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8.23.
영화를 즐겨보면서 유명하고 좋은 영화를 안 보았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요상한 죄책감을 가지고 마는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 말고도 엄청나게 많지만 빚 하나를 까서 기분이 좋다. 재개봉 고마워요!
이미 많은 분들이 보았을 거라 줄거리보다는 감상 위주로 기록할 생각이다. 혼자 소장할 기록문이지만 인터넷에 올리니 우연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변명 아닌 변명을 남긴다.
영화는 ‘소년의 성장’을 다룬다. 퀴어 영화라는 건 어렴풋이 들어서 얼추 영화의 방향성을 추측했지만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 때문에 메시지 이상의 것을 느꼈다. 엘리오의 내적 갈등이 영화 시작부터 곳곳에 뿌려져 있다. 세간 혹은 또래에서 게이는 그닥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한다. 엘리오도 아버지의 지인인 게이 커플을 놀린다. 그것에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는데 그것은 일종의 복선이었다. 여하튼 엘리오 본인조차 게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 훗날 올리버와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 벽이 무너져 내리지만 말이다.
퀴어 꼬리표를 붙이지 않고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억지로 퀴어를 떼어내자, 는 건 아니고 본질적인 사랑의 관점만 가져가도 좋은 영화라는 이야기다. 첫사랑은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가슴 아프다. 픽션이니 작가가 더욱 애절하게 설정한 것이지만 현실에서도 첫사랑이 이루어진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첫사랑은 순수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서투르고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서 예기치 못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사소한 일에 상처를 받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큰 기대를 하고 혼자서 그것에 배신 당한다. 사람과 마음에게. 사람과 마음은 본인도 포함한다.
올리버와의 이별은 당연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이 있다. 1983년, 이라는 시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처럼 영상 통화는 꿈도 못 꾸고 음성 통화도 어렵다. 그것 말고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현재는 동성 커플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편견이 있는데 그때는 더할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올리버는 엘리오를 사랑하지만 부모는 아들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사를 보면 올리버 역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위장 결혼을 하는 것이다. 올리버의 짝이 될 여인도 참 불쌍하다. 진정한 사랑을 그에게서 받지 못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은 건 마지막 아버지와 엘리오와의 대화다. 아버지 역시 과거에 엘리오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고백과 지금 아들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 잊지 말라는 조언은 엘리오에 몰입한 관객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묵묵한 위로를 해준다. 우리는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잊어버리고 떼어내려고 한다. 그것에 집중하다보면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똑같이 당황하고 또 슬픔을 외면하려고 한다. 하지만 슬픔은 나의 또다른 면이기에 그것을 잊는다는 건 나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과 같다. 세상은 행복과 기쁨으로만 가득할 수 없다. 슬플 때마다 자신을 떼어낸다면 나 자신은 어디에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슬픔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로써 나는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
엘리오의 시점을 따라가니 엘리오의 실연에 공감하면서도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불쌍했다. 엘리오를 사랑한 마르치아나 엘리오의 어머니(아버지의 성 정체성을 모른 채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올리버의 약혼자.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을 영원히 얻지 못할 것이다. 왜 혼자서 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사회가 그렇게 두지 않아서? 용기 없는 자의 변명이다. 하긴 용기가 있었다면 동성 커플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 친구인 게이 커플처럼. 그들은 참으로 용감한 사람들이다.
첫사랑과 성장에 대한 영화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또한, 1983년 갈 수 없는 이탈리아 북부 그 여름을 엿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루카구아다니노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 #영화감상 #기록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