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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Jan 28. 2024

고객은 OOO를 소비한다.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 마케터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호론'

 현대 사회를 통렬히 바라본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호를 소비한다.


 필자처럼 철학을 공부한 마케터는 물론이고, 시장과 마케팅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 가능한 문장일 것이다. 우리는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기호를 소비한다.


 브랜딩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짓누를 때면 나는 늘 보드리야르와 함께한다. 현대인들의 소비문화를 포스트모더니즘적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기호론'은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지향적이다. 시대를 관통한 대단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모습.(출처=나무위키)


 '우리는 더 이상 상품이 아닌 기호를 소비한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는 사례는 지척에 널려있다. 당신은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 브랜드를 보고 산 적이 있는가? 필요, 품질, 성분, 용도 등의 직접적인 구매의도가 아닌 그저 그 브랜드이기 때문에 물건을 구매한 적, 혹은 구매를 결심하거나 욕구 또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기호'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으로 대두되는 '모사'에 대한 이론에 입각한 꽤 복잡한 개념어이다. 하지만 브랜드 마케팅의 시점에서 그렇게까지 현학적인 딥다이브는 요구되지 않는다. 기호는 그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추상'이다. 애플이라는 브랜드는 진짜 있는가?(애플이라는 기업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소비자들의 머리를 스치는 많은 광고와 이미지들, 그리고 그것들이 주는 수많은 관념들은 진짜 있는 것인가? 이른바 혁신, 도전, 창조 등의 키워드로 브랜드를 구성하는 그것들은 전부 기호라는 추상일 뿐이다. 진짜 있는 것은 그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휴대기기와 카페에서 펼치기 좋은 휴대 가능한 PC 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폰과 맥북의 뛰어난 기능이나 디자인보다는 애플의 사과 로고가 담고 있는 기호에 반응한다.(분명 이쯤에서 "아닌데? 나는 애플의 기능과 디자인이 좋아서 소비하는 건데?"라며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더러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애플의 그것과 기능과 디자인, 그리고 가격이 동일한 제품을 동남아의 이름 모를 중소기업에서 판매하고 있다. 애플과 그 제품 중 당신은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


이건 노트북이 아니다. '애플'사의 맥북이다!(출처=픽사베이)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애플이라서, 나이키라서, 에르메스라서, 파타고니아라서 물건을 구매한다. 더 이상 상품 자체의 속성은 소비의 주요 척도가 되지 못한다. 비단 재화뿐만 아니라 서비스, 체험, 투자 상품, 심지어 사람에게도 기호는 큰 영향을 끼친다.(퍼스널브랜딩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결국 기업이나 제품이 브랜딩 된다는 것은 대중(혹은 타겟)에게 어떤 기호로 소비될 것인가로 귀결된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매력적인 추상을 우리 기업이나 제품에 입혀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어떤 이미지를 갖기를 원하는가?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그리고 당신이 무얼 팔든 추상이 실재를 이기는 건 그리 간단히 되지 않는다.

 

 실재(상품 자체)가 갖는 가장 큰 무기는 직접적인 감각 경험이다. 재화라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을 것이고, 서비스라면 그것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감각이 반응한다. 감각은 휘발되기도 쉽지만 동시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도 용이하다. 따라서 그저 사유 체계 속에 존재하는 추상(브랜드의 기호)이 감각을 이긴다는 것은 어렵다.(영화 '미드소마'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 영화를 상기하면 그 장면들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고 연상된다. 내 감각을 자극한 그 이미지들이 이미 영화의 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극중 인물들이 왜 그런 의식을 치르게 되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추상은 감각을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추상으로 감각을 이기는 법, 상품보다는 기호, 단순 품질이나 가격보다는 브랜드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감각보다도 사람의 머리에 더욱 오래 남는 것은 바로 '이야기'다. 이건 역사가 증명한바 사람은 오감으로 수용한 그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도 흥미롭게 접한 추상적인 이야기를 훨씬 오래 그리고 명확히 기억한다. 브랜딩의 필수 요소인 '각인 효과'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는 것은 이성을 통한 형이상학적 사유가 가능한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유니콘과 용을 만들고, 마법사 학교를 만들어내며, 영혼과 종교도 만들어낼 정도로 인간의 이성은 수준이 높다) 그래서 추상적이라 할지라도 서사가 있고 상상이 가능하며 공감이나 공리를 자극하는 이야기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사유 체계에 안성맞춤인 콘텐츠인 것이다.


 볼보의 초기 디자이너 닐스 보린이 3점식 안전벨트를 만들어낸 이야기로 볼보는 '안전'이라는 키워드(기호, 브랜드 가치)를 선점했다. 아마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앞으로도 볼보 자동차를 보면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볼보가 시킨 적도 없는데!)


너 그거 알아? 지금의 안전벨트를 처음 만든 게 볼보래. 진짜 안전 하나는 볼보야. 그치?


 품질의 상향평준화와 가격의 하향평준화는 날이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작은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통한 유통 시스템 구축으로 고객이 만족할 만한 가성비를 실현해 내는 공룡 기업들을 절대로 아갈 수가 없다. 그럴수록 브랜딩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며 머리를 움켜쥘 것이다.

 

 이 글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당신은 방향성을 잘 정했고, 방법을 모르겠다면? 이야기를 지어내라! 창업 스토리, 제품 개발 과정, 사회적인 메시지, 프로모션 내용, 역사적인 이야기, 정치풍자 등 이야기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상품을 통해 그 이야기가 연상되도록 계속 둘을 함께 노출하며 홍보하자.(무의식적인 연상 반응이 가능하도록 반복적으로 노출해야 한다!)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줄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보자.(출처=픽사베이)


 심지어 이야기의 진위 여부도 중요하지 않으니 유능한 소설가가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널리 알려진 기업의 이야기나 비사 중 진짜인 게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왜곡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리얼 스토리가 얼마나 있을까? 참고로 객관적인 사료로 알려진 역사적 기록물조차도 기록자나 역사가의 주관 개입이 불가피하며, 구전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진위 여부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이다)


 정주영 회장의 조선소 이야기, 스티브 잡스가 쫓겨난 이야기, 샌더스 대령의 칠전팔기 KFC 창업 스토리 등.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 이야기들은 기업이 있고 소비자가 있는 한 평생 구전되며 바이럴 될 것이다.(이보다 효율적인 홍보 방법이 있을까 싶다) 당신이 자동차를, 스마트폰을, 치킨 레시피를 생산해 내지 못해도 상관없다. 저런 류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은가?


 고객은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기호를 소비한다. 품질이나 가격이 아닌 이야기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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