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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노래 Sep 04. 2024

암각화와 유튜브

- 무엇이 다른가

서기 5000년, 디지털 문화인류학자 겸 고고학자 김창수씨는 한 학회 세미나 연단에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는 수천년 전의 디지털 자료들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의 언어와 이미지, 기호 등이 그가 발굴해낸 디지털 자료들에 잔뜩 들어 있었고 그는 암호를 해독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매달려 풀어낸 끝에 많은 것을 알아냈다.  ‘구글’ ‘유튜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단어들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회사와 디지털 서비스의 이름임을, 또 ‘인스타그램’ 같은 디지털 시대 초기의 소통 수단을 활용해 사람들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미나는 그 발표를 위해 준비된 자리였다. 학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김창수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우리는 과거 선조들이 스페인의 동굴 벽화에서, 한국 울주의 반구대에서, 고구려의 각종 역사적 분묘에서 발견된 벽화와 암각화에 경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조들은 그것들을 보며 과거 조상들이 무엇을 열망했는지, 무엇을 입고 먹었는지 탐구했고 많은 것을 알아냈습니다. 물론 어떤 그림은 무슨 의도로 그렸는지 이해하지 못해 제멋대로 추론하거나 자신들만의 해석을 덧붙여두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졌던 고래는 어마어마한 생존 욕망과 열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해석은 그로부터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암각화 시대 이후 어마어마한 세월이 지난 서기 2000년대에도 그 열망이나 욕망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류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한 만큼 더 이상 벽화를 그리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같았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그 시절의 디지털 자료들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복원된 디지털 영상 속의 사람들은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꿈꾸는 것 등을 꼼꼼히 표현하고… 아픈 이를 위해 기도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때로는 격렬한 정치적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천년 전 사람들을 머리에 뿔이 달린 외계인쯤으로 공상해왔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찾아낸 이 자료들을 21세기의 벽화요 암각화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김창수씨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좌중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그의 연구 발표와 자료를 시작으로 2000년대 고대 문화에 대한 연구가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나오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울주 반구대 암각화와 스페인 동굴 벽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문득 먼 미래의 김창수씨가 생각났다. ‘인터넷’이라는 고대 유물 속에 잔뜩 담긴 ‘먹방’ ‘패션’ ‘운동’ 등 각종 삶의 흔적을 찾아내며 경탄하고 또 무슨 내용인지 고민할 김창수씨 말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우리 또한 선조들이 동굴이나 무덤 벽에 그려놓은 그림을 수없이 접하지만 정확히 그것이 어떤 내용을 의미하는지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그림에 담긴 삶의 의지와 열정, 열망, 욕망, 소망 등을 느낄 뿐이다. 이를테면 스페인 한 동굴에 가득 찍힌 어른와 아이의 손자국은 이것이 종교적 목적이었는지, 그저 장식의 목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벽화를 그렸던 이들의 마음만은 고스란히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가 울주 반구대 암각화 고래 그림에서 느낀 신석기 시대 조상들의 열망, 동굴 벽화의 손자국에서 느끼는 환희를 김창수씨도 이 시대의 디지털 자료들,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며 동일하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월이 아무리 오래 흐르더라도 인간의 원형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함의도 내포한다. 운이 매우 좋다면 이 글도 어딘가 디지털 공간을 떠돌다 김창수씨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때를 위해 분명히 적어두고 싶다. 우리도 우리 인생의 고래를 끝없이 기다리며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부지런히 손자국을 남겼다고.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우리의 그 열망의 집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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