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을 기여하는 마음으로

강화유니버스 '잠시섬'과 일본 가미야마 지역의 관계인구 사례 세미나

by 하진

강화도에서 활동하는 협동조합 청풍의 '강화유니버스' 그중에서도 '잠시섬'프로그램의 의미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이야기하는 세미나 자리가 있어서 참여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날 행사의 핵심은 아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을 기여하는 마음으로


누구나 한 두 곳쯤 좋아하는 지역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실제 지역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거나 이주하려는 시도로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 세미나는 그 전환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연구와 사례로 채워져 있었다.


이날 세미나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강화 '잠시섬'에서 일어나는 관계인구 현상 연구 발표 (듣는연구소 : 우군)

가미야마 그린벨리의 창조적 과소에 대한 사례발표 (가미야마 그린벨리 :사쿠타 쇼스케)

협동조합 청풍이 만들어가는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사례발표 (협동조합 청풍 : 파도)

'잠시섬'프로젝트의 데이터 수집 및 임팩트 평가와 관련한 내용 소개 (앱 개발 팀 및 기획자 님)


1. 좋아하는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듣는연구소의 발표


(듣는연구소의 연구 내용은 이곳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잠시섬에 온 사람들이 (강화유니버스에) 공감과 애정을 보이고, 자꾸만 자기가 가진 걸 나누고 싶어 하는 현상이 보여요.”


강화유니버스가 듣는연구소에 '잠시섬'프로그램의 의미와 작동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며 했던 말이라 한다. 잠시섬에 왔던 사람들이 계속 재방문을 하고,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소모임들을 열고 그런 과정에서 강화에 머무르기를 시도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현상이 체감적으로 확 늘어났다고 느낀 것이다. 이런 흐름을 단순한 참여나 호의로 설명하기는 부족하기에 연구까지 진행했던 것이다.


자발적인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의 감정, 태도를 뭐라 불러야 할까. 나는 이를 '기여감'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기여감은 기존의 자원봉사와는 결이 다르다. 자원봉사는 애정이 없이도 할 수 있다. 기여감은 선한 행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된 애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가깝다. 내가 연결된 사람들, 내가 경험한 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보태고 싶어지는 상태다. 즉, 좋아하는 마음이 관계를 매개로 구체적인 행동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사실 이런 기여감은 나도 밀양에서 지내면서 많이 느꼈던 감각이다. 비단 내가 밀양을 좋아해서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노력한 일뿐 아니라 우리의 프로그램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더 베풀고 때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려는 기운을 내는 것을 많이 느꼈다. 예컨대 밀양은대학 프로그램에서 학우들과 함께 나눌 빵이나 먹을 것을 해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역을 소개해주고 또 타 지역의 사람들이 밀양을 위한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마음을 먹는 그런 일들이 떠올랐다.


이를 무리하게 내가 강화도를 사랑하니까 혹은 밀양이 좋아서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기여감이 펼쳐지는 무대는 지역(로컬)이라는 넓은 무대가 아니라 내가 그 지역에서 만난 사람과 접했던 공간이라는 '장(Filed)' 안에서 벌어진다.


듣는연구소는 이런 기여감이 행동으로 드러나고 전달되는 과정을 ‘공동생산(co-creation)’으로 해석한 것 같다. 그렇다면 질문이 남는다. 이런 기여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그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다른 커뮤니티에서 이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려면 무엇을 설계해야 할까.


나는 이 전환의 핵심에 ‘안전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여감이 단순한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실행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감정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내어놓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잠시섬’은 흥미롭다. 겉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은 매우 자유롭고 여유롭다. 각자의 시간을 어떻게 쓰든 크게 간섭하지 않고, 참여 방식도 느슨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구조가 보인다. 커뮤니티에 들어온 사람이 안전하게 머무르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촘촘한 안전망이 설계되어 있다.


