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고통을 지나 자신으로 걸어가기(part.1)

부서진 마음으로도 일어서는

by 박기종

프롤로그: 선택의 순간

고통의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주저앉을 것인가, 일어설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맞설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견뎌낼 것인가. 그 선택이 우리를 만든다.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고통은 멈추라 말한다. 여기까지라고, 이제 놓으라고. 고통의 목소리는 강력하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퍼진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이미 충분하다고, 그만 포기하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가끔은 그 속삭임을 무시할 때가 있다. "아직 아니야"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 Chapter 1. 부서진 마음 안고 일어서기: 완벽하지 않은 용기

하지만 그는 일어섰다. 부서진 마음을 안은 채, 갈 곳도 없는 발을 다시 땅에 디뎠다. 일어선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몸을 세우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의지의 표현이다. 삶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부서진 마음을 버리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마음을 안고 일어서는 것. 여기에 진정한 용기가 있다. 상처를 감추거나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 깨진 조각들을 주워 담으면서도 계속 걸어가는 것.

사실 우리는 "완전히 치유된 후에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컴퓨터를 완전히 수리한 후에 다시 켜듯이.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컴퓨터가 아니다. 부서진 상태에서도 작동할 수 있고, 때로는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더 진실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라고 여기는 것들 중 상당수가 "불완전한" 것들이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수선한 일본의 킨츠기, 세월의 흔적이 남은 고건축물, 상처투성이지만 여전히 서있는 나무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깊은 감동을 준다.

우리 마음도 그럴 수 있다. 부서진 곳을 금으로 메운 도자기처럼, 상처 자체가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상처를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 Chapter 2. GPS 없는 여행: 갈 곳 없는 발의 지혜

갈 곳도 없는 발을 다시 땅에 디딘다는 표현은 절망적이면서도 희망적이다. 명확한 목적지가 없어도, 확실한 계획이 서지 않아도, 일단 발을 내딛는 것. 때로는 방향을 아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우리는 현실과 연결된다. 아무리 마음이 허공을 떠돌아도, 발은 땅을 밟고 있다. 그 접촉점에서 새로운 힘이 생겨난다. 땅의 단단함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현대인의 강박 중 하나가 "명확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5년 후 계획은?", "인생의 비전은?" 같은 질문들에 시달린다. 하지만 때로는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방향만 있으면 된다. 아니, 때로는 방향도 없어도 괜찮다. 그냥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GPS에 익숙해진 우리는 정확한 목적지 없이 여행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여행들은 대부분 계획에 없던 우연한 발견들에서 나온다. 길을 잃었을 때 발견한 아름다운 골목, 잘못 내린 정거장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풍경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너무 정확한 경로를 그으려 하지 말고, 때로는 그냥 걸어보는 것. 발이 이끄는 대로 가보는 것. "갈 곳 없는 발"이라고 자학하지 말고, "자유로운 발"이라고 생각해보는 것.

### Chapter 3. 동거의 기술: 두려움과 상처와 함께 살기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는 흔적처럼 남는다. 하지만, 이제 그는 도망치지 않는다. 완전한 치유를 기다리며 멈춰 서 있을 수는 없다. 두려움과 상처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성숙이다.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말고, 두려움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우는 것. 상처를 지우려 하지 말고,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기르는 것. 이것이 진짜 회복이다.

두려움과 상처를 "나쁜 룸메이트"라고 생각해보자. 당장 쫓아낼 수는 없지만, 함께 살아가는 규칙을 정할 수는 있다. "네가 여기 있는 건 알겠지만, 내 인생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마"라고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심리치료에서도 "증상 제거"보다는 "증상과의 건강한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불안을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는, 불안이 있어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런 접근법의 장점은 완벽함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쯤 완전히 나을까?"라는 조급함 대신, "오늘은 어떻게 하면 이 감정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 Chapter 4. 기억의 이중성: 족쇄이자 날개

기억은 고통이지만, 그 기억을 이긴 오늘이 그를 걷게 한다. 과거의 기억은 때로는 발목을 잡는다. 그때의 아픔이 지금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기억을 이겨냈다는 것은 그것을 잊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에 압도되지 않고, 그것에 정의되지 않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했다는 의미다. 과거의 고통이 오늘의 힘이 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승리를 경험한다.

기억을 "내 인생의 흑역사"라고 부르며 지우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든 나쁘든, 그 모든 경험들이 누적되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기억의 힘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 과거를 견뎌낸 나를 기억하는 것"에 있다. "나는 그때도 살아남았구나.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물론 트라우마적 기억들은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생의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였다가, 나중에는 "그 일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구나"가 된다.


Part 2 에서 계속...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