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이 차오를때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느끼게 해 준 아리영에게
드라마 ‘인어아가씨’ (정확히 말하면 ‘32회’, ‘57회’)
-나의 울분을 대신 쏟아내준 아리영에게-
좀 튀는 아이였다. 키와 체격이 또래보다 컸고, 누구와 어울리기보다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게 ’쟤는 혼자 뭐하냐‘며 수근대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나. 반 전체가 손을 들고 벌을 섰었다. 담임이 잠깐 자릴 비우자 모두 손을 내렸는데, 나는 계속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자 반장이 날 보고 “쟤는 잘보이려고 혼자 저런다”고 비아냥댔다. “너는 다 손 내리는데 왜 안내려?”라길래 “벌서는거니까 안내린건데?” 답했더니 “혼자 착한척은 다한다”는 소릴 들었다.
3시 30분 청소시간 맞춰 내가 맡은 구역에서 비질을 하는데, 같이 청소하는 아이들이 놀다가 10분 뒤에 왔다. 대장격인 여자아이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야, 왜 너 혼자 청소해? 니가 혼자 청소하면 우리가 선생님한테 혼나잖아!“ ”청소시간이 3시 30분부터니까 난 한건데?“했더니 ”그래서 어쩌라고? 왜 혼자 착한척이야?” 그 후 나는 ’착한척하고 선생님께 잘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어차피 밉보일거 맞받아쳤어야했는데 그땐 가만히 있어도 주목받은게 싫어서 그냥 입을 닫았다.
사회생활하면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 셋 있었다. 우리들은 나이도 직급도 가장 밑이라 업무 외에 자잘한 일도 했었다. 그 중 손님에게 커피나 차를 내는 것도 했는데, 대개 팀장이 ‘누구누구씨 차 좀’하면 그 사람이 갔었다. 딱히 말이 없으면 그 중 가장 어린 내가 그 일을 했다. 그냥 누구라도 하면 되지 싶었고, 다른 두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아서 ‘일이 있는가보다’싶었다.
하루는 셋이 밥을 먹는데 “너 왜 혼자만 튀는 행동해?”라는 말을 들었다. 팀장이 과장에게 ‘다현씨는 참 센스가 있더라. 안 시켜도 탕비실 정리하고 프린터기 종이도 늘 비지 않게 두는거 봤다. 거기다 손님오면 제대로 갖춘 컵과 받침을 쓰더라’면서 칭찬을 했단다.
“그게 왜요?”라니까 “야, 니가 혼자 그러면 우리 둘이 나쁜사람되잖아.” 그땐 나도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 했다.
나: 이걸 꼭 말해야되는거에요? 눈에 보이면 아무나 치우면 되는거죠.
언니들: 우리한테 말도 안하고 혼자 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컵 쓰니까 설거지거리 생기잖아. 일부러 너 착한척하려고 컵쓰고 설거지 하는거 아니야?
나: 에? (어이없어 실소)(뭔가 받아치고 싶었는데 못했음)
누가 오면 둘은 ‘에이씨, 저 사람 또 왔어’라면서 미적거렸고, 내가 슬쩍 일어나면 ‘어머 고마워’라고 한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탕비실에 설거지가 쌓인걸 보고도 ‘어우 냄새’하고 나갔으면서. 내가 거기서 “언니 같이 정리해요”라고 하면 “이거가지고 뭘 같이하냐? 누구라도 하면 되는거 아니야?“면서 쏙 나간적도 있었다.
이후 둘이 나에대해 이곳저곳에 ‘착한 척 한다’, ‘혼자 튄다’고 말하고 다녔단다. 하지만 아주 다행스럽게 내가 다닌 회사는 ”사회생활 만렙“인 분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 ‘잔챙이들의 말’에 같이 쑥덕대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내 자잘한 행동을 보고 ‘쟤 없으면 우리 사무실 어떻게 돌아가냐’고 해주셨다. 셋 중 계약기간을 다 채우고 나온건 나 뿐이었다.
나는 말을 잘 못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앞서 있었던 일에 내가 좀 똑똑하고 말발이 있었다면, 글 쓰는것에 10분의 1만 말을 할 수 있었으면 맞받아쳤을것이다. 여전히 말은 잘 못한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는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인어 아가씨>는 말발 안서는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선사해주는 작품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가족을 파탄낸 또 다른 주범인 심수정에게 복수를 하는 아리영의 이야기다. 내용도 파격적이고 전개가 빠른편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서 한 두 편만 봐도 훅 빠져든다. 그 중 33회, 57회는 말 잘하고 똑 부러지는 아리영이 부당함과 울분을 토해내는데 어찌나 시원하게 일갈하는지 내가 사회에서 겪은 분노와 깊은 빡침(!)이 확 풀린다. (나는 기억력이 마이너스라 별명이 붕어인데 너무 많이 봐서 배우들 숨 쉬는 타이밍까지 알 정도로 봤다.) 아리영을 분한 장서희 배우의 시원한 발성, 정확한 발음, 엄청난 연기력 삼박자가 너무 잘 맞아 떨어진것도 있다. (아리영=장서희, 그 어떤 대배우가 해도 이렇게 잘 표현하지는 못할것이다.)
33회는 대본에 있는 ‘뽀글머리 가발’을 쓰지 않겠다고 뻗대는 배우 심수정(아버지와 바람핀 엄마 친한 동생)에게 그 가발이 설정상 꼭 필요하며, 배우면 당연히 해야하는것 아니냐고 조리있게 설명한다. 분노로 일갈하는 심수정의 말을 하나하나 씹어삼키며 맞받아치는데 “그렇지”라고 응원하게 된다.
-
심수정: 머리에 피도 안마른게
아리영: 그래 나 피 안말랐어요. 피 잘 마른 어른이 어른답게 처신하면 되지
심수정이 뽀글머리 가발 안쓴다고 하자-
아리영: 술집 작부도 하고 달동네 아줌마도 하는게 배우 아니에요? 그렇게 우아하고 싶으면 차려입고 안방에나 들어앉아있지 왜 나왔나 몰라.
-
당장 생각나는 대사가 이정도다. 심수정은 막무가내, 감정적으로 욱해서 “야”, “너 위아래도 없구나?”라고 조롱만 내뱉다가 PD들에게 반쯤 끌려나간다. 반면 아리영은 따박따박 되받아친다. 57회는 “아리영의 울분과 분노”가 폭발해서 시원함 끝에 짠함이 밀려온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그의 아내가 나타나 아리영과 대치하는데 말도 말이지만 아리영의 기구절창한 지난 삶이 절절하게 드러나 너무 짠했다.
둘째 출산하고 <인어아가씨>를 주구장창 봤었다. “누가 등 떠밀었어?“, ”누가 애 낳으래? 누가 결혼하래?“라는 소릴 들을때마다 그 ‘실체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때 이 두 회차만 하루종일 틀어놓았다. 내가 내지를 수 없고, 그들에게 여전히 아리영처럼 조리있게 되받아칠 용기도 없다. 그냥 아리영을 보고 대리만족하는데 그칠 뿐이다.
아리영의 다음 장면은 항상 슬펐다. 보는 나는 너무 시원하고 통쾌했는데 왜 그녀는 그러지 못했을까? 당시엔 완전 몰입해서 몰랐는데, 좀 여유가 생기고 한발짝 물러나보니 그녀의 감정이 이해가 된다. 저걸 말한들 뭐가 바뀌겠냐. 이미 지나간 일, 앞으로 딱히 바뀌지 않을 미래에서 고작 내가 할 수 있는건 일갈 뿐인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