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진짜 헛되지 않았구나
지난 2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38년 인생 처음 맞이한 화양연화>
(*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우선 “돈 안되는 일 한다고 바쁘다”던 것들이 “돈과 커리어가 되는 일”이 되었다. 방송작가 면접에서 떨어져 나오는 길에 “저 그냥 출연 한 번만 시켜주세요”라고 질러놓고 나왔는데, pd님이 고정게스트로 나를 채용해주셨다. 1주일에 한 번, 7-8분 되는 짧은 코너지만 돈 안되던 일이 이렇게 좋은 커리어로 이어진게 진짜 꿈같다.
작년 이맘때 “제목 잘 짓는법”과 “뭐든 써보세요”라는 큰 가르침을 준 이슬아 작가님. 3월 한달간 <일간 이슬아>를 읽고 한 줄 두 줄 쓴 글을 올렸는데 그걸 본 이슬아 작가님이 댓글에 하트까지 남겨주셨다. 거기다 올 6월에 울산강연까지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선착순 40명... 아니 이슬아 작가님이라고요!!!!!!! 400명 수용하는 대강당을 빌렸어야죠...... 크흐흡) 보내드린 메일의 원본(!)인 손편지와 함께 복희님을 위한 덧신도 일찌감치 준비해뒀다. 이번엔 또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선사해주실지 너무너무 기대된다.
그리고 지난주. <이다현 자서전 가장 상단에 올릴 만한 대단한 사건>으로 손꼽힐만한 일이 터졌다. 아스트릴하기 짝이없던 둘째 사진을 스토리에 올리며 그 배경을 <지독한 노래>로 걸어놨었다.(<지독한 노래>는 20년 넘게 내 플레이리스트 상단에 있는 가장 애정하는 곡) 그 알고리즘이 캡틴락, 한경록님 인스타그램까지 나를 이끌었다. 그의 글과 사진을 보고 “내가 왜 진즉 몰랐던가”이러면서 팔로우에 블로그 서로이웃까지 마구마구 신청했다. 연예인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 밴드. 다섯살짜리 우리딸도 아는(참고로 두 딸 태교음악 베스트3 아티스트가 크라잉넛/에이미 와인하우스/에미넴 이었다)< 서커스 매직 유랑단>, <말달리자>, <밤이 깊었네> 등등 주옥같은 명곡을 남긴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홍대 3대 명절 ‘경록절’ 주인공이- 자신을 태그한 스토리와 글마다 좋아요를 다 남겨주는걸 보고 진짜 (좋은 의미로)기겁했다. 세상에... 이 대단한 사람이, 거기다 나는 뉴비인데 ‘ㅅ’! 이게 바로 거장의 품격인가요. (따숩고 말랑한 서울남자같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마냥 신기하고 좋았지만 한편으론 ‘설마 이 분이 일일이 팬들의 글을 다 볼까?’ 싶었다. (아 그리고..... 경록님 글이랑 노래랑 올려놓고 태그 안한적도 많았음...행여 그분이 볼까봐....부끄러워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나같은 사람이 있을건데 이 분의 시간은 하루 48시간인가? 그러다 이전글인 경록찬양 브런치 글을 올리고 태그를 걸었다가 링크를 잘못올려 잠깐 글을 내렸다. 새벽 1시가 넘었던지라 ”내일 아침에 다시 올려야겠다“하고 누웠다. 그때 난 둘째 아이가 밤기저귀를 떼지 못해 하루 3,4시간도 채 잠들지 못했다. 그날은 정말 정신력으로 버티고 애들을 재우고, 글을 썼었다.
그런데 잠시후 디링, 알람이 울렸다. 경록님의 메시지였다. (진심 스팸인줄 알았다.) 글을 다시 볼 수 있겠냐고. 세상에... 내 글을 진짜 이 대단한 사람이 보고 있었다고!? 새벽에 ”자니“보다 더 설레고 떨리는 이 메시지 하나의 위력은 엄청났다. 잠이 싹 달아났다. 내 덕질을 최애가 봤다고?
누군가의 찐팬이 되어 본 사람들은 안다. “저 사람이 나를 몰랐으면 좋겠는데 알았으면 좋겠어”라는 미친소리가 절로나온다. 내 주접을 들켜서 망했다 싶다가도 한편으론 당신의 팬이 되었다고 알려주게 되어 기뻤다가, 내 글을 복기하면서 혹시 실례되는 표현은 없었는지, 괜한 소리를 해댄건 아닌지, 무엇보다 수만마리 멸치떼 중 하나인 내가 뭐라고 이 어부에게 파닥거렸나..이불 빵빵 찼다.
나는 베이시스트 한경록 아니고 작가 한경록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썼는데, 쓰고 난 후에 너무 무례한 표현이아니었는지... 후회했다.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로 30년을 걸어온 아티스트에게 “나는 베이시스트 한경록 말고 작가 한경록을 좋아해요”라고 하다니.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은 애호하고, 작가 한경록은 사랑입니다-라고 썼었는데 내가 혼자 봐도 넘나 오글거려서 지웠었다. 뒤늦게 다시 씀.)
혼자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면서 이거 어떻게 답장을 해야하나, 무엄하게 모른척 해야하나-두 딸의 잠꼬대와 아이 아빠의 코고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가, 그렇게 밤을 꼴딱 샜다. 결국 아침 6시에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안녕하세요? 링크가 잘못되어서 글을 내렸습니다.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관심가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평상시 나였다면 이렇게 보냈을거다. 하지만...이렇게 썼다가 다시 지웠다. 그래, 이왕 주접떤거 그냥 질러버리자! 그렇게 희대의 주접DM을 보냈다. 그 후 경록님의 블로그에서 본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을 읽었다. 오전 내내 붕 떠 있었다. 밤을 샜지만 피곤하기는 커녕 이 하루가 지나가지 않길 바랐다. 이런날엔 하루종일 캡틴락 정규앨범을 무한 반복하며(<청춘>, <알 파치노>만 계속 들었을듯)항해일지를 수험서처럼 읽어야하는데! 하지만.....애들 빨래하고 방청소하고나니 큰애 하원시간이 되고말았다.
오후에 그분에게 답변이 왔다. 내 글을 읽었음을 알 수 있는 멘트와 봄볕같이 따스한 마무리 인사까지 담겨있었다. 댓글까지 귀엽게 남겨주셨다.(이거 대대손손 알려야하는데! 이걸 내가 친한친구 게시물에 올렸다... 아아 이렇게 귀한 댓글을...내가 무슨짓을....) 메시지 답장은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깔았다. “엄마 핸드폰 볼 때 마다 왜 그렇게 웃어?” 애들이 묻길래 “엄마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님이 엄마한테 메시지를 보내줬어”하고 바탕화면을 보여줬다. 글의 마지막에 귀여운 꽃 이모티콘을 보더니 “엄마, 이 작가님은 되게 귀여울것 같아”라길래 맞다고 맞장구를 쳐줬다. “귀여운게 최고지!!!)귀엽기도 하지만 본업은 또 얼마나 멋진분인지 아니?” 그날 애들 앉혀놓고 크라잉넛 노래를 틀고 셋이서 왁왁 소릴 질렀다. 5세, 8세, 38세 셋이서 닥쳐를 외쳐대는 참으로 기괴한 광경..)
5년전 일이다. 둘째 낳고 우울증 최상 진단을 받았다. 당장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 약을 먹으면 무기력해진다는 말에 애들 둘을 혼자 봐야해서 저는 그 약 못먹는다고, 정신력으로 일단 버텨보겠다고 했다. 그 후 ”나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려고“ 닥치는 대로 읽고 썼다. 돈도 들지 않고 짬내서 할 수 있던 유일한 일이었다. 남들 눈에는 괜한짓이었을지라도 난 그게 생존방식이었다. 그렇게 주저앉지 않고 그 괜한짓을 꾸준히 했다. 근래에 친한 언니들과 선생님 몇 분을 뵈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말을 했다. “다현, 너는 어쩜 그렇게 꾸준하니? 그게 지금 빛을 내는구나.“ 책을 읽고 삶의 방향을 만들고, 일단 쓰고 보자고 닥치는대로 기록한지 20년이 넘었다. 독서기록을 남긴지는 벌써 3년차다.
<나는 하루도 허투루 써본 적이 없다>고 자신하면서도 그게 나중에 뭔가 잘될거란 생각은 안해봤다. 매일 알뜰하게 살았지만 내일이 기대되진 않았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매일 떨리고 설렌다. 과거의 내가 만든 무언가가 또 언제 나의 현재를 채워줄지 궁금하다.
변변한 직함도 없고,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여전히 이렇다할 직업은 없다. 예전엔 그냥 뭐 이것저것 으쌰으쌰 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서 죄지은 사람마냥 가만히 있었다. 이젠 허허 웃을 여유가 생겼다. 누가 나에게 “뭐하는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거다.
안녕하세요. 저는 북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다현입니다.
이슬아 작가님을 덮어놓고 좋아하고요,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님을 애호하는 팬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제 삶의 화양연화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