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을 구성하는 글자 중 사람 인(人) 자에 대한 아주 진부한 비유가 있다. 두 사람이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모양은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비유 말이다. 분명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신체적인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알기로 인간은 지구상 생물 중 지구력이 가장 좋은 생물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무리지은 사냥에 유리할 수 있었다고.) 때문에 인간은 늘 집단이 되어 살아왔다. 생존을 위해.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우리'끼리 모이는 것, 타인에게 의지하고 의지 받는 것을 원하는 건 인간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주된 생물이 인간뿐인 고도의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집단 속에서 안정감을 얻고 소속 안에서 보호받음을 느낀다. 우리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수많은 집단들을 만들고 그 속에 속하기를 원한다.
한편으로는 본능을 거부하는 것 또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독특한 특성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은 집단 속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을 최소화하고 개인으로만 존재하며 자유를 우선 확보하려고 한다. 본능은 집단을 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가장 자유롭고 편한 안 순간은 어느 곳에도 속하여 있지 않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순간이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자유로울 수 없는 죽음에서 조차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살아 있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죽음은 그 자체로도 두려운 게 사실이지만,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죽음이 더욱이나 두렵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들이 소유한 수많은 것들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소속된 핵심 집단들일 것이다. 나의 부모, 부부, 자식, 연인 등 사람을 존재하게 하는 코어 집단 말이다. 누구나 내가 죽음으로서 남겨질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인지한 순간(코어집단을 포함하여), 혹은 더 이상 집단에서 내가 크기가 크지 않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 두려운 죽음조차 조금은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서조차 비교적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들 내려놓음으로 죽음을 포함한 인간을 흔들 수 있는 다양한 번뇌들로부터 초월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로 인해 겪을 수 있는 대부분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말이다. 나 또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중학생 그 시점이 가장 자유로웠던 순간이었다. 조금 격하게 말해보자면 가장 죽기 괜찮은 순간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 순간 스스로 알았다. 지금이 앞으로 살면서 가장 가진 게 없는 순간일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생각은 여전히 틀리지 않고 있다. 아내가 생겼고, 아기가 생겼다. 살아갈수록 더 많은 집단에 소속되고 있고 더 많은 의무를 짊어져 가고 있다. 가진 게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나는 죽음이 아주 두려운 상황이 되었다. 아마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소유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니 소유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소유한 재산, 가족, 친구, 명예, 사회적 지위, 업적 등이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내가 가진 것들이 언젠간 흐려지고 훼손되고 없어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두려워한다.두려운 인간들은 나름의 방어기제를 세운다. 더욱더 가지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덜어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아얘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부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두려움이 없는, 혹은 없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즉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 순간 그러니깐, 어떤 의무도 지고 있지 않고 완벽하게 자유로웠던 그 고독했던 순간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고독을 동경하는 유일한 생명체이지 않을까 싶다.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은 오롯이 혼자일수 있는 고독한 자유로움을 동경한다. 그 동경은 아마도 소유 속에서 느껴지는 책임과 의무의 무게감이 여실이 느껴질 때 더욱 커질 것이다. 누구도 쉽게 무소유로 향할 순 없지만 그것이 얼마나 자유롭고 가벼운 상황일지 알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