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답을 써 내려가는 공간
한 손으로 들기 힘들 만큼 무겁고 두꺼운 책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무겁고 공백이 많다는 점에서 놀랐다. 다 채워볼 생각이었고 홀로 다짐까지 마쳤는데도 공백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러한 독자를 예상했다는 듯 메멘토 북을 펼치자, 사용 방법이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떻게 써야 할지, 얼마나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매일 쓰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다. 정답은 내 안에 있다고 설명하며 마음 가는 대로 작성하면 된다고 말한다. 지켜야 할 작성법은 존재하지 않으니 자유롭게 쓰면 된다. 최대한 자유롭게 ‘나’를 설명하고 채워갈 수 있는 무거운 공간이었다.
적으면 한 페이지, 길면 두 페이지에 걸쳐 적힌 질문들, 그 뒤에는 여유롭게 답과 생각을 채울 수 있는 빈 페이지가 있다. 질문은 다음 장을 넘기지 않는다. 그러니 두 장을 넘기면 새로운 질문을 볼 수 있다. 두 장에 질문이 하나씩 수록된 만큼 질문을 훑어보는 것에도 꽤 시간이 걸린다.
질문의 유형은 다양하다. 첫 번째는 ‘나’에 대해 직접 묻는 유형이다.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 어떠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묻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무언가를 택하는 유형이다. 여러 개의 양자택일 질문으로 채워진 쪽도 있고, 객관식 문제를 풀 듯 선지가 주어지는 것도 있다. 그다음은 일련의 상황을 가정하는 유형이다. 어떠한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상상해 보고 답을 적어볼 수 있다. 양자택일은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하듯 임하는 재미가 있다면, 상황이 주어지는 경우는 그것을 상상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주어진 것이 비록 즐거운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을 상상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곧 ‘나’를 알아가는 시간인 만큼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에서 오는, ‘나’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구급차 운전기사라면 무조건 살릴 수 있는 한 명과 살릴 확률인 절반인 네 명 중 누구를 태우러 갈 것인지 묻는다.
[어느 쪽으로 핸들을 돌릴 건가요?]
메멘토 북의 초반부에 수록돼 있으며 기억에 남는 질문 중 하나였다. 근래 의학 드라마를 많이 본 탓에 어쩌면 익숙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해 오는 확률싸움. 어떤 결단을 내릴 때 생각하게 되는 숫자다. 가능성을 수치화해서 나타내다 보면 숱하게 마주하게 된다. 50%는 높은 확률일까, 낮은 확률일까. 가능성을 먼저 타진하게 된다.
확률을 따지다가, 인원을 생각하다가, 아주 긴 고민이 이어진다. 네 명을 택한다고 한 명이 소생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또 다른 가정을 해보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깨닫게 된다. 아무래도 다수를 구할 수밖에 없다, 절반의 확률이라도 간절하게 매달려 다수를 구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한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도 꽤 수고로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을 글로 옮기면 훨씬 정돈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메멘토 북은 그 과정을 가능케 하는 길잡이, 가이드라인이 되어준다. 길을 알려주되 최대의 자유를 보장한다. 조금 더 손쉽게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한다면 메멘토 북을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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