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정의
어제 새벽까지 좀 무리해서 글을 썼지만, 같이 공동체 주택에 사는 용훈이와 커피 한 잔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침부터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용훈이와 딸 하람이와 함께하는 산책과 아침 커피시간. 스타벅스의 긴 테이블 위에 하람이를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를 가운데 두고 이야기 나누는 두 남자라니. 누군가에게는 낯설 수 있는 풍경. 육아휴직 하며 하람이를 전담해서 돌보고 있는 용훈이 덕에 나도 새로운 장면(Scene)의 일부가 되어본다.
얼마 전 KBS 다큐에서 초등 1학년 치열한 돌봄 교실 추첨 현장을 다룬 것을 보았다. 번호 적힌 공 하나에 울고 웃고, 다큐 제작팀에게 결국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서울시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돌봄 노동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일 길을 열어주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단다.
최근 읽는 돌봄 민주주의 책은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공공정책에 의지하고 돌봄 노동의 세계 시장을 활용하면서 기존의 돌봄 위기는 점차 공적인 공급과 사적인 비용을 결합하거나 돌봄 노동의 새로운 자원을 세계화에 의지해서 점차 풀어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의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돌봄에서 자유의 결핍, 불평등, 불공정, 부정의를 도외시한다는 점이다."
민주사회는 구성원이 모두 평등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민이 평등해지는 역량에 미치는 돌봄 불평등은 민주사회의 정치적 과제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하람이가 크는 세상에서는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까.
사회의 돌봄, 마을의 돌봄은 어떤 모양으로 변화해야 하고 또 무언가는 지켜나가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