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로에 다음 정거장이 있을까?

청년활동가의 지속가능한 공익활동 안전망 지원사업 공유회를 다녀와서

by 하진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은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을 받아 3년째 청년 활동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0인 미만 단체에서 일하는 공익활동가 중 경력이 3년 미만인 사람이 대상이다.


이 사업의 성과와 시사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다녀왔다. 사업을 운영하는 동행의 담당자와 참여 청년 활동가들의 발표, 그리고 사업을 분석하고 참여자 FGI를 진행한 듣는연구소의 발제까지 이어졌다.


전체 발표를 듣고, 청년 활동가들과의 테이블 대화까지 참여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발표와 발제에서 인상 깊게 남은 문장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금액보다 방식이 중요했다."

청년 활동가들에게 지원된 300만 원은 일시불로, 증빙 요구 없이 지급되었다. ‘용처에 대한 적절성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은 참여자들에게 지원을 받는다는 느낌보다 응원과 지지를 받는다는 감각을 주었다. 사업에서 ‘형식’이 참여자의 경험과 사업의 의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존재가 임팩트다"

이 사업의 임팩트를 측정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적절한 지표를 설정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청년 활동가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매년 많은 지원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 임팩트라는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모이면 좋은 것을 아는데, 왜 어려울까"

이 사업은 단순한 비용 지원 사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참여자 간 관계망 형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리산에서 진행된 3박 4일 ‘마음짓기학교’다. 참여자들이 모여 강연과 멘토링, 관계 형성 활동을 함께하는 프로그램인데, 많은 사람들이 ‘바쁜 와중에 어떻게 4일을 내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3개년 설문을 보면 진행 기간, 장소,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점차 높아졌고, 참여자들이 필요로 한 지원 역시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네트워크 지원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다. 초기에는 비용 지원 중심으로 이해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사업이 알려지면서 관계망 지원의 의미를 더 잘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음짓기학교가 초기의 강한 결속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면, 이후에는 네트워킹 데이와 상시 카카오톡 채팅방 등 다양한 층위의 관계 형성 장치가 운영되었다. 느슨한 연결부터 끈끈한 연결까지, 관계망을 탄력적으로 설계하려는 운영진의 의도가 느껴졌다. 다만 ‘지원’을 받는 참여자들의 취약성을 고려할 때, 집체 활동이 ‘소집’처럼 느껴질 수 있는 정서적 경험을 어떻게 관리했을지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 듣는연구소 발표 : 활동가 다움을 되묻는 이유


발표 제목인 ‘활동가다움을 되묻는 이유’는 그 자체로 질문을 던지는 제목이었다. 발표를 통해 확인된 청년 활동가들의 어려움은 다음과 같았다.


- 비수도권 지역의 3중고 : 청년 없음, 너무 좁은 사회, 단체 자정작용(조직문화) 없음

- A to Z 올라운더가 되어야 하고, 미래 설계 어려움

- 활동가 답지 않음 : 서로의 진정성을 비교하며 '나는 활동가가 아니네'라는 생각을 함

- 좋은 삶의 양식 부재 : 보고 배우거나 롤모델로 삼을 선배의 삶이 없음 (선배가 없는 건 아닌데 보고 배우고 싶은 삶이 없음에 가까움)


반면 이 사업 참여를 통해 얻게 된 긍정적 경험은 아래와 같다.

- 공익활동가 영역 확인 :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네와 같은 자기 영역 밖의 사람, 일들을 만남

- 동료에게 도움을 받음 : 카톡방 등을 통해 일의 영역에서 질문할 사람들을 만남

- 인정을 받음 : 300만 원의 돈, 그리고 용처를 묻지 않는 신뢰가 인정의 요소로 작용


발표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활동가들의 경험은 '경력'이라는 말이 아니라 '경로'로서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경력이 아니라 경로라는 생각


이 생각을 발제 이후 진행한 테이블 대화에서 나누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공익활동 영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커리어 패스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청년 활동가의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채용시장에서 유행하는 '물경력'이라는 단어가 정말 치명적인 단어다. 나 역시 구직 과정에서 내 경험이 ‘물경력’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면접에서 유사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치 펀치를 맞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삶 전체를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경력은 특정 직무와 성과를 기준으로 축적되는 시간이라면, 경로는 한 사람이 어떤 문제를 만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관계 속에서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경로를 경력의 언어로 번역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들이 삭제되거나 축소되고, 설명되지 못한 시간은 쉽게 ‘공백’으로 취급된다.


