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장례식에 다녀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느새 내 나이가 결혼식과 돌잔치는 없고 장례식이 늘었다.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엄마의 고통 속에 태어나 그 후는 내 자신의 고통속에 산다.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공을 들여 적어놓고 읽어보면 그렇게 작고 조용할 수가 없다.
예수
베란다의 화분에서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저 풀
노무현
김광석
장인 한홍수
신해철...
내 이름도 언젠가 작고 조용해지겠지
그런 이름을 읽고있을 상주에겐 늘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라고는 했는데 금새 기억이 안난다.
누군가 사라진 슬픔을 마주한다는 건 늘 당혹스럽고 서툴다. 평소에 잘 입지않던 서양의 의복도, 내가 알고 지내던 그들의 상념에 젖은 표정도, 늘 맞이하는 밤도 그 날만큼은 낯설다.
비로소 사라진 후에야 그의 비애를 반추하게 된다. 이상도 하지. 행복도 했을텐데 이제 더는 없는 그의 이름이 슬프기만 하다. 오늘 처음 본 이름인데.
울리지 않을 종, 뜨지 않을 해, 불리지 않을 이름이라니.
의미의 없음이라니, 영영 적응되지 않을 이 낯설음이라니, 나 역시 언젠간 받아들여야할 순간이라니.
내 멋대로 사라진 이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놓고
정작 나는 여전히 수라의 세계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