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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얼빈

by 파란하늘

30년 전, 인하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학교와 집 밖에 몰랐던 학창 시절이었다. 별생각 없이 평범하게 교사를 꿈꾸었다. 내가 받은 학력고사 점수로 인천교대는 간당간당했다. 그다음이 춘천교대였는데, 탄광촌을 돌아야 한다며 그다음 청주교대는 어떻겠냐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대로 청주교대를 가기로 했다. 원서를 사러 청주교대에 가야 했는데, 당시 부모님은 같이 갈 형편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는 나와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는 당신의 막냇동생, 고모를 붙여 보냈다. 고모라고 세상물정을 잘 아는 것이 아니어서, 인천에서 청주 갈 때는 완행기차를 탔고, 올 때는 완행 시외버스를 탔다. 제일 싼 것을 골랐고, 그것도 입석이었다. 오며 가며 하루를 다 보내고 돌아온 고모는, 혀를 내두르며 아버지에게 "에고 오빠, 거긴 갈 데가 못 돼" 했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을 그렇게 멀리 보내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다음 날, 아버지는 집 근처에 있는 인하대에 가면 어떻겠냐 물었다. 중공이라 불렀던 중국과 수교 전이었다. 이제 곧 수교를 할 거고, 그럼 중국어가 많이 쓰일 테니 중국어를 먼저 배워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인하대 중문과 입학설명서를 찾아보곤 그러겠다 했다. 내가 본 것은, 3학년 방학 때 대만으로 어학연수를 간다는 것이었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 데리고 대만엘 간다고? 우와, 좋겠다' 싶었다. 중국어는 영어보다 쉽고 재미있었다. 내 발음은 다른 누구보다 좋았다. 장학금도 받았다.

그렇게 대학 졸업하고, 인천-천진 간 여객선 회사에서 여객과 통. 번역 업무로 1년 넘게 근무하다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시집살이하며 아이들 키우는 동안 중국어는 쓸 일이 없었지만, 학교 다니며 열심히 배운 덕에 지금도 여행 가서 별 불편 없이 써먹고는 있다.


동문 중에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선 후배들이 있다. 한 번은 천진에서 사는 선배의 초청으로 아이들 데리고 갔다가, 간 김에 베이징에 사는 선배들을 찾아가 만난 적이 있다. 서안, 심천, 상해 등에 사는 선배들하고도 어쩌다 연락이 닿곤 하는데, 이번에 하얼빈에 사는 선배가 다들 한 번 왔다 가라 한다. 어쩌다 보내는 안부 문자에 대한 답이었는데, 오라며 내민 손을 덥석 잡고 싶었다. 하얼빈은 빙등축제 때 가 보고 싶었는데, 추위에 취약하여 엄두를 못 내긴 했다.


선배가 말한 '다들'에 해당하는 언니에게 톡을 했다.

"언니, 00 선배가 오라는데?"

"갑자기?"

"그냥, 짧게 금토일 가면, 금요일 하루만 연차 내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연차 낼 수 있는지 알아볼게"


하얼빈 선배에게 28일부터 3일간 시간이 어떤지 물었더니, 대뜸 "와!" 한다.

오후에 언니에게서 연차 냈다는 톡이 왔다. 김해공항에선 직항이 없다. 인천공항 직항을 알아보라 했더니, 저녁에 전화가 왔다. 언니의 남편인 선배가 바로 옆에서 거들고 있는 모양이다. 하루 한 번, 아침에 갔다가 11시에 돌아오는 여정뿐이란다. 내 여권 사본을 보내고 같이 사라 했다. 그렇게 비행기 표를 끊었다.


아침에 선배에게 표 끊었다 톡을 하니, 호텔 예약을 했다 한다. 비자는 인터넷 대행 서비스로 신청했다.


우와, 이렇게 갑자기, 정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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