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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May 31. 2022

My (G)I-DLE, 나의 소연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어릴적 가수 '이정현'을 처음 보고 난 후 충격을 잊지 못한다.

나랑 비슷할 것 같은 체구에 귀엽고 예쁜 인형같던 가수가 세상 비장한 표정으로 부채를 흔들던 모습. 치켜뜬 눈에 비장미 넘치는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전혀 과장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진짜 노래 속 화자'그 자체의 분노와 슬픔이 전해졌다.

그녀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클릭1020'을 들으려고 후미진 방 안에서 부단히 주파수를 찾았고, 그 중 다양한 노래를 광고나 멘트없이 쭉 틀어주면서 틀기 전에 '녹음 시작하라'는 목소리도 아직 기억난다. 무대 밖 그녀는 참 다정다감하고 애교가 넘쳤고, 자신의 무대와 연기에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강단 있는 사람

그녀는 내가 가장 처음으로 좋아한 연예인이었고, 처음 접해 본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아도, 본인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에 녹아내는 것이 아주 대단하고 멋지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2019년 어느 날, 나는 그녀와 같은 사람을 다시 보았다.


(여자)아이들, 전소연이 나에게 왔다


그때 난 오늘보다 내일이 더 최악인 사람이었다. 몸은 아팠고, 주변에 기댈곳은 없었다. 삶은 지독하게 싫었고, 모두 다 나의 선택이고 잘못이라고 돌리는것도 한계였다.

아 그냥 죽지 못해서, 인연을 못 끊어서, 그냥 그렇게 살고 있던 중 평소 잘 보지도 않던 엠넷을 보다가 한 무대를 봤다.

<퀸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공주가 아닌 '여왕'이 어울리는지라, 참 저 프로그램과 찰떡이다 싶었다.


(여자)아이들의 <라타타> 노래는 많이 들어봐서 익숙했지만, 정작 저걸 부른 가수는 처음 봤다.

모든 멤버가 다 예쁘고 멋졌다. 여느 아이돌과 다른 점이라면, 대다수의 아이돌은 '젊음'과 '풋풋함'으로 반짝이는 별 같다면, (여자)아이들은 그냥 '아이돌 가수'라는 단어가 참 잘어울리고, 부둥부둥 마냥 예쁘고 깜찍한, 아니면 섹시하거나 성숙한 '컨셉'이 아닌- 진짜 아이돌 가수가 가진 모든 것(비주얼, 실력, 본인들만의 빼어난 매력)을 넘치게 가지고 있었다. 그 후 그 프로그램을 보며, 특히 (여자)아이들의 무대는 몇 번이고 돌려 봤다. 마냥 카리스마있고 어두운 무대만 할 줄 알았더니, 트로피컬 가득한 무대도 꾸몄고 그것또한 아주 잘 어울렸다. 원곡보다 더 좋다, 또는 못하다는 평가가 아니라 '원곡과는 또 다른 노래'라고 말하는게 맞지 싶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 그 전 까진 무대만 봤는데 그날 처음으로 그녀들의 히스토리를 주욱 보았다.


그 전 까지 '전소연'은 그저 카리스마있고 멋진 랩핑을 선보이는 리더인줄 알았다. 난 그제서야 그녀가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의 노래를 만들었고, 그 동안 빠져들었던 모든 무대가 다 그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감탄했다. 무대밖 그녀는 실력있는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였고, 다른 멤버 뿐 아니라 나까지 수긍하게 만드는 언변과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건 자신감. 탄탄한 실력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그녀, 그리고 매번 다른 무대, '아티스트로써 만족'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대중의 소통과 관심, 거기다 평단의 인정까지 받는 음악적 감각.


무엇보다, 그녀들이 '공주'나 '요정'이 아닌 '나는 여왕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가진것부터가 신선했다. 다른 멤버들이 피어나는 꽃이고, 상큼한 과일이라면 리더 전소연은

그냥 '여왕'이었다. 그녀는 멋진 여왕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퀸덤> 마지막 곡이던 'lion'은 이효리의 '미스코리아'와 더불어 내가 가장 아끼는 곡이 되었다. '그래, 누가 날 조종하고 짓밟을수있나, '니 까짓것은 내 인생에 스크래치 하나 낼 수 없어'라고, 훌훌 털어버리게 되었다. 그 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외부에서 칼바람이 들고 발로 뭉개버리는 일이 생겨도 '그래봐라, 내 인생에 넌/이 일은 먼지 하나 지나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다'고 탈탈 버렸다. 아직 100%는 아니지만- 지금도 울컥거리고 잠을 못자지면 이만큼도 많이 발전했다.


이후 지금까지 난 그녀의 (숨겨진)팬으로, 그녀의 음악을 듣고, 나오는 프로그램을 챙겨보며 무대 아래서 그녀의 모습을 봤다. 채소를 안먹고(못먹고), 예능에 나오면 수줍어 하다가도 그룹 이야기나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의 이야길 하는데 어쩜 저리 기특하고 뿌듯하던지.

그녀는 나를 모르고, 나 또한 그녀를 직접 만날 일이 생길까 싶다. 평생 우리는 티브이로만 (일방적으로)만나겠지. 하지만 정말 만약에, 그녀를 만날 일이 있고, 딱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덕분에 내가 좀 더 단단해지게 되었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해줄거다.  그 정도로도, 영특한 그녀는 나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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