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태도를 담는다 - 자기 자비의 마법
오 그래, 그럴 수 있지!
이것은 친구들이 재미 없는 농담으로 분위기가 애매해졌을 때, 그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쓰던 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에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학기 들었던 이상심리학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다.
"우리는 상담하면서 최소한 내담자가 해를 입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자신의 태도와 가치관이 너무 경직되어 있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점검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요?"
"책을 많이 읽으면 될까요?"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평소에 어떤 언어들을 많이 사용하는지 점검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랑 서로 살펴주어도 좋구요."
말은 나를 반영한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방식, 고민하는 부분, 살아온 환경 등이 말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내가 많이 하는 말이 뭐지?' 그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 바로 '그래, 그럴 수 있지!' 였다.
내가 이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내가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때,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할 때이다.
우선 첫 번째는 내가 나를 용서할 때이다. 뭔가 실수를 하고, 그 실수로 마음이 힘들 때 나에게 이야기 한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는 자기 자비라는 개념을 적용해 이해할 수 있다.
자기자비는 삶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마주했을 때에도, 자신을 따뜻한 태도로 바라봄으로써 긍정적인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Neff, 2003).
이는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해야 그 사랑이 흘러넘쳐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을 전할 수 있듯 자비 또한 그러하다는 불교적 사상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평가적이지 않으며 온정적이라는 특징에서 자존감이나 자기수용 등과는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부족함을 느끼고 나 또한 사람이기에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내가 생각했던 하루 일정이 있었는데, 늦잠을 잤다고 생각해보자. 그 때 '많이 피곤했나보네.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도 하고, 늦잠을 자기도 한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힘들어 할 때 우리는 따뜻한 태도로 마음을 전한다. 그렇듯, 스스로에게도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다.
나는 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수능 공부 하던 1년 동안 주중에는 3시간만 자며 공부를 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면 나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아 또 잠들었어. 나는 진짜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이야. 멍청이야.'
하지만 사람이라면 수면부족이 계속해서 이어졌을 때 졸게 될 수밖에 없다. 졸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을 뿐, 내가 부족해서 졸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나 자신을 탓하고 비난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잠들었기 때문에 하루 공부를 망쳤다고 해도, 스스로를 질책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기자비일 수 있다.
두 번째는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할 때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각자가 사고가 경직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자면서 약속시간에 늦는 꿈, 수업에 지각하는 꿈을 꾸고는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고등학교 등교길에 지각하는 꿈을 100번도 더 꿨다. 아마 그만큼이나 약속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스스로의 시간 강박은 꽤나 줄어들었다. 차가 막혀서 버스에 갇혀 있는 상황에도 조금 더 일찍 나오지 않은 나를 비난했던 과거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나에 대한 자비가 흘러넘칠 만큼 충분치 않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가끔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약속 장소에 몇 시간 째 나타나지 않으면서, 연락 한 통 없는 사람을 볼 때는 화가 치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는 일부러 소리내서 '그럴 수 있지. 늦을 수 있지'라고 중얼거리고는 한다. 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목적이자, 상대방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신기하게도 '그럴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나면 조금은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오는 길에 사고가 났던가, 아니면 휴대폰이 고장 났을 수도 있지'라고 말이다.
사실 힘든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탓을 하는 것은 습관과 환경이 만들어 낸 자동적 사고일 수 있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그냥 해왔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사고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점차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많아지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럴 때 이 말은 나를 지켜주는 한 마디가 되었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나에게 개방성을 연습할 수 있게 했고, 스스로에게 따뜻한 태도로 자비를 베풀 수 있게 했다. 한 발자국 떨어져, 나와 다른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고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자비라는 개념을 가져와서 이야기했지만, 사람마다 취약한 부분이나 경직된 부분은 다를 수 있다. 저마다 습관화 되어 있는 역기능적인 자동적 사고가 다를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을 의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마법같은 말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은 '자꾸 남과 비교하지 말자'라던가, 발표 불안이 있는 사람은 '눈 앞의 사람들은 모두 호박이다'와 같은 것들 말이다. 진짜 마법과 차이가 있다면, 그 말은 스스로 의식하고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힘을 갖고, 태도를 반영한다. 당신이 힘들 때 지켜줄 수 있는, 그리고 가치관을 반영하는 한 마디는 무엇인가?
[Reference]
Neff, K. D. (2003). The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a scale to measure self-compassion. Self and Identity, 2(3), 223-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