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닮은 세 가지 이야기

희망, 따뜻함, 쓸쓸함을 담은 옴니버스 연극 ‘터미널’

by 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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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터미널’은 옴니버스 작품으로 총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펭귄], [Love so sweet], [거짓말]이라는 세 가지 에피소드는 머무름과 떠남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교차되는 서로의 이야기를 비추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과 상처, 화해와 이별의 순간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펭귄]은 남극에서 만난 선후배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함께 학교생활을 한 시간은 아주 짧은 듯하다. 한 사람은 요리사가, 또 한 사람은 생물학자가 되었다. 전공을 살리지 않은 두 사람이 남극에서 만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눈다.


춥다. 두렵다.

석기의 이 말은 남극 날씨를 탓하는 의미였을까, 아니면 캄캄한 앞날을 향해 던진 말이었을까. 중의적인 말이 여러 고민을 하게 만든다. 진로의 갈림길 혹은 장벽의 앞에 선 상태를 가장 짧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갈림길이 반복되고 장벽에 막히는 순간이 계속되면 외롭고 쓸쓸함을 넘어서 더 나아갈 용기는 바닥난다. 남극의 추위보다 시린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일까? 석기는 자꾸만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는 미래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면 주접이라며 그만하라고 말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당시의 기억을 들추는 미래를 원망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일종의 방어기제일까? 또한, 그는 미래에게 캐릭터가 매우 이상하다고 충고한다. 석기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그 말을 들은 미래의 반응은 평범하지 않다. 계속해서 반문하고 연극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 건넨 부정적인 평가에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석기가 바라고 많은 이가 생각하는 ‘보통’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극을 관람하며 고민하니 이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저마다의 특성이 있고 각자 다른 ‘캐릭터’가 될 수 있다.


그들의 말처럼 모두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계속해서 질문하게 된다. 캐릭터는 변할 수 있고 그만큼 수많은 캐릭터가 존재하다 보면 언젠가 나와 맞는 캐릭터를 찾을 수 있으리라.



[Love so sweet]은 부친의 죽음 이후 남매의 모습을 담아낸 이야기다. 귀진은 모친이 떠난 후 부친의 학대 속에서 동생을 키워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귀진은 엉뚱하면서도 밝게 성장했다.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면 무조건 무엇을 답례하는 행동이 싹싹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절박해 보이기도 한다. 귀진의 그런 행동은 단순히 그녀의 순수함에 기인한 것일까? 언뜻 그녀는 호의를 받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기를 당하고도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씩씩하게 말한다. 동시에 목구멍에 뼛가루가 아직도 남은 듯 가래침을 뱉는다. 여전히 아버지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을 위해 목도리를 두른다.


무너질 듯한 사람이 거절당한 목도리를 자신에게 두른 순간 비로소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는 빨간 목도리를 두른 채 “메리 크리스마스, 오귀진”이라며 자신에게 인사한다. 어떤 고난이 있었어도 언젠가는 따뜻한 연말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복잡한 연말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마지막 [거짓말]은 서울로 출근하는 여자와 서울에서 출근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서울역에서 만난 두 사람이 ‘거짓말’을 둘러싼 대화를 나눈다. 여자는 남편과 인공 수정 끝에 임신했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아이를 책임질 마음이 없었다. 이에 여자는 아이를 지우는 선택을 했다. 이를 남자에게 말하니 그는 ‘나와 지을 죄가 더 가벼웠을 것’이라고 답했다. 낙태와 불륜.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무엇이 더 낫고 가볍다고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여자는 책임질 수 없다면 낳지 않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여자와 남자는 서로 엇갈린 대화를 나눈다. 그동안 두 사람이 보낸 시간이 진실하였을지언정 거짓이 섞인 대화로 인해 결국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많은 것을 떠나보내는 연말의 쓸쓸함을 닮았다.




세 이야기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연말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춥지만 희망차게, 절망적이다가도 따뜻하게, 쓸쓸하고 외롭게. 연말을 닮은 감정들이 이야기를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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