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블루

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by 송건자



2025.09.11.


1997년에 개봉한 곤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가 재개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개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도 오래 전에 봤었는데 무척 인상에 남아서 스크린에서 다시 보고 싶었다. 스토리도 충격적이었지만 연출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거울을 이용한 연출과 실제와 연기 사이의 연출.


두 연출의 공통점은 현실과 환상을 번갈아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마의 심적 상태를 몽환적으로 보여주었다. 거울에 비친 내가 진짜일까. 연기를 하는 내가 진짜일까. 그 반대로 거울을 바라보는 내가 진짜일까. 대본을 읽는 내가 진짜일까. 드라마 현장은 실제로 가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힘들 것 같다. 하하호호 웃다가도 슛이 들어가면 앞선 분위기는 지워버리고 몰입해야 하니 말이다. 프로다운 모습이지만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신진 배우에게는 적응이 필요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에 서서 미마는 혼란스럽다.


‘미마의 방’이라는 팬메이드 홈페이지와 일기도 효과적인 연출이었다. 미마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가도 스토커처럼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으니 겁이 난다. 미마가 혼란스러울수록 공포심은 커져만 간다.


보면서 불쾌한 장면도 제법 있었다. 집단 강간 씬이나 누드사진을 찍는 씬은 감독의 취향이라기보다는 90년대 일본 내 연예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유명해지려면 PD나 감독 같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 베개 영업을 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돌았다. 남자건 여자건 그런 소문에 휘둘려야 했는데 정조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여성이 더욱 가혹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나 수면 밑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고 작년 일본에서 터진 후지 TV 아나운서 성접대 파문 때문에 유명 배우, 예능인이 폭로되었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오래 전도 아니고 바로 작년이다. 작년.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충격을 많이 받았고 실망을 했다. 영화는 훨씬 전에 만들어졌지만 그러한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관람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거기에 드라마 작가와 사진사가 연쇄 살인을 당하니 피해자인 미마에게 삼각 관계가 아니었냐고 묻는 기자들이 압권이었다. 개인의 슬픔과 고통을 팝콘처럼 뜯어 먹으려는 그들이 어떤 장면보다 역겨웠다.


연쇄 살인의 범인인 루미도 불쌍했다. 그가 저지른 행동을 동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렇게 변한 그가 불쌍하다. 루미도 과거에는 아이돌이었지만 소위 팔리지 않아서 매니저로 전향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살도 찌고 노래도 그다지 잘하지 못한다. 루미는 누구보다 미마에게 몰입했을 것이다. 그래서 미마가 성인 연기를 강요 받았을 때—제대로 된 연기였다면 묵묵히 응원해줬을까?— 펑펑 울면서 현장을 뛰쳐 나가는 장면은 루미의 마음이 무너지고 연쇄 살인을 결심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루미의 사이코적인 살인이 일어났더라도 극의 성격은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다.


‘퍼펙트 블루’는 성장 드라마다.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주위에선 너를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진심이라고 해도 마음 먹은 대로 일이 잘 풀릴지는 알 수 없다. 미마는 소속사의 명령대로 원래 꿈이었던 아이돌을 그만두고 배우를 한다. 제대로 커리어를 밟아나갔다면 좋았겠지만 시청률을 위한 제물에 불과했다.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오히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들은 겪지 못하는 일을 겪었으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에 룸 미러에 비친 자신을 보며, 나는 나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모습은 미마의 성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제목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내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블루는 우울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퍼펙트 블루’=완벽한 우울은 꿈을 버리고 현실로 등떠밀린 미마의 심적 상태를 보여준다고 보았다. Chat GPT에 물어보니 현실과 환영의 뒤섞임, 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블루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97년도에 나왔고 저예산 애니메이션이라 최근에 나온 ‘귀멸의 칼날’과 비교하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정지된 장면도 많고 캐릭터도 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은 보라고 권하고 싶다. 화려한 액션보다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환상적인 연출은 후대 영화에도 제법 오마주가 되었다고 할 정도니 직접 확인하길 권한다.


보다보니 실사영화로도 꽤 괜찮을 것 같았는데 시대상도 다르고 각색도 많이 들어가야 할 텐데 엄한 부분이 들어가느니 그냥 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연출을 복사 붙여넣기 하면 리메이크하는 보람도 없을 것이다.


‘퍼펙트 블루’를 시작으로 곤 사토시 감독의 다른 영화도 재개봉했으면 좋겠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올해는 ‘퍼펙트 블루’가 재개봉했으니 ‘파프리카’도 재개봉했으면 좋겠다. 유능한 감독이네, 너무 일찍 가버렸다.. 아쉽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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