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가 되기

by 하진

사람들이 속속들이 올해의 희망찬 계획을 이야기하고, 새롭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들을 꺼내놓는 것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나는 올해가 혹은 내년이 그 다음 또 다음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변화를 싫어한다 이야기 하면서도 한 번도 안정된 일도, 계획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사람들도 무언가를 알아서 명확한 확신으로 세우는 계획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만한 기운을 낸다는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작은 기운을 내본다면 나는 올해, 작년 보다 더 나은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 이 단순한 바램에 26년을 걸어보고 싶다. 밑도 끝도 없는 ‘좋다’는 말은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 2026년을 사는 사람들에게 ‘좋음이란’ 내용도 없고, 측정하기도 힘든 말이다. 한 끝에서는 ‘바보’를 한 끝에서는 ‘위선’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 그 말을 내 목에 거는 순간 족쇄가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우습지만 그런 한계가 느껴질 때 내가 쓰는 방법은 스스로를 정말 ‘위선자’라 생각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려 노력하되 성자처럼 할 수 없기에, 나는 위선자이고, 지금 하는 일이 스스로 좋아보이려고 하는 일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너무 오래된 작품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내게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 있다. 주인공 유정은 수녀이자 교도소 봉사를 다니는 고모에게 이런 행위들이 ‘위선’이 아닌가 묻는다. 그에 대한 수녀님의 대답이 인상 깊다.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


수녀님은 뒤이어 이런 말을 덧붙이는데


“위선을 행하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거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어쩌면 나만 나를 선한 사람, 좋은 사람 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하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관계안에서는 더 나음, 더 선함, 더 좋음을 추구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지 모른다. 26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서 어딘가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할지 알수 없지만 어렴풋한 진심이 가르키는 곳으로 나아가고 싶다.


부러 긴 글을 여기 까지 읽어준 당신도 그 다정한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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