어쩌면 필요한 것은 경로를 경력으로 환산하는 방법이 아니라, 경로 자체를 읽어내고 인정할 수 있는 언어와 기준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일'이라는 활동이 가진 보편적 요구사항이 있다. 기본적인 업무 능력 혹은 업무 태도나 매너 등의 부족을 '나는 활동 가니까'라는 말로 가려서도 안 되겠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를 다루는 일의 특성과 노동집약적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취업시장 기준으로 경력을 평가하는 방식은 청년 활동가의 지속 가능성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가치를 중심으로 일했지만, 정작 그 가치는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 사회에서는 경력이 없다고 말하고, 선배들은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이중 구조 속에서 청년 활동가들은 스스로 ‘활동가다움’을 되묻게 된다. 여기에 소득 격차와 사회적 인식까지 더해지면 그 부담은 더욱 커진다. 이런 맥락에서 ‘존재가 임팩트’라는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비수도권 청년활동가는 수도권과 다른 존재 방식으로 산다


발표를 들으며 비수도권 청년 활동가의 현실이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지역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조직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삶의 방식과 일의 구조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수도권에 사는 이들은 쉽게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청년 활동가'라는 말도 너무 납작해서 더 많은 교차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세대별, 진입경로 별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할 때 더 촘촘한 지원도 가능할 것 같다. 특히 비수도권 소규모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년, 여성 활동가라는 조건이 중첩될 경우 그 취약성은 더욱 커진다. 실제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구조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2. 청년활동가 참여자 발표 : 사랑하니까 한다는 말


재밌게도 다음날 청풍의 발표에서 떠올랐던 키워드가 하루 전 여기에서도 떠올랐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기여하는 마음으로'


광주에서 페미니즘 및 민주주의 관련 활동을 하는 활동가는 지역활동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이 지역을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말을 남기며 눈물을 지었다. (스스로도 눈물 지음을 너무 당황해했다.)


3명의 활동가가 발표를 진행했는데 들으며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다.


"제발 평균만 하자"

청년 활동가들은 소규모 시민단체의 상황이 열악함을 알고 있고, 여러 시스템이나 문화에 '시차'가 있어서(발표자의 표현) 더 빨리 변화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인지하며 일한다. 오히려 선배세대들이 이들의 요구를 너무 큰 것으로 받아들이고 지레 겁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그냥 평균 혹은 법에 쓰인 것만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동료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것으로만 나아가도 이미 이 영역에 진입한 청년들의 절망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돈 많이 주면 좋겠지만 돈 보고 일하는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선후배 사이에 대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공통 주제를 찾아야"

조직문화와 세대 간 소통 문제는 핵심적인 이슈로 보였다. 직접적인 충돌 대신, 보다 가치중립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대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 공통의 주제로 ‘성장’을 떠올렸다.
모든 발표자들이 성장에 대한 욕구를 표현했다. 문제는 이를 실현할 경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조직 단위의 공동 학습 경험이나 외부 교육 프로그램 참여 등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근 비영리 활동가학교 엣지 같은 곳에 조직에서 함께 참여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떨까. 건강한 공통 경험이 생겨야 건강한 대화와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마치며 : 우리의 경로에 다음 정거장이 있을까?


얼마 전 오렌지레터에서 3년간의 데이터를 정리한 보고서를 펴냈다. 나도 항상 내 다음 경로에 대해 생각하기에 오렌지레터에 '구인'란을 자주 보는데 내가 느낀 것과 보고서의 내용이 일치했다.


보고서는 3년간 구인란에 '같은 조직이 같은 직무에 공고를 낸 비율'이 '58.4%'에 달한다고 했다. 즉 A라는 단체가 A라는 포지션을 몇 개월 단위로 반복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소셜섹터에 상시근로 인력보다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직 채용을 하는 관행을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나도 매번 구인 공고를 보면서 '공고를 내는 조직이 한정적'이고, '직무도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채용시장이 찾는 포지션의 퍼소나를 과장을 보태 설정해 보자면 '3-5년 이내 경력을 가진 매니저포지션 이면서 펀드레이징'경험이 있는 사람만 뽑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나마도 요즘은 거의 공고도 많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주변사람들과 한다. 실제 오렌지레터의 데이터를 봐도 공고가 3년 전의 2/3 수준이고 아마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많이 줄어든 수치라는 체감이 든다. 연차가 쌓일수록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추천이나 네트워크가 없다면 이동이 어려운 구조다.


여기서 '우리의 경로에 다음 정거장을 묻는' 청년 활동가, 소셜섹터 종사자 등등에게 어떤 제안을 할 수 있을까. '올라운더'로 살아가기를 요청받는 활동가에게 특정 직무의 전문성을 개발하라는 조언을 해야할까. 지금이라도 경력으로 인정받는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서 다른 조건 따지지 말고 일단 영역을 바꿔보라고 해야할까.


오렌지레터의 보고서는 비영리의 인력이탈 기사를 인용한다. 비영리 종사자의 52%가 3년 내에 이탈한다는 기사다. 경로를 설명할 수 없는 사회, 성장을 지지해 주지 않는 조직, 경험을 번역해주지 않는 시장. 헌신을 요구하면서도 보상하지 않는 문화속에서 누구라도 '나는 무엇을 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앞에 설 수 밖에 없다.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의지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지탱할 구조의 부재로 읽고 함께 해결하려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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