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투병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마음은 점점 약해져 갔다 상대방이 무심코 한 얘기에도 나는 상처받았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들의 사소한 말에 상처받아 마음고생 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해 주고 생각해 줄 줄 알았던 가족들이라서 그런지 무심한 한마디가 더 크게 상처로 남았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에 상처를 쌓아가다 결국에는 곪아터져 나는 무너졌다 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한번 무너지면 자포자기 상태가 돼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 자신을 놓아버렸는데 , 그런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 엄마가 깜짝 놀라 "또 무슨 일이야 이번에는 왜 또 무너졌는데? "라고 묻고 나서야 나는 그동안 내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을 말하면서 소리 내며 엉엉 울었다 그때 엄마가 나한테 해준 말이 있다
"하루야 그 말에 서운하고 상처받았으면 속으로만 앓지 말고 말을 해야지 "
"나는 엄마, 아빠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줄 줄 알았어 "
"하루야 네가 속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절대 네 마음을 알 수 없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다 가족뿐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상대방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나 혼자 상처받고 오해만 커져가다 마음의 벽을 쌓아갔다 나중에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상대방은 자기가 한 말이 나한테 상처를 주는 말인지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절대 그런 의도로 한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예전 학창 시절에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잘 삐지는 성격이었는데 , 사이좋게 잘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혼자 삐져 말을 하지 않았다 왜 삐졌는지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아서 나는 그 친구가 삐진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화를 풀어주느라 엄청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그래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말을 안 해도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지? '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로 나는 조금씩 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 표현하기 시작했다 투병생활을 하다 보면 남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속마음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속으로만 울분을 토했다 그중 만날 때마다 나한테 상처 주는 말을 자주 하셨던 분이 계셨는데 그날도 그분이 우리 엄마한테 이런 말을 했다 "하루네 집은 경제적으로도, 남편도 다 좋은데 자식복이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울컥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겼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내 속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식복이 없다는 말씀은 제가 아파서 복이 없다는 말인가요? 제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는 상처받아요 그런 말을 듣는 제입장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
"아니 하루야 그런 뜻으로 한말은 아니고 그냥 안타까워서 그러지 안타까워서.. " 내가 말을 받아치자 그분은 당황하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 말씀은 삼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엄청 상처를 주는 말이거든요 "
" 그래 아줌마가 잘못했다 말을 조심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앞으로 조심할게"
그렇게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하고 엄마 손을 이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속이 후련했다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도 내가 상처받지 않은 적은. 대화를 나눠보면 상대방도 고의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 입장에서 걱정돼서 한말이 나한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사실을 짚어서 알려주면 바로 사과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속앓이 해왔던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이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내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건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픈 내 마음도 몰라주고 항상 철없이 말하던 내 남동생에게 효과가 좋았다
" 누나한테 사과해"
"또 왜? "
"아까 그 말은 누나한테 상처를 주는 말이야 다음부터는 그런 말 나한테 하지 마 상처받으니까
빨리 누나 미안해라고 말해 "
".........."
"빨리 말하라고 "
"누나 미안해 됐지? 이제 제발 그만하고 나가"
그렇게 결국에는 사과를 받아내고 나는 방에서 쫓겨났다 남들이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이렇게 라도 사과를 받아내면 속이 후련하고 상처받지 않았다 예전처럼 혼자서 속앓이 하며 우울해하지 않았다 정신건강에도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그래서 나처럼 사람들이 무심코 한 말에 혼자서 속앓이를 하며 마음고생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었다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해 보라고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절대 알 수 없다 결국 마음의 상처도 내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을 상처로 받아들일지 말지는 그 순간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 말해보자 표현하지 않으면 많은 오해만 쌓일 뿐이다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상대방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