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른쪽 세번째 손가락

그렇게까지 해야하니? 의 시작

by 리다



내 오른쪽 세번째 손가락은 늘 혹사당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만화가’의 꿈을 꾸며 매일 대여섯장의 그림을 그려댔다. 매주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느라 매주 2천원씩 받는 용돈의 절반을 거기에 썼다. (나머지 천 원으론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렸음) 그림을 꼭꼭 눌러 그렸고, 세번째 손가락 손톱 옆 오른편에 늘 굳은살이 박혔다. 굳은살은 처음엔 별 느낌이 없다가 어느 순간 건드리기만해도 아프다. 그러다 또 무던해진다. 다시 아픔을 느끼지 못할쯤엔 굳은살이 두껍게 자리잡아 펜을 쥐고 그림을 그릴때 불편하다.

나는 좀 무식한 편이다. 굳은살이 박혔다->두꺼워서 연필 쥐기 어렵다->그럼 자르자 이 기적의 삼단논법으로(!) 굳은살을 커터칼로 포를 뜨듯 살살 벗기거나 손톱깎이로 잘라냈다. 그렇게 5년 후. 부모님의 반대 (”너는 그림에 재능이 없다“)로 만화가는 커녕 그림과 관련한 어떤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연습장은 모두 재활용쓰레기가 되고 굳은살이 박혀 잘라내는 일은 없었다.

차라리 미대에 진학하면 돈이 많이 든다거나 다른 이유를 들었다면 쉬이 수긍하고 알아서 접었을거다. ‘나중에 하지뭐’라는 아주 작은 희망을 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때 그 처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후 남동생은 ’할게 그것뿐이지 않냐‘며 미대 진학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셨고, 동생은 성과를 거뒀다.)

그렇게 손가락과 내 마음이 아물쯤 대학에 진학했다. 새내기새로배움터(새터)때 풍물패의 공연을 보고 너무 멋져서 선배에게 저 사람들은 누구냐니까 국문과 학회 중 하나라고 했다. 주저없이 가입했다. 초등학교때 장구를 쳤었다. 6학년때 수장구를 하기로 했는데 “장구는 예쁜애가 해야된다”며 까였던 경험이 있어서 꽹과리나 북을 치겠다고 했다. 장구, 북, 징을 모두 칠 줄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 꽹과리를 하게 되었다.

꽹과리(’쇠‘라고 부른다. 이하 ’쇠‘)는 일단 판을 이끌어야하기때문에 가락을 다 외워야한다. 붕어였던 내가 20분 넘는 가락을 어떻게 외우겠는가. 달달 외울 재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몸으로 익히는 방법“을 택했다. 틀면 나오는 라디오처럼 손에 쇠와 채를 쥐어주고 ”짝쇠“를 치라하면 정말 기계적으로 그걸 칠 수 있을 정도로 반복했다.

나는 누가 ”살면서 진짜 200%의 노력을 해본 경험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주저없이 ”꽹과리 친 2년이요“라고 말한다. 전체 연습시간 빼고 혼자서 최소 1시간은 쇠를 쳤다. 2년간 매일 한 일은 ‘다당다당’기본기 20-30분, 그 후 앉은반과 선반 가락 반복. ”몸이 기억할 때까지” 그때부터 였다.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라는 말을 들은게. 그렇게까지 해야 내가 남들과 비슷해지니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른 쇠치는 동기들은 한두번 판을 돌리면 바로 해내는게 신기하면서도 내가 들인 노력에 10분의 1도 안하면서 ”잘한다“고 인정받는걸 보면 처음엔 진짜 속상하고 내가 뭐하러 이렇게까지하나 싶었다.

쇠 채도 많이 부러뜨렸다. 워낙 박아치는대다 매일 두드려대니 안 부러지는게 이상하지. 내 세번째 손가락의 굳은살도 다시 올라왔다. 늘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다. 그래서 4학년 내내 세번째 손가락 손톱쪽 살은 색이 밝았다.

한번은 교내 밴드에서 협연제의가 왔다. 간주부분에 꽹과리를 쳐달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보통 우리는 아주 느리게 시작해서 점점 빨라진다. 나는 박아치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가락을 쳤는데, 문제는 ’빠르고‘가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밴드 리더가 ’너무 빨라서 곡이 틀어진다‘고 했다. 이미 이에 익숙해지고, 나는 이 공연끝나고 다시 풍물패로 돌아가야하니 마냥 느리게 맞출 수도 없었다.

그때 만화 ’오디션‘이 생각났다. 빠른손 기타리스트 국철이 느린곡을 연주해야해서 손목에 쇠추를 달고 쳤던 에피소드가 있다. 교내 문구점에서 쇠추를 찾았지만 없었고, 급한대로 제일 무거운 오재미 몇 개를 사왔다. 양 손목에 오재미 세 개씩 단단히 붙여서 연습을 이어갔다. 다행히 민복이 손목을 다 덮어 누구도 몰랐다. 그렇게 연주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끝났다는 후련함보다 재능이 없어 혹사당한 내 손목과 손가락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자취방에 불도 켜지 않고 한바탕 울고 나니 속이 좀 풀렸다. 마음이 좀 안정되니 내가 그동안 한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니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아까 눈물이 난것도 처음엔 불쌍하고 서러워서였는데 다시 돌아보니 최선을 다한 내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감동한 것 같았다.

아, 세상은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남들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니?’소릴 들어야 ”내가 제대로 하고 있구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구나“ 라고 깨달았다.

이젠 손목이 혹사당하는 일도,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는 일도 없다. 요즘 매끈한 세번째 손가락을 보면 ”너 이제 실컷 혹사당하고 이제야 다른 손가락이랑 같아졌구나“ 하고 기특해보인다. 살이 파일정도의 아픔을 겪었고, 색깔도 달리 살았으면서 여전히 잘 붙어있어줘서 참 고맙다. 덕분에 삶의 모토를 잘 잡았어, 난 네가 참 고맙고 좋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