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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치즈 Nov 03. 2024

동거일상 네 번째 이야기

대화 주제 : 풋살

그와 같이 살기 전에 그는 종종 본가에서 혼자 축구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가 축구를 볼 때는 감감무소식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축구에 ‘축’ 자도 모르는 나였다. 그저 도대체 뭐가 그리 재밌길래 감감무소식이 되는지 그게 궁금했다. 


주기적으로 혼성풋살도 하러 간단다. 혼성이라고?? 다른 성별들과 모여 풋살을 한다는 게 돌이켜 본 내 삶 속에는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었으므로 궁금함에 풋살 모임에 따라갔다. 

내가 따라가겠다고 선언하기 전에도 그는 여자들도 풋살 많이 하고 좋은 운동이며 같이 공 차는 사람들이 참 좋더라며 내가 참석하기를 바랐다. 


그날은 참 추웠는데, 하나둘 사람들이 도착해서 풋살화를 갈아 신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나는 어색하게 그에게 팀원들을 소개받고 인사를 나눴다. 

처음 보는 언니들과 동생들이 처음 보는 나에게 같이 뛰자며 풋살 재밌다고 하나도 못 해도 된다고 말을 걸어주었다. 자기네들도 공 한번 안 차 봤는데 여기 들어와서 골도 넣고 다 한다고 속삭이며 나를 솔깃하게 했다. 


경기를 보는데 그에게는 그다지 눈길이 안 갔다. 

내 눈길을 끄는 건 아까 나를 적극 반겨준 언니들이 남자들 사이로 드리블을 해가며 골 시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트래핑도 기가 막혔다. 아니, 난 지금껏 이런 것도 안 해보고 뭐 했지? 


일주일에 두 번 열리는 풋살 모임은 하루는 여성 전용 플레이, 다른 하루는 혼성플레이를 했다. 게스트로 한 번 참여해서 공을 차보고 까르르 거리며 놀다가 여성 풋살반에 규칙적으로 나가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지만 패스 연습으로 시작해서 드리블도 해보고 자체 경기도 하면서 재밌게 놀았다. 


그러면서 그가 보는 축구 경기를 같이 보게 되고 EPL을 좋아하게 되고 감독을 욕하고 선수들의 부상을 안타까워했다. 여전히 그와 한 번씩 운동장에 가서 같이 연습도 하고 혼성 경기도 가끔 같이 하면서 그의 플레이를 평가한다. 그에게 그가 모르는 축구 선수 소식이라던가 구단 소식을 전할 때 쾌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 우리(여성들)는 주로 피구를 했는데, 축구도 같이 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풋살은 서로 콜플레이를 하면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라 사람들과 더 쉽게 친해질 수도 있고 사회성도 뭔가 잘 길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I 쪽에 가까운 사람이라 그런지 상대방을 불러가며 무언가를 외쳐가며 뛰는 게 참 부끄럽고 쉽지 않은데, 그래서 더 어렸을 때부터 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무엇보다 재밌다. 유산소를 훨씬 재미있게 할 수 있다. 


경기를 보는 것도 너무 재밌는데, 공 하나에 열광하고 좌절하고 또 감탄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스포츠의 힘을 느낀다. 경기에 집중하는 관중들의 표정이나 감독의 소리치는 모습, 가끔 선수들끼리 기싸움하는 모습도 이제는 나에게 하나의 오락이다. 그냥 공만 따라다니는 놀이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상황을 파악하고 다음을 예측하는 전략이 충만한 게임이라니. 흥미진진 그 자체. 영리해야 공도 잘 차는 것 같다. 


흥민이 경기 일정 체크가 주요 대화거리 중 하나이다. 스포티비도 결제했다. 

다음 주도 트래핑 연습해야겠다. 

순두부 터치가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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