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여름이 가는 길

Goodbye Summer

by 박기종

《흔들린 셔터, 흐려진 진실

오후 세 시, 아스팔트가 달궈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그런 날이었다.

너무 더워서 그늘을 찾아 헤매다가 문득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사진을 보니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번져있었다.

모자를 쓴 사람의 모습도, 그 사람이 걸어가는 발걸음도, 심지어 시간조차 모든 경계가 사라진 채 물처럼 흘러갔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여름이 가는 모습이구나. 완벽한 사진이 담지 못하는 진실을, 실수가 포착해낸 것이라는 것을.

Chapter 1. 더위가 만든 천연 필터

●아지랑이라는 자연의 포토샵

뜨거운 오후의 특별한 점은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뜨거운 공기가 만든 아지랑이는 시야를 왜곡시키고, 강한 햇빛은 그림자와 빛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여름 오후의 풍경은 항상 꿈처럼 비현실적이다. 인스타그램 필터가 필요 없는, 자연이 제공하는 무료 보정 서비스다.

사진 속 인물도 마찬가지다. 모자를 쓰고 걸어가는 모습이 실제 사람인지 아니면 더위가 만들어낸 신기루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런 애매함이 오히려 여름다운 것 같다. 여름은 원래 경계를 흐리는 계절이니까.

●흔들림의 미학

카메라가 흔들려서 찍힌 이 사진이 오히려 그날의 진실을 더 잘 담고 있는 것 같다.

완벽하게 초점이 맞은 선명한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오후의 몽롱함, 모든 것이 용해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 마치 더위에 취해 비틀거리는 시선 그 자체를 카메라가 흉내낸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손떨림 보정 기능이 없는 카메라는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흔들림이 더 진실할 수도 있다. 적어도 그 순간의 나는 분명히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Chapter 2. 계절을 감지하는 몸의 지혜

●달력보다 정확한 피부

여름이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까?

달력을 보고 알까, 날씨 앱의 기온을 확인해서 알까? 물론 그런 객관적 지표들도 있지만, 진짜는 몸의 감각으로 아는 것 같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이 미묘하게 변하고, 빛의 각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날 오후도 여전히 뜨거웠지만 뭔가 다른 종류의 더위였다. 8월 초의 "죽겠다" 싶은 절정적인 더위가 아니라, 서서히 기운을 잃어가는 더위 같았다. 마치 배터리가 80%에서 70%로 줄어드는 것처럼, 숫자상으로는 여전히 높지만 뭔가 달라진 느낌.

●에어컨 시대의 계절감

요즘 아이들은 계절감을 느낄 수 있을까 싶다. 집에서는 에어컨, 차에서는 에어컨, 사무실에서도 에어컨. 실제 바깥 공기를 맞는 시간이 주차장에서 건물 입구까지 걷는 몇 분이 전부인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날 오후의 나는 달랐다.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 헤매면서 온몸으로 계절을 느끼고 있었다. 원시인처럼, 에어컨이 발명되기 전 인류처럼.

Chapter 3. 급한 걸음의 철학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

사진 속 인물의 걸음걸이가 급해 보인다.

여름을 붙잡으려는 걸까, 아니면 가을을 맞으러 가는 걸까? 모자 아래 가려진 표정을 볼 수 없으니 그 마음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사람도 나처럼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목적지가 있든 없든.

여름 한복판에서는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다. 너무 더워서 빨리 걸을 수도 없고, 시간마저 느리게 흘러간다. 마치 꿀처럼 끈적해진 시간 속에서 모든 움직임이 슬로모션처럼 느껴진다.

●계절이 바뀔 때의 불안

하지만 여름이 기울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서두르게 된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여름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네", "바다에 못 갔네", "수박을 별로 안 먹었네" 같은 아쉬움들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우리는 이런 강박에 시달린다. FOMO(Fear of Missing Out)의 계절 버전이다.

Chapter 4. 물러가는 계절의 우아함

●갑작스럽지 않은 이별

여름이 가고 있다. 슬슬, 물러가고 있다. 이 표현이 정확하다.

