌓여버린 첼로를 조율하며 “언제든지 원하면 첼로를 켤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다”며 응원하는 아빠. 사회적 기준 너머 인간 그 자체를 바라봐 준 덕에, 카스미는 30년 동안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스스로를 이해할 가능성을 마련한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 속에서 그렇게 동네 바닷가를 찾았던 걸까. 언제 어떤 마음으로 찾아가도 상관없이 늘 같은 바람과 소리로 맞아주니까.



# 평균은 수많은 보통이 모여서

카스미의 고군분투에 감정 이입하다 보니 거대한 절대자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보통’이라는 말은 한편으론 가볍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기묘한 단어라, 그 덕에 차이를 나눠서 설명하기 어려울 때 한 마디로 대신하기도 쉽다. 면밀히 살피지 않아도 오차범위 안에서 웬만하면 들어맞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보통에 포함된 모양들이 무조건 동일하게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보통’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우리들이 얼기설기 뭉쳐있다. 왼쪽 끝에 누군가 튀어나오면 반대편에 누군가가 평형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보통의 범위는 내 위치가 어디인지 상관없이 평균에 수렴한다.


그래서 그럴까, 영화 <보통의 카스미>에는 풀샷 롱테이크가 상당히 자주 활용된다. 카스미의 심정을 대변하는 클로즈업 대신, 멀리서 관찰하는 듯이 촬영하고자 했다는 감독. 이는 시야를 확대하며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까지 조망케 한다. 감독의 의도를 쫓아 화면의 모서리로 눈길을 향해본다. 남편의 바람을 의심하는 동생, 세 번이나 결혼한 외할머니, 우울증의 아빠와 낡은 사고방식의 엄마까지, 화면 속 누구 하나 간단한 인생이 없다. 보통의 삶을 추구하며 보통 인간임을 자처했지만, 누구도 매뉴얼대로 걷고 있지 않다.


헌데 이런 우당탕탕 아노미 상태가 의외로 반갑다. 복잡함으로 가득 찬 인생의 좌표들이 곳곳에 붙어, 보통의 크기를 한 뼘 더 넓히는 기분. 나의 문제를 없애야 보통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누군가 한 명쯤은 그만한 복잡함이 반대편에도 있어서 평형을 이루는 기분이다. 마치 카스미가 계곡에서 아등바등 텐트를 못 치고 있을 때, 우연히 만난 옆 텐트의 사람들과 네 귀퉁이를 동시에 붙잡아 올렸더니 동그란 보금자리가 만들어진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위치에서 보통의 카스미의 역할을 한 것처럼. 그러니 내 복잡함을 납득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그 자체로 세상을 유지하는 소중한 에너지일지 모르니까.








# 주인공을 연기한 미우라 토오코가 직접 엔딩ost를 불렀는데, 카스미가 나지막히 자신의 소회를 읊어주는 것만 같다. 글쓰는 내내 계속 들었는데도 전혀 질리지가 않아.



走る、その先に、どんな未来がきたって

달리자, 그 앞에 어떤 미래가 왔어도

きっと今ならば目を逸らさないよ
분명 지금이라면 눈을 돌리지 않을 거야


手探りのままで駆け抜けた日々も
어림잡아 달려간 나날도

全部抱きしめて、わたしになるから
다 안아줘 내가 될 테니까

繋いでゆくの マイウェイ

이어가는거야 마이웨이



https://youtu.be/8ivG6D8fLAU?list=RD8ivG6D8fL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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