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배달부 키키

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by 송건자
‘마녀배달부 키키’ 포스터


2026.4.15.


26년에도 지브리 재개봉은 쭉 이어진다! 매우 기쁘다. ‘마녀배달부 키키’는 특별한 모험을 하거나 판타지 세상을 배경으로 두지 않지만 자극없는 이야기로 남녀노소 부담없이 볼 수 있다. 이미 케이블이나 OTT로 몇 번이나 봤지만 극장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극장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3살이 되면 고향을 떠나 마녀 수행을 해야 하는 키키. 키키는 빗자루와 간단한 짐을 들고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새로 지낼 마을로 떠난다. 꿈에 그리던 바다가 가까운 대도시를 발견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답게 냉정하고 매몰차다. 다른 마을로 떠나려는 찰나 아주 조금의 선행이 키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키키는 빵집을 하고 있는 오소노 아주머니 덕분에 숙소와 일터를 동시에 얻는다. 키키는 할 수 있는 게 하늘을 나는 것뿐이라 배달부일을 하기로 정하고 여러 사람들의 심부름을 도맡는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키키는 지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하늘도 날 수 없게 된다. 시무룩한 키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르슬라(오두막에 사는 화가)와 고객 할머니의 응원과 위로로 힘을 얻는다. 그러다 비행선 사고가 난다. 톰보라는 키키에게 관심을 주는 유일한 또래 남자 아이가 동아줄에 간신히 매달려 버티는 걸 보고 그를 구하기 위해 키키는 다시 빗자루를 잡는다. 우여곡절 끝에 키키는 톰보를 구하고 하늘을 다시 날게 된 키키는 다시 배달일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키키의 내적 성장을 말한다. 13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녀로서 수련을 떠나는 자격을 얻은 것만으로 키키는 어른이 된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치고 나니 풀이 죽는다. 먹고 자는 것에 이만큼 돈이 드는 건 몰랐을 것이다. 오소노 아주머니가 없었더라면 키키는 시작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키키는 한 층 더 성숙해진다, 는 게 보통의 감상이고 나 역시 그렇게 보았다. 이왕 극장에서 보았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보려고 한다.


영화는 ‘쓸모’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13살이 되면 마녀 수련을 위해 마을을 떠난다,는 건 어찌 보면 어른이 되어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는 증명의 과정이다. 수련이라지만 키키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첫날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낯선 마을에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것보다 한 인간으로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보였다. 13살이면 중학교 1학년이다. 무척 어리다. 그럼에도 키키는 영화에 나오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키키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들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쁘다. 그나마 톰보는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난다,는 목표가 있지만 스스로가 바란 꿈일 뿐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키키가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되자—마법이 약해지자 오소노 아주머니에게 하는 말이 그러하다. ‘빵집에서 더 많이 일할 테니 내쫓지 말아 주세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하고 일을 받으려면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키키의 능력은 하늘을 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을 날지 못하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니 몸소 ‘쓸모’ 없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키키는 알게 모르게 자기 증명에 대해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키키를 위로하는 것이 우르슬라다. 우르슬라는 오두막에 사는 화가로, 자연을 벗삼아 그림을 그린다. 키키의 첫 심부름에서 만난 사람인데 이 사람도 무척 착하다. 날지 못해 걱정하는 키키를 다음 대사를 들어 위로한다. ‘그리는 걸 관두지. 산책을 하거나, 경치를 구경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해. 그러는 도중 갑자기 그리고 싶어지는 거야.’ 영화에서 능력은 타고 나는 것처럼 묘사된다. 마녀가 되고 싶으면 마녀의 피를 이어받아야 하고, 화가가 되고 싶으면 화가의 피를 이어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가진 능력—재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우르슬라는 그런 경험을 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능력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다. 너무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에 혹은 너무 잘하고 싶어 스스로를 옥죄었기 때문에 숨쉴 틈이 필요한 것이다. 그 압박에서 벗어났을 때 사라졌다고 생각한 능력은 다시 돌아온다.


재밌게도 우르슬라의 성우는 키키의 성우와 같다. 당시 작업 여건 상 엑스트라에 가까운 우르슬라 목소리를 키키 성우가 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게는 미래의 키키가 과거에 침울했었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흥미로운 상상을 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고.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 ‘쓸모’가 있다는 건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그 ‘능력’으로 빌어먹으니 생계와도 이어진다. 자의든 타의든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소위 ‘쉬었음 청년’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농담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또래 혹은 그 연하가 일하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은 능력이 없다고, 그래서 이렇게 숨 죽여 사는 거라고 자책한다. 그런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잠시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것일 뿐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여전히 그 안에 깃들어 있다고. 언젠가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 키키처럼. ‘쓸모’가 있어야 그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땐 제발 핸드폰을 보지 말아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폰딧불이를 만났다. 그렇게 바쁜 사람이면 영화를 보지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정말 급한 연락이면 짧게 보는 건 이해하겠다. 오늘 만난 폰딧불이는 영화는 안 보고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영화 시작할 때부터 내가 말할 때까지(거진 1시간…) 핸드폰을 계속 보고 있었다. 내가 왜 내 돈을 내고 내 시간을 쓰면서 오롯이 영화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걸 방해 받아야 하지? 인간이라면 극장 예절을 갖췄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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