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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맑음 Apr 27. 2020

은밀한 취미

서른 살 백수의 은밀한 취미에 관하여

서른 살 백수의 은밀한 취미에 관한 이야기이다.


며칠 사이에 많은 감정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에서 본 반지, 처음 치러본 시험에서의 좌절, 여전히 진행 중인 서류 낙방, 비싸진 동네에서 밀려나기 위한 준비. 수많은 감정과 수많은 생각들이 고요해 보이는 일상 아래로 소용돌이쳤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버텨보자 근근이.

주문을 외웠던 듯싶다. 가장자리의 삶에서 울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던 듯싶다.


그리고 문득, 글을 쓰고 싶어 졌다.

글이 쓰고 싶어 지며, 노래가 흘러나왔다.


글. 

대학생 때 좋아했던 오빠가 있었다. 타과 수업 듣기를 좋아했던 나와, 마찬가지로 타과 수업을 듣던 오빠. 글쓰기 수업에서 오빠를 만났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글쓰기 수업이 첫 만남은 아니었다.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으니. 그는 그저 잘 알지 못하는 아는 오빠였다.

과제를 통해 오빠의 글들이 매주 읽혔다. 오빠의 글들은 이유 없이 안타까웠고 사랑스러웠다. 글 속에서 오빠는 북받치는 설움에 엉엉 울어버렸고, 뜨거운 행복에 말없이 춤을 췄다. 글 속에 이유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빠가 우는 이유, 오빠가 춤을 추는 이유. 나도 알고 있다. 어떠한 이유도 없었던 그 글 속에서 내 감정이 치달았던 것들은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오빠의 글들은 그랬다. 비상식적이게도, 오빠의 글을 읽으며 나는 안타까웠고,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쓰기로 했다. 나를 소용돌이치게 하는 모든 상황을 접어두고, 노래가 나오는 감정을 아무런 의미 없는 글에 담기로 했다. 글. 활자에 불과한 글이 나를 위로하기를. 어딘가에 있는 다른 내가 위로받기를.


이 소용돌이가 지나가게 되면 내가 끄적인 모든 것들이 민망함으로 다가올 것을 안다. 자주 겪어봤다. 그러나 진행 중인 감정들. 주체하지 못하는 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안녕, 내가 좋아한 사람이여. 안녕, 내가 살던 동네여.


서른 살, 나의 은밀한 취미이다.

글, 그리고 콧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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