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감자를 심으며
감 자
해가 들까 덮어 놓은
반찬하고 남은 감자 두어 개
보이지 않으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어느 날 발견한 감자엔
뾰족뾰족 싹이 돋아나
버려야 하나 고민하다
흙에 심어 놓고는
햇감자 먹을 시기에
묵은 감자를 이제 심고
싹이 이파리가 되기를 기다리며
물을 주고 비료도 주고
한동안 잊고 지내던 인연을
버려야 하나 고민하다
안부 문자 한 통 보내놓고는
반가운 답신에
다시 약속을 잡고
무조건 버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며
고민하고
물을 주고
때론 비료도 주면서
그렇게 다시 살리는 것도
사람 사는 맛이라며
나이 오십에야
겨우
언제 산 건지도 모를 감자에 싹이 돋았다. 검정 비닐에 꼭꼭 싸매 놓은 그대로 햇볕도 물도 없이 자체 양분으로 내놓은 싹은 뾰족하고 무섭게 생겼다. 싹을 도려내고 먹자니 달랑 두 개뿐이라 먹을 것도 없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버렸을 것이다. 버리자니 왠지 마음이 안 좋았다. 마침 지난봄에 고추 한 주 심겠다고 사놓은 배양토가 있길래 푹 쑤셔 넣고 물을 주었다.
바나나 먹고 남은 껍질을 물에 담가 두면 물에 영양분이 녹아 나와 비료가 된다 하여 그것도 만들어 주었다. 뾰족뾰족하던 줄기에 붙은 작은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 이파리가 되더니 점점 커지고 있다. 몇 달이 지나면 흙 속에 감자가 달릴 것이다. 이렇게 한 생명이 또 삶을 이어간다.
사람 인연이란 게 참 희한해서, 성격이 다른 사람에게 더 끌린다. 내게 없는 부분을 가진 이와의 만남은 설렘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다른 성격 때문에 꼭 부딪히고 서로 마음이 상한다.
‘화를 내는 것은 불붙은 숯을 집어 상대에게 던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숯을 집는 쪽도 숯을 맞는 쪽도 다치기는 매 일반이다. 아니, 맞는 쪽보다 집는 쪽 상처가 더 깊고 크다.
마음을 다치면 다신 안 보고 싶어 진다. 예전엔 그렇게 인연을 끊은 적이 많다. 굳이 불편한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손절하는 인연은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났다. 정약용 선생도 ‘나이 먹을수록 친구는 적은 게 좋다’고 하셨다. 그게 자연의 순리라고.
일대일의 관계는 그래도 되는데, 다수가 함께인 인연은 그렇게 쉽게 끊을 수가 없다. 전에 한 번 다수가 함께인 모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나였으니 내가 그 모임을 끊었다. 딱 한 사람과의 인연이 틀어졌는데, 그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인연도 끊어졌다. 내가 없어도 그 모임은 그대로 이어졌고, 다른 곳에서 그들을 만나도 예전 같지 않다. 그들 모두 내가 던진 숯의 파편을 맞았을 것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또 일이 났다.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모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접고 덮으면 될 일인데, 반복되어 일어나니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다.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가 불편해 보인다. 모임에서의 손절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니, 끊는 대신 대꾸하지 않고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않으며 얼마간의 시간을 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흐릿해지는 것 또한 순리이니.
매일 보는 사람들이 아니고, 이 모임뿐인 사람들도 아니다. 그래도, 버릴 감자에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생을 지키는 것처럼, “그만두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오늘은 하지 맙시다”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대사처럼, 그렇게 서로 조금씩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을 감수하면 우리는 또다시 만나질 것이다. 이번엔 한 번 살려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