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어폰

미안, 내가 지금 알았어

by 리다

내 동생은 특이하다. 우선 사회생활을 하는게 신기하다. 본디 사회생활이란 부당한것을 보고 지나칠 줄도 알아야하고, 그러고 뒤에서 씹어대는 찌질함을 갖춰야는데 내 동생은 그런걸 못한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과 싸워 불화를 일으키고, 젊은이들이 어르신을 업수이 여기면 그걸 또 못보고 가서 꼭 한마디를 해댔다. 당장 내일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회사에 잠깐 몸담았을때도 ”그럴일 없을것“이라고 했다가 정말 망하기 직전에 칼같이 빠져나오기도 했다. (요즘은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이가 있어서 몸을 좀 사린다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나 싶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성질머리는 비슷한데, 나와 달리 모든 사람들의 사정을 다 봐주는 너그러움을 갖추고있다. 내 동생은 “그래도 저 사람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감싸는 반면 나는 같은 생각을 하면서 “저 이는 저래 살아”라고 그냥 말아버린다. (적고보니 내동생이 왜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더 받았는지 알 것 같네. 젠장.)

또, 염치가 있는것 같으면서도 이게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유럽여행 다니면서 “누나 돈으로 가는거니 함부로 쓸 수가 없다“며 음식과 간식을 죄다 나눠먹자더니, 디즈니랜드에 가선 ”이건 한국과 세 배 넘게 가격 차이가 난다“며 100유로를 내 지갑에서 쏙 빼갔다. 알뜰하다고 해야할지 기회를 재바르게 챈다고 해야할지 아직도 아리까리하다.

저거 사회생활 하겠나, 사람들이랑 잘 지내겠나, 장가가서 살림살이 어찌 꾸리려나 매 순간 걱정이었는데 나보다 더 잘 살고 재산도 잘 불려나가고 있다. (나보다 더 부자임, 부럽다 빚 없는 삶!)

가장 의아한거나 뜬끔없는 타이밍에 과한 선물을 준다. 언젠가는 고가의 시계를 줬고, 나에게 어울릴것 같다며 구하기 힘든 빈티지 맨투맨을 갖고왔다. 그밖에도 아이들이 생각났다고 배달의민족 상품권도 수시로 보낸다. 올케한테 꼭 말하고 보내라고 하면 좀 덜 보낼까했더니 ”이미 다 컨펌받았다”면서 애처가임을 굳이 티낸다.

받은것중 가장 예상치 못한 선물은 에어팟이었다. 이전것은 그래도 대화 중에 나온 적이 있던 물건이라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에어팟은 내가 필요하다고 한 적도 없었고, 그게 저렴한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하나 샀다’면서 손에 쥐어줬다. 포장을 뜯고 이리저리 살펴보본 후 고이 모셔놨었다. 아까워서 안 쓴게 아니고 못썼다. 그땐 둘째 태어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24시간 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엥 하는 소리에 뛰쳐나가야했다. 이어폰은 커녕 아이아빠와 첫째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못자도 귀마개를 할 수 없었다. 갓난쟁이가 언제 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에어팟은 2년 넘게 화장대 서랍에 들어있었다. 그러다 그해 4월. 애들 다 재우고 분리수거하러 밖에 나왔는데 봄바람에 벚꽃잎이 흩날렸다. 문득 “아, 이 타이밍에 버스커버스커 노래 들으면 딱 좋겠다!”싶었고, 동생이 사준 에어팟이 떠올랐다. 바로 집에 올라가 컴퓨터 게임하고 있는 아이아빠에게 “한 시간만 돌고 올게” 외치고 에어팟과 핸드폰을 들고 뛰쳐 나갔다. 벚꽃잎이 날리는 타이밍에 맞춰 ’벚꽃엔딩‘을 틀었다. 선곡, 분위기, 에어팟 삼박자가 고루 갖춰지니 “행복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후 아이 아빠가 저녁에 집에 있는 날이면 두 아이를 재우고 밤산책을 나섰다. 에어팟만 있으면 그곳은 노래방, 콘서트장, 라디오 부스가 되었다. 에어팟을 들을때 가장 무서운 순간은 듣던 음악이 갑자기 끊기고 벨소리가 울릴때. 아이가 깼으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소환전화였다. (그래서 멀리 가는건 엄두도 못냈고, 늘 아파트 근처만 맴돌았다.)

작년에 에어팟 덕을 톡톡히 봤다. 좋은 기회로 그룹 PT를 받게 되었다. 내가 가장 뚱뚱하고, 운동신경이 가장 없었다. 당장 근력이 없으니 어떤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고민끝에 일단 걷기로 했다. 하루에 10km를 걸으면서 에어팟을 늘 데리고 다녔다. 늘 같은 길, 똑같은 코스를 돌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꾸준히 걸을 수 있었던건 매일 주제를 정해서 다른 노래와 라디오, 강연을 들었기때문이다. 에어팟을 100%충전하고 10%가 될 때 까지 걷고 또 걸었다. 방전이 되면 “오늘도 알차게 다녀왔구나” 하고 뿌듯해했다. 매일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대여섯시간을 써댔다. 에어팟의 성능이 점점 떨어질수록 내 체력은 점차 올라갔다. 케이스도 없이 들고 다녀서 때가 덕지덕지 묻었어도 보물같이 귀하게 여겼다.

그렇게 1년 바짝 쓰고 나니 충전을 아무리해도 5분도 채 쓰지 못하고 이어폰이 꺼졌다. 애플센터에 가서 고칠 수 있냐고 물었다. 기사가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5년 넘은 에어팟이라 ‘당연한 현상’이라면서, 고치는것보다 새로 사는게 더 저렴한데 그래도 수리를 맡기겠냐고 물었다. 일단 알겠다하고 그걸 들고 집에오는데 굉장히 심란했다. 기계는 쓸 수록 닳는게 당연한데 에어팟은 안 그럴줄 알았다. 평소엔 재고 따지고 잘하면서 5년 넘은 이어폰을 고쳐 쓸 생각을 했다니! 고장나고 수리가 불가하면 뒤도 돌아보지않고 버렸는데, 에어팟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내가 건강해졌기 때문에.

그보다 이제야 동생이 이걸 왜 선물해줬는지 알게되어서 더 버릴 수가 없다. ”학부모 상담 가는데 다들 차려입고 오더라고“라는 말을 한 후 멋드러진 시계를 사줬고, ”나 살 빠지면 네가 입고 있는 맨투맨같은 옷에 짧은 바지 입고 다닐거야“라는 말을 지나치지 않고 비슷한 옷을 사줬다. 늘 돌아다니고, 흥이 많던 내가 애들 때문에, 건강이 나빠져 집에만 갇혀있는걸 보고 작은 자유를 주려고 에어팟을 사준걸, 이제는 안다. 고맙다고 말하기엔 세월이 너무 지났기에 이 마음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에어팟을 수리하고 싶었다.

ubc <지구수다> 이번 시즌이 주제가 되살림인데, <수선스런 사람들>이라는 코너를 보니 나같은 사람이 많구나 했다. 의미있는 물건을 수리해주는 코너인데 회를 거듭할수록 내 사연은 진짜 쪼랩(...)이라 의뢰할 엄두도 못냈다. 에어팟 충전이 아예 안될 때까지, 하루 ㅡ5분이라도 계속 듣고 들고다녀야겠다. 아, 동생한테는 비밀이다. (말하면 사준다고 까불거 뻔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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