여름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자리를 양보한다. 마치 무대에서 퇴장하는 배우처럼 우아하게.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인사하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점점 멀어지면서 사라진다.

이게 자연스러운 이별의 방식인 것 같다. 인간만 "마지막"이라는 걸 의식하며 극적으로 작별한다. 계절은 그런 드라마틱한 연출을 하지 않는다.

●애매한 시간의 아름다움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흐려진다. 계절과 계절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여름인지 가을인지 확실하지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

이 사진은 바로 그런 애매한 시기를 포착한 것 같다. "여름 같기도 하고 가을 같기도 하고"라는 애매모호한 날씨의 시각적 표현이랄까.

Chapter 5. 바라보는 자와 지나가는 것

●관찰자의 숙명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거나 혹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우리는 그것을 붙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다만 바라볼 뿐. 가끔은 사진을 찍어서 "기록했다"고 착각할 뿐.

사진을 찍는 행위도 그런 것이다.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으려는 시도. 하지만 결국 붙잡힌 것은 순간이 아니라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이 흐린 사진처럼 말이다.

●완벽함보다 진실함

완벽한 사진이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잘 찍혔네"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고 흐린 이 사진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 나는 흔들리고 있었어. 더위에, 시간에, 변화에" 같은.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점점 완벽한 사진을 찍게 되었다. 하지만 완벽한 사진이 항상 진실한 건 아니다. 때로는 실수와 우연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Chapter 6. 필연적인 흐름 속에서

●거스를 수 없는 것들

그날 오후의 모든 움직임이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럽고 필연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흘러가는 시간도, 변해가는 빛도 모두 어쩔 수 없는 흐름의 일부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다. 맞서 싸워봤자 이길 수 없는 상대니까.

여름이 가는 것을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이고, 삶의 리듬이다. 다만 그 과정을 의식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흐림 속의 진실

뜨거운 오후, 흔들린 카메라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여름의 마지막을 이렇게 웅변하고 있다.

모든 것이 흐릿하지만, 바로 그 흐림 속에 진실이 있다. 선명한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흐리고 애매한 것 속에도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진실이 숨어있을 수 있다.

Chapter 7. 실수가 가르쳐준 것

●계획하지 않은 예술

이 사진은 의도한 작품이 아니다. 그냥 실수였다. 더위에 정신이 없어서 카메라를 제대로 고정하지 못한 결과다.

하지만 때로는 실수가 의도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완벽하게 계획된 사진보다 우연히 찍힌 사진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때가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그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때로는 계획보다 더 소중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흔들린 사진, 흐린 사진,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기술적으로는 모두 실패작이다. 하지만 이런 "실패작"들이 가끔은 완벽한 사진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와비사비(侘寂)라는 일본의 미적 개념이 떠오른다. 불완전하고 덧없는 것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이 사진도 그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Chapter 8. 여름의 마지막 인사

●드라마틱하지 않은 마무리

여름은 이렇게 간다. 선명한 작별 인사 없이, 흐릿한 뒷모습만 남긴 채.

봄은 화려하게 오고, 가을은 단풍으로 자신을 알리고, 겨울은 차갑게 선언한다. 하지만 여름의 마지막은 이렇게 애매하다.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사라져 있다.

그래서 여름의 끝이 더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했으니까.

●기억 속에서 계속되는 여름

하지만 여름은 정말 끝난 걸까. 달력상으로는 지났지만, 기억 속에서는 계속된다.

이 흐린 사진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로 남아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뜨거웠던 그 오후의 공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아스팔트, 모자를 쓰고 지나가던 사람의 뒷모습을.

《계속 흔들리는 세상

그 사진을 찍은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흔들림이 기억난다.

카메라만 흔들린 게 아니었다. 그 순간의 나도, 그 시간도, 그 계절도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세상은 본래 흔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안정적이라고 믿는 것들도 사실은 계속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뿐.

그러니까 흔들린 사진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으니까. 완벽한 정지보다 불완전한 움직임이 삶을 더 잘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오늘도 세상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들림 속에서, 흔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그것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때로는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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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장 애매한 사진은 무엇인가?*
*그 사진이 담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오늘도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다. 그것을 느껴보자.*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