이 구조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해먹’이 연상된다. 씨줄과 날줄로 여러 겹 엮인 격자는 멀리서 보면 구멍이 숭덩숭덩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몸을 맡기면 안정적으로 지탱해 준다. ‘잠시섬’ 역시 겉으로는 느슨하지만, 실제로는 참여자를 받쳐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씨줄과 날줄을 이루는 장치들은 이런 것들이다.


함께 지키는 약속문(뉴로컬키워드)

환대를 나누는 체크인

회고의 시간

참여자에게 부여되는 소소한 미션들 (만나는 상인에게 인사를 한다거나 하는 등)


이 중에서 명시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많지 않다. 사실상 ‘저녁 회고를 함께한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선택에 맡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치들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참여자가 낯선 지역과 관계에 ‘안전하게 접속’할 수 있도록 완충지대를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타인과의 연결을 시도할 수 있는 심리적 여지를 확보해 준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자신을 조금 더 드러내고, 관계에 한 발 더 들어가며, 결국 무언가를 기여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의 기여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고, 요청이 아니라 자발성에 가깝다.


이러한 구조는 외부에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청풍이 지역에서 살아가며 축적해 온 감각에 가깝다. 환대의 문화를 만들고, 갈등을 조정하고, 외부인과 지역 주민 사이의 균형을 고민해 온 시간 속에서 체득된 방식이다. 낯선 사람이 안전하게 ‘랜딩’할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주민이 소외되거나 대상화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 미묘한 균형을 다루는 과정에서 지금의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발표를 들으며 내가 밀양에서 시도하려 했던 여러 원칙들이 떠올랐다. 낯선 사람들이 안전하게 만날 수 있도록 약속을 언어화하고, 분위기에 적응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려 했던 시도들. 돌이켜보면 그 시도가 청풍과 강화유니버스의 실천에서 배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러한 감각을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혹은 하나의 커뮤니티 모델로 구조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청풍과 강화유니버스의 사례를 다시 한번 천천히 들여보며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좋아하는 마음이 기여와 변화로 지속되기 : 가미야마사례 발표


1)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발표는 최근에 만들어진 ‘가미야마 마루고토 기술대학’의 장면으로 시작했다.


2023년, 수십 개의 테크 기업이 수백억 원을 출자해 만든 IT·기술 중심의 고등교육기관. 인구 5,000명이 채 되지 않는 지역에 이런 시설이 들어서고, 인재들이 몰려오는 장면은 충분히 클라이맥스로 소비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쇼스케 씨는 큰 어조의 변화 없이 이 장면을 던지듯 지나갔다. 마치 “그건 그거고”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2018년, 2017년, 2013년, 2010년.


발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바로 이 방식이었다. 눈길을 끄는 현재의 성과가 아니라, 그 성과를 가능하게 만든 시간의 축적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의 원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이었다.


2018년에는 자녀가 있는 가정의 이주를 위한 전통가옥 스타일의 주거단지가 조성되었다. 조경은 지역 농고 학생들이 맡았다.

2017년에는 지역 농업을 다음 세대로 잇기 위한 푸드 허브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2013년에는 이주자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하며 치과, 양조장, 커피전문점, 문구점 같은 생활 기반이 만들어졌다.


하나하나의 사건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시간 위에 쌓이며 서로를 밀고 당기듯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전해졌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필연처럼 이어지는 흐름.


2010년, 대도시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위성 사무소를 차리기 시작한 지점에 이르자, 이 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2007년.


가미야마가 ‘창조적 과소’라는 개념을 지역의 방향으로 설정한 시기를 마주하게 된다.


창조적과소 : 인구 감소의 현상을 받아들여 인구의 내용을 바꾼다. 젊은이와 창조적인 인재를 유치하여 인구 구성의 건전화를 도모함과 동시에, 다양하게 일하는 방식이 가능한 비즈니스의 장으로 가치를 높임으로써 1차 산업에 의지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지역을 지향한다. (발표내용 중)


이 시점은 이후의 모든 실험을 가능하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회의를 만들고, 민관과 성별의 비율까지 조율하며 구조를 설계했던 시간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미야마 아티스트 레지던스가 시작된 해

가미야마에서 예술가를 비롯한 외지 사람들에게 살 자리를 내어주었던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아래의 사진을 보여준다.

Monosnap 2026-03-29 22-45-28.png


이제는 초로의 노인이 된 이 인물들이 40대였던 시절, 지역의 미래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2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의 가미야마를 만들고 있다. 나는 이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진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을 하는 흔한 아저씨들 일지 모르지만, 이쯤 되면 이 분들을 약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실험이 인구를 극적으로 늘렸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래프는 오히려 담담했다. 작은 수치의 변화, 아주 완만한 흐름. 최근 몇 년 사이에야 비로소 변화의 방향이 드러나기 시작한 정도다.

image.png 녹색은 자연감소(사망) 파란색은 인구 이동으로 인한 변화 0을 기준으로 최근 들어 파란색이 +로 돌아섰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성과를 크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곧 이런 생각이 이어졌다.
일본은 현재의 변화만큼, 그 변화가 쌓여온 시간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 아닐까.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이 모든 활동이 지속되고 이어져 온 것 자체에 의미를 두며 지역에 쌓아 올려가는 것의 힘을 믿는 듯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시도 자체를 성과로 바라보는 태도. 그 축적의 힘을 믿는 태도말이다.


2) 매력이 없는 지역은 어떻게 할까요?


질의응답시간 한 청중이 물었다.

"가미야마의 매력은 무언가요? 발표에서는 듣지 못한 것 같아요"


"아, 그걸 이야기 안 했군요. 가미야마는 산과 물이 좋고.... 인심이..."

내심 이런 대답을 생각하며 통역이 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쇼스케 씨는 이렇게 대답한다.


"매력이요.. 매력이라면, 매력이 없는 도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력이 없다고?


"사실 가미야마에는 산이 많지만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매력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자신의 지역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사람이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밀양에서 3년을 살았던 나도 사람들이 물으면 이런저런 대답을 하려 노력하는데.


오히려 매력이 없다면, 그 바닥에서부터 다시 지역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매력이 없다면 무엇으로 사람을 끌어들여야 할까.


그는 오히려 그렇기에 외지인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의 매력은 내부에서 완결되어 발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외부가 소통하고 관계 맺으며 새롭게 발견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1999년 시작한 가미야마 아티스트레지던시는 그동안 수많은 아티스트를 비롯해 셰프, 건축가, 작가, 크리에이터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었다. 쇼스케 씨는 레지던스 문화가 가미야마의 현재를 만드는 중요한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초기에 지역의 '정서'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image.png 사진의 하단의 잘린 부분은 Expirience(경험) 이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식사하고, 공동창작을 하고 식사를 하는 등의 활동

출발은 '살고 있는 지역, 관계된 지역을 좋아한다는 마음'이다. 이 지점에서 잠시섬이 다시 떠올랐다. 좋아하는 마음을 기여하는 마음으로 기여하는 마음이 살고 싶은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과정. 이 전이의 과정에 시간이라는 재료가 쌓이면서 지역의 매력은 발견되고, 만들어져 간다.


두 사례가 내게 준 시사점


기업가를 양성하는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어가는 가미야마, 나다움을 찾는 청년들이 모여들고 있는 잠시섬.


두 사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기여로 전환되고, 그것이 어떻게 지속되는가.


가미야마가 전 도시적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환대와 다양한 실험을 용인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을 시간 축 위에서 착실히 쌓아왔다면 잠시섬은 프로그램이라는 필드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안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한 설계와 운영을 통해서 좋아하는 마음을 기여감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때로 우리는 '우리 지역을 어떻게 하면 더 좋아하게 만들까, 우리 매력을 어떻게 전달할까'에 더 집중한다. 솔직히 나도 밀양에서 스테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그런 부분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참여한 사람들에게 정보처럼 전달되는 매력이 정말 매력으로 느껴질까?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그 마음이 기여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도 오히려 내가 채울 수 있는 부분,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사람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더 많은 여백을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위해 빈 공간을 '설계'하듯. 안전한 구조속에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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