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 씨 Apr 22.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09

:변하지 않는 가벼움, 통장 잔고

21대 총선 전 주말 토요일, 아침부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 날은 면사무소로 사전투표를 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면사무소 근처 남한강변으로 우리 둘 다 무척 마음에 든 고즈넉한 한옥 카페가 있다. 모처럼 외출하는 김에 카페도 들려 커피 한 잔 마시며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다. 아침 밥을 먹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사전투표하고, 그 한옥 카페 있잖아, 거기 가서 커피 한잔 하고 오면 사치일까?" 

응, 사치야. 


생각해볼 여지도 없다는 듯 1초만에 닌나 씨가 답했다. 맞다. 우리는 지금 커피 두 잔 값이 사치일 만큼 가난하다. 알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설움이 밀려왔다. 


요 몇달간 두부 한 모를 사면서도 이래도 괜찮은 걸까 불안감이 들었다. 이런 불안이 차고 넘쳐, 월세 생각을 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 들어갈 돈은 어찌나 많은지, 끈임없이 돈돈 거리는 내 모습이 싫었다. 잘 살아보려 이러는 거라며, 궁상을 포장한 긍정심도 바닥이 났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만약 닌나 씨가 가자고 했어도, 내 성격상 계산기 두드리며 망설였을 것이다. 가지말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무나 단호하고 사치라고 하는 말에, 말 그대로 현태가 왔다. 그저께 알바비 들어와서 그나마 가자고 말한 건데, 이것도 사치라니. 


내가 선택한 길이다, 이 시간도 그 책임의 일부이다- 자신을 다독여왔는데, 닌나 씨도 속상할테니 말도 못하고 쌓아만뒀는데... 서글픔이 마음 속 둑이 터진듯 폭발했다. 정말, 엄마가 보고 싶었다. 


닌나 씨는 당황해하며 펑펑 우는 나를 달래주었다. 내 마음을 못 알아줘서, 능력이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사과의 무게가 느껴져 또 가슴이 아팠다. 


:: 사전 투표 후 결국은 간 카페 :: 
:: 고민고민하다 스콘도 하나. 소소하지만 큰 행복::


닌나 씨와 나, 우리 둘은 같은 일을 한다. 우리의 직업은 여행작가다. 국내외로 취재를 다니며, 그 컨텐츠를 엮어 기사와 책을 만드는 것이 주업무다. 부업으로 강연과 컨설팅도 한다. 닌나 씨는 이 분야에서 10년 훨씬 넘게 일했고, 난 이제 6년 차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말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산다. 물론 돈도 잘 버는 잘 나가는 작가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니다. 


보증금 1,000만원을 내고, 꼭 필요한 세간을 사고 나니, 정말 빈털털이가 되었다. 열심히 번 고료는 매달 생활비와 대출금, 카드 리볼빙을 갚으면 순식간에 0으로 리셋되었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카카오 26주 적금을 들었다. 5,000원으로 시작해 매주 5,000원씩 더해지는 형태다. 만기 시 170만원 정도가 모아진다. 이 중 100만원은 저금하고, 70만원은 일주년 여행을 가자며 들떴다. 이마저도 사치였을까. 변변한 옷 한벌 사지 않았는데, 내 이빨 4개를 한 번에 치료해야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하반기 일이 급격하게 줄면서 적금을 깨야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둘이 열심히 해서 앞으로 벌면 되지! 희망이 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히 일거리가 계속 이어져, 굶어죽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말 일이 똑 끈겼다. 당연한 일이다. 여행을 가지도 못하고, 여기로 떠나요 홍보도 못하는 시국에서 여행 뽐뿌가 목적인 여행기가 필요할 리가 없다. 사회적 격리가 생활화 되면서 봄 강의 두 개가 캔슬되었다. 작년 내내 작업해 온 2월에 출간 예정이었던 책과 7월 출간 예정이었던 개정판도 기약없이 미뤄졌다. 1월에 작업한 기사 고료를 3월에 받았다. 이제 정말 앞으로 들어올 수입이 없다. 아니, 당장 다음 달 집세는 어찌하나, 헛웃음만 나온다. 




<편의점 오전 알바 구함!> 

구인광고를 본 후 조심스레 닌나 씨에게 권해보았다. 그래도 작가라고 강의도 제법 다니는 사람인데,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상처받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닌나 씨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나왔다. 그렇게 닌나 씨는 편돌이가 되었다. 월, 화 일주일에 두번 총 10시간 일한다. 아침잠 많은 사람이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하는 모습이 고마우면서 짠하다. 


편의점 먼데이 

새로운 생활은 새로운 이야깃거리와 활력을 가져다 주었다. 색다른 루틴도 생겼는데, '편의점 먼데이'도 그 중 하나다. 월요일은 오후 12시 30분에 퇴근하는데, 점심은 라면, 저녁은 폐기 도시락으로 먹는 것이다. 편의점 알바의 장점 중 하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식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지점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쿨하게 먹으라고 했다). 


점심 라면의 경우 새로 들어온 제품이라던지, 못 먹어본 종류를 정해 골고루 맛보는 것이 즐거움을 더하는 포인트다. 폐기 도시락은 그 때 그 때 다르므로 렌덤한 복불복 재미가 있다. 제발 짜장면 도시락은 아니길, 이번 주도 돈까스가 나왔음 좋겠다 등 쫄깃한 기대감이 있다. 바깥 음식을 잘 접하지 못하는데 외식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먹기로 했다.  


사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시작했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소소하지만 큰 행복 찾기- 사람살이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것이니. 오늘도 존버 정신으로 버텨 본다. 혼자가 아닌 둘이니까- 


: 집 근처 봉은사에 찾아 온 봄.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0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