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짝퉁

by 리다

친정엄마에겐 세 개의 명품 가방이 있다. 내가 사준 빨간색 구*, 동생이 선물한 루이비*, 아웃렛에서 구매한 핑크색 구*. 원래 엄마는 명품에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가방을 100만 원 넘게 사냐, 그냥 만 원짜리 가방 사고 나머지는 저금하겠다고 혀를 끌끌 차던 분이다. 결혼식 날 가보면 다들 똥이니 찌니 프땡땡 같은 고가의 가방을 들고 오는걸 “격식”으로 생각하는데 엄마는 그들 사이에서 당당히 시장표 핸드백을 들고 계셨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서 하나둘 명품 가방을 들고 모임에 나타났고, “나이 들면 이런 가방 하나 정도는 있어야 예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수긍하기 시작하셨다. “아니, 아직 가방 하나 없어?”라는 말이 꼭 “남편이나 자식들이 이런 거 하나 안 사줘?”로 들렸다나. 이후 동생 상견례, 각종 모임, 결혼식 때면 세 가방을 번갈아들고 다녔다. 이건 딸이, 아들이, 남편이 사줬노라고 말하면서 “나는 안 사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라는 너스레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이 명품 너스레는 얼마 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명품가방이 보이지 않고 듣도 보도 못한 가방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가죽의 질이 좋더라며 박람회에서 산 가방은 구* 로고가 반대로 박혀있는 짝퉁이었다. 여행지에서 구매한 말가죽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에게 이거 짝퉁이다, 이런 거는 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그냥 내가 예뻐서 산 건데 어떠냐고 되레 큰소리다. 짝퉁을 사면 안 되는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봤자 안 들을 게 뻔해서 나도 그냥 말하지 않았다. 짝퉁인 주제에 가격은 “좋은 가죽”이라는 이유로 십만 원 넘게 줬다는 소리에 다시 경악했다. 이왕 살 거 A급으로 사라고 툭 던졌더니 그런 건 어디서 사냐고 알려달란다.

오늘 큰어린이 가입학식이었다. 전날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 내일 아이 가입학식인데 별일 없으면 같이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하셨다. 엄마는 이번에도 검정색 구짜(구* 가짜의 합성어)핸드백을 가져오셨다. 공교롭게 난 오늘 진짜 구* 가방을 들고 갈 참이었다. “엄마 때문에 내 가방까지 가짜로 보면 어떡해?” 누가 봐도 구*를 카피한 조잡한 가방을 가져오다니. 내가 가방을 바꾸기엔 시간이 촉박해 그냥 나섰다. 엄마는 여봐란 듯이 가방을 척 걸치고 아이 손을 잡고 사람들 틈에 들어갔다. 중간중간 아이가 칭얼거리면 가방 속에서 젤리를 꺼냈고, 목이 마르다 하면 물과 빨대가 나왔다. 손 씻고 나온 나에겐 손수건을 내밀고, 손톱이 갈라져 따갑다고 하니 방수밴드도 내어주셨다. 정작 내 가방엔 지갑과 핸드폰뿐인데. “엄마 가방은 크기만 하고 예쁘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네?” 큰어린이 말에 뜨끔했다.

첫 학교 방문 기념으로 다 같이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엄마가 입학식에 못 오니까 미리 준다며 봉투를 꺼내주셨다. 아이 사진이 있는 수제 돈봉투였다. 백만 원이 들어있었다. “초등학교 들어갔다고 백만 원이나 주면 중학교 고등학교는 어떻게 하려고?” 가짜 가방이라고 핀잔준 것이 미안해서 슬쩍 눙쳐 말했다. “아유 그때는 더 많이 해주면 되는 거지” 그 순간 가방을 들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고고했고, 가방의 본분을 다한 그 가방은 명품 이상으